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관이 명관이다”라는 속담의 속뜻은, 현재의 상전이 더 적합하다는 뜻이지만, 신규부임자에 대한 두려움의 다른 뜻도 내포하고 있다. 과거 사농공상시대에 관료의 수탈이 워낙 심하였으니 현재의 상전에게 이미 익숙해진 것도 있고, 그나마 실무도 잘 알고 좀 더 효율적으로 행정집행하기 때문이다. 신관이 오면 개혁한다고 파헤치다 선무당이 사람잡기 일쑤인 경우와 새로운 세금인상 등을 두려워 함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지배하는 사람이 바뀌거나 거래관계가 변경되는 것을 꺼려하는 중도 또는 보수성향을 보인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우리나라는 대체로 왕조하나가 대체로 500년 정도는 지탱했는 반면, 중국이나 유럽제국들은 평균 250년 이하에서 왕조가 교체되었다. 우리보다 “오야붕꼬붕”관계가 더욱 강한 섬나라 일본만 예외이다.
반면에 “고인물이 썩는다”라는 속담은 계속 변화해야 살아남는다는 뜻이다. 현대의 기업경영에도 현재에 안주하는 기업은 없어지지만, 끊임없이 개선하고 기술을 개발하며, 사업분야를 시대에 맞게 이끌어가거나 시류에 최소한 잘 적응하는 기업만 살아남는다. 샘물은 계속 흘러갈수록 더 큰 강을 이루고 결국 바다에 이를 수 있듯이, 변화와 혁신은 결국 더 위대함을 이루려는 것이다. 미국대통령의 4년 임기 중임(8년 한도)은 “구관이 명관이다”이어서 한번 더 재선의 기회를 주는 것이고, 고인 물은 썩을 수도 있어서 오바마대통령의 퇴임 지지율이 60%로 높았어도, 더 이상은 안되고 물러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사적거래인 경우 오랜 단골 또는 고정고객층이 있어서 수십년간 지속되는 경우도 많은데, 이 경우는 상대방인 기업(생산자)이 언제나 변화와 발전을 추구하면서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켰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제품이나 상품의 품질이나 성능이 거의 평준화·동등화 되어 어느 것을 사용하더라도 큰 차이를 못 느끼는 경우도 많지만, 의료·변호·음식 등의 사적서비스사업인 경우 무형의 차이가 있어서 장기간 단골 등의 계속거래인 경우가 많다. 대기업의 CEO 등도 경영실적이 뒷받침되면, 10년 이상 장기근속자도 많다.
이에 비해 외부감사는 어떤가. 감사의 기본이 본질적으로 고객(기업)을 의심하면서, 감시·조사·분석·경고·공시하는 법률의무행위이므로, 사적서비스업과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품질이 좋을수록 높은 값을 쳐주고 관계도 오래가는 의료·법률서비스와 달리, 외부감사업무는 잘 파헤칠수록 고객이 기피하여 떠나가는 반서비스특징의 공익보호업무이다. 외감의뢰자인 기업(고객)에 만족을 주고 서비스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내외의 제3이해관계자에게 유용한 정보를 일러바치는 일이다. 외부감사업무도 숙련도 차원에서는 “구관이 명관”인 경우가 많다. 복잡한 기업을 이해하고, 의심되는 항목을 분석해서 파헤친 외부감사인은 다음 년도에는 더 잘 분석하고 파헤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부감사에는 “고인물이 썩는다”는 개념이 더 중시된다. 회계감사기준의 첫장부터 “의구심을 가지도록” 규정되어 있고, 피감회사와 감사인의 “유착위협”을 절대 금하기 때문이다. 공인회계사법 제33조가 주주·임원·대출·차입 등 이해관계에 있는 기업의 감사를 금지한다. 외감법 제3조 제6항은 동일이사가 5년까지만 감사하고, 상장법인은 3년까지만 감사하며, 상장법인 감사보조자를 3년이 지나면 3분의 2 이상 교체하도록 하고 있다. 회계법인의 고객담당이사나 참여회계사가 계속 감사하면 구관이 명관이라 좋은 점도 있으나, 고인 물이 썩는 “유착위협”에 따라 결탁하거나 온정주의로 흘러 파헤친 문제점을 덮어두고, 괜찮겠지라는 무사안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회계법인 내에서도 3년, 5년 단위로 담당이사를 바꾸고, 현장참여회계사를 바꾸는 인적자원방화벽제도도 구축한다. 그런데 피감고객은 바로 이걸 싫어한다.
일반적으로는 감사의뢰기업이 외부감사인을 바꿀때는 발전과 변화를 추구한다고 기대하므로, 더 좋고 탁월한 외부감사인으로 변경함을 추구해야 옳다. 그런데 현행의 외감법제도의 강한 “갑을관계”로 인해, 더 실력이 있고 잘 파헤치는 감사인으로 변경하기를 주저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슷한 규모의 회계법인 중 품질향상보다는, 기존보다 더 낮은 감사보수를 제시하는 곳으로 변경하려는 경향이 많다. 인지상정이고, 그래야 피감기업 경리실무자는 칭찬받는다.
대기업일수록 감사보수금액이 커서 더욱 많은 외부감사인이 입찰제안을 해오므로, 기존가격 보다 현저히 낮은 값으로 계약할 힘이 더욱 강하다. 그래서 상장기업 지정감사제와 최소가격 법제화가 대안으로 거론된다. 외부감사가 사적서비스가 아니고, 반서비스인 절대공공재임에도, 공정위가 20년 전에 표준보수제도를 폐지한 후 완전경쟁에 내몰려 덤핑값 속에서 제자리걸음이다. 그래서 현장감사투입인원과 시간이 부족해 기업의 회계위험을 완전히 걸러내지 못한 경우, 대형분식회계사건이 터지는 것이다. 외감법상 전면적 표준가격을 법정화하기 어렵다면, 외부감사인변경시 자산과 매출액감소가 아닌 한 최소한 작년도에 계약된 감사가격이라도 준수해야 된다는 시행령 규정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