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역대 대통령 중 탄핵안이 가결된 두 대통령이지만 민심의 명령은 노 전 대통령에겐 '탄핵 반대'를, 박 대통령에겐 '즉각 퇴진'을 내렸다.
노무현 탄핵 당시와 '민심' 정반대…참담한 처지
2004년 탄핵 기준 제시한 헌재, 朴 대통령 탄핵 찬성 높아
박근혜 대통령이 9일 국정농단 사태 의혹이 불거진 지 두 달 반 만에 탄핵됐다.
국회는 이날 오후 3시 본회의를 열고 박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재적의원 300명 중 299명이 투표에 참여 찬성 234표, 반대 56표, 기권 2표, 무효 7표로 압도적으로 가결시켰다.
지난 9월20일경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한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개입 의혹이 제기된 후, 10월 국정감사에서 최씨의 딸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특혜와 승마협회 의혹 문제 등이 터져 나왔다.
급기야 10월24일 최씨가 박 대통령 연설문까지 직접 수정한다는 JTBC보도 직후 박근혜 정부를 전방위적으로 농단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민심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분노했다.
지난 2004년 故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처음으로 헌정사상 역대 두 번째이지만 노 전 대통령 탄핵과는 정반대의 양상을 나타나고 있다.
특히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 당시 故 노 전 대통령을 향해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비난하고 조롱한 것을 생각해보면 현재 국민들에게 '퇴진'과 '구속수사'까지 요구 받는 박 대통령의 처지는 더 없이 참담한 상황이다.
박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해인 지난 2007년 그가 선거법 개정을 위한 '원 포인트 개헌'을 제시하자, 대선 국면에서 여당이 유리하게 작용하기 위한 의도라며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원색 비난했다.
□ 기상천외한 국정농단, '퇴진' 민심 맞닥뜨린 朴 대통령 = 또한 박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탄핵 당시 탄핵안에 찬성표를 던진 후 동료 의원들과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특히 2004년 노 전 대통령 탄핵안과 2016년 박 대통령 탄핵안에 대한 민심의 괴리는 엄청나다.
2004년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새누리당)은 '선거법 중립 의무 위반'을 이유로 국회 의장석을 점거, 여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탄핵안을 가결시켰다.
47명의 미니정당이었던 열린우리당(여당) 의원들은 속수무책 탄핵안의 가결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으며 이를 말리려 울부짖고 물리력을 써보았지만 당시 박관용 국회의장이 경호권을 발동해 들것에 들려나가야 했다.
□ 민심 천양지차, '2004년 盧 vs 2016년 朴' = 폭력 국회의 한 장면으로도 길이길이 회자되는 장면으로 대한민국 헌정사의 민주주의 폭거로 기록되는 아픈 역사이기도 하다.
이후 민심과 괴리된 채 탄핵안이 가결되자 당시 시민들은 광화문 거리로 나와 '탄핵 반대'를 외쳤으며 63일 후 헌법재판소는 기각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번 박 대통령 탄핵안은 압도적인 탄핵 민심에 여당 의원들마저 찬성으로 돌아서게 했다.
전방위적인 국정농단 사태를 마주하며 국민들은 허탈해 했고 분노했다. 사상최대 '232만명'이 광장으로 나와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헌법재판소로 송부된 탄핵안 심판 역시 지난 2004년 헌재 판례가 그대로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 헌재, 2004년 탄핵 기준 제시…朴 대통령 헌법 위배-뇌물죄 적용 = 헌재는 대통령을 임기 중 파면할 수 있는 사유를 비교적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공무원으로서 중립의무를 지키지 않았다'는 탄핵안에 대해 헌재는 탄핵심판 결정에서 "중대한 법위반 행위가 있어야 한다"며 탄핵 조건을 밝혔다.
헌법수호에 위배되거나 국민의 신임을 배신했을 경우 탄핵은 정당화될 수 있다고 내세웠다.
또한 중대한 범법행위 중 뇌물죄 등 부정부패를 탄핵사유로 제시했다. 국익 위해와 국회 등 다른 헌법기관의 권한 침해 역시 파면 사유다.
이와 함께 국가 조직을 이용해 국민을 탄압하고 부정선거를 한 경우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한 경우도 탄핵 사유로 열거했다. 때문에 정치권과 법조계는 당시 제시한 헌재의 기준을 넘어서는 판결은 나오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 '피의자 박근혜' 탄핵기준 모두 적용…"촛불, 헌재 향할 것" = 가장 큰 차이는 노 전 대통령은 수사 대상에 오르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정치적 판단'에 따른 탄핵이었지만 박 대통령은 검찰에 의해 이미 피의자 신분으로 지목됐다.
박 대통령의 탄핵사유에는 검찰이 국정농단 사태의 핵심인물 최씨와 공범으로 지목한 것이 명시되어 있고 미르-K스포츠 재단의 기금 모금 출연에 대한 뇌물죄와 강요죄 등이 적시됐다.
또한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사인으로 아무런 직책이 없는 자신의 측근에게 부여해 대의민주주의라는 헌법 정신을 위배된다고 적용했다. 또한 세월호 참사 당시 아무런 지시가 없었던 문제와 관련해 국민의 생명권 보호 위배 역시 탄핵 사유에 담겨졌다.
박 대통령은 "탄핵되더라도 담담히 갈 각오"라고 밝혔지만 헌재가 민심을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판례대로만 심판을 하면 탄핵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율사 출신의 한 야권 당직자는 "판결은 이전 판례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는다. 헌재가 2004년 기각 결정을 내릴 때 제시한 탄핵 사유는 이후 탄핵안 심판에서 그대로 적용될 수밖에 없다"며 "기존 판례가 없다면 헌재가 새롭게 기준을 제시해야 하니 시간이 걸리겠지만 앞서 판결이 있기 때문에 그 기준대로 하면 한달 안에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야권 관계자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관 임기를 마무리 짓고 법조인으로서 자취를 남길 때 재판관 판결 이력은 따라붙는다. 정치적 집단이고 명예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민심을 외면할 수 없다"며 "더욱이 국정농단은 헌정사상 초유의 일 아닌가. 촛불시민들이 이제 헌재로 향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