◆…세종시 나성동 국세청사.
# 지난 2014년 모 지방국세청은 다단계 판매업체인 A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 이 회사가 2010년부터 3년 동안 매출액 36억9000여만원을 줄여 신고하는 방식으로 탈세를 한 사실을 적발했다.
A사는 판매사업자들에게 현금으로 지급한 판매촉진비 25억9000여 만원을 경비로 인정해야 한다며 판매사업자들이 작성했다는 '판촉비 현금수령 인증서'를 허위로 만들어 제출했다.
하지만 수 년 동안 해당 지방국세청은 A사의 허위자료를 증빙으로 인정, 자료의 문제점에 대한 제보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에 따르면 당시 A사가 국세청에 제출 자료가 허위임을 입증하는 내용의 구체적인 제보가 4차례나 들어온 것으로 밝혀졌다.
결정적인 내부자의 탈세 제보가 있어도 국세청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묵살'할 수 있다는 사실이 최근 감사원의 감사결과 밝혀지면서 탈세 제보 및 탈세 제보 신고 포상금 제도에 대한 신뢰에 금이가고 있다.
제보자 입장에선 가뜩이나 포상금 수령 요건을 갖추기도 힘든데, 국세청이 제보를 은근슬쩍 무시하고 넘길 경우 이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전무하다는 이유에서다.
흔히 말하는 '영양가'가 없는 음해성 제보도 상당하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실제로 국세청이 활용하는 '엑기스' 탈세 제보는 특성상 내부 사정을 깊숙이 알고 있는 이들의 제보다.
내부 사정이야 어찌됐든 탈세 제보는 어제의 동지를 오늘의 적으로 만드는, 힘든 '결심'이 필요한 일. 사실상 회사를 그만 둘 각오가 없으면 내부 제보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제보자는 탈세 제보 후 국세청 조사 결과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세청이 제보자에게 제공하는 정보는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국세청은 탈세 제보자에게 제보한 자료를 과세에 활용했는지 안 했는지 여부 정도만 알려주도록 규정되어 있다. 국세청이 피제보자에 대해 세금 추징을 했는지, 최종 납부(추징)세액이 얼마인 지는 '비밀'의 영역.
국세청 관계자는 "추징금과 납부세액은 피제보자에 대한 과세정보와 관련된 사안이기 때문에 공개될 수 없다"며 "단 포상금은 세액이 납부됐을 경우에 한해 지급되기 때문에 역산을 하면 제보에 따른 세액을 계산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역산으로 알 수 있는 세액은 제보에 따른 세액일 뿐 조사과정에서 세무조사 담당자가 별도로 인지한 사안에 대한 세액은 포상금 산정에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최종납부 세액으로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포상금이 주어지는 경우는 그나마 낫다.
하지만 포상금이 주어지지 않으면 국세청이 세무조사 후 얼마를 추징했는지는 물론, 추징 여부 조차 알 수 없다. 여기에 더해 포상금 지급 여부도 국세청의 '자의적 판단'에 크게 휘둘리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상황이다.
현행법은 탈세를 입증할 만한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 자에 한해 포상금을 지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국세청이 제보를 중요하지 않은 자료로 치부해 버리면 차후 포상금이 지급되지 않더라도 제보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없게 된다.
포상금 지급에 대한 송사가 심심찮게 제기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최근엔 거래처, 거래일, 거래기간, 거래품목, 거래수량 및 금액 등의 사실이 기재되어 있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세청이 포상금 지급을 거부한 사례가 조세심판원의 결정에 의해 뒤집히기도 했다.
아울러 현행법은 추징세액이 5000만원 이상일 때 추징세액의 최대 15%를 지급한다고 규정, 추징세액이 5000만원 이하인 경우 포상금이 지급되지 않는 부분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국세청이 5000만원 이하로 세금을 추징할 경우 제보자는 그나마 할 수 있는 포상금을 통한 역산조차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에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피제보자의 개인 과세정보도 물론 중요하지만 인생을 건 모험 수준의 결심을 하는 제보자를 배려하지 않는 현행 포상금 제도는 포상금 지급액을 올려 제보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는 현 정부의 정책 기조에 역행한다는 지적이다.
한 조세전문가는 "탈세 제보 포상금 한도는 2012년 10억원에서 2014년 30억원까지 올랐다. 지하경제양성화를 위해 포상금을 대폭 올린 것인데, 이에 따른 제도는 아직 미비한 부분이 많다"며 "개인 과세정보는 보호하는 선에서 포상금에 대한 투명성을 높이고 제보자에 대한 권리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조세전문가는 "제보자에게 피제보자의 자세한 과세정보를 알려주면 상대방의 과세정보를 빼내기 위해 악의적으로 신고하는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제보를 일일이 들여다 볼 순 없겠지만 내부 감사나 감사원 감사를 철저히 하는 부분도 고려해 봐야 한다. 현행제도 내에선 국세청이 제보를 묵인할 경우 알 방법이 없다. 감사나 차후 소송을 통해 해결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