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 한 종교인 과세 2년 유예를 골자로 한 소득세법 개정안으로 인해 여론의 '역풍'을 맞자 지난 21일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그런데 김 의원이 배포한 기자회견 자료는 '종교인소득 과세 시행을 위한 철저한 준비가 금년 내 마무리될 수 있다면 내년부터 시행해도 무방하다'는 제목이 큼지막하게 달렸다.
하지만 실제 내용은 제목과는 정반대였다.
"저소득 종교인에 대한 근로장려세제 적용을 위해 종교인 과세를 조기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떡밥을 슬쩍 던진 후(?) 정부가 과세 제도 작동 전 준비해야 할 사항들을 잔뜩 적어놨다.
특히 국세청이 각 종교, 종단 등과 긴밀히 협의해 종교인 소득에 포함되는 종교단체별 소득원천과 비용인정 범위, 징수방법 등에 대해 상세한 과세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각 종단별 소득구조 특성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선행되어야 하며, 세부 과세기준에 따른 과세 및 징수에 대한 예행연습을 통해 문제점을 보완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김 의원은 설명했다.
그런데 이러한 준비가 왜 필요한지, 그리고 꼭 정부만이 이를 준비해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현 종교인 과세 체계는 종교단체가 소속 종교인에게 소득을 지급할 때 정해진 계산법에 따라 산출된 세액을 원천징수할 수도 있고, 개별 종교인이 매년 5월 종합소득세 신고 형태로 자진납세할 수 있도록 이원화되어 있다.
필요경비가 높은 수준으로 인정되고 일반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실비변상적급여는 전부 비과세 소득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어느 방식을 택하든 내야 하는 세금은 동일한 수준의 급여소득을 벌어들이는 일반 근로자보다 적을 수밖에 없다.
김 의원의 주장은 각 종교, 종단별로 소속 종교인에게 지급하는 소득구조가 다양하기 때문에 어떤 소득이 과세대상이 되고 안되고를 명확하게 해놓지 않으면 혼란이 가중된다는 논리다.
이 소득구조를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각 종교, 종단이다. 지난 수 십년 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종교인들의 소득구조는 종교계의 협조가 없으면 정부는 알고 싶어도 알 수가 없다.
종교인 과세체계 자체가 각 종교와 종단이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많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될 소지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혹여 문제가 우려된다면 정부에 소득구조를 공개하고 개별 소득내역에 대한 과세대상 해당 여부를 판단받으면 된다.
이미 오래 전부터 개별적으로 세금을 내 온 것으로 알려진 천주교 등 일부 종교와 종단 등의 사례를 참고할 수도 있다.
내년부터 과세제도가 시행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정부도 정부지만 종교계 스스로 준비했어야 할 부분도 많았다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이제와서 정부의 역할만 강조하며 과세 제도 유예를 주장하는 것은 과세 제도 유예를 합리화하려는 의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세부 과세기준이 마련되고 과세 및 징수에 대한 '예행연습'을 통해 문제점을 보완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김 의원의 주장도 납득하기가 힘든 대목이다.
세상에 그 어떤 조세제도를 예행연습한 후 도입한 적이 있는가. 도대체 예행연습을 한다면 누구를 대상으로 하겠다는 것인가.
'탈세관련 제보가 있을 경우 해당 제보를 각 교단에 이첩하여 국세청과 사전 합의한 과세기준에 따라 추가 자진신고 납부토록 해 문제를 해결하고, 세무공무원이 개별 교회나 사찰 등에 세무조사를 하는 일이 없도록 국세청 훈령으로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는 것도 제도 시행 전 정부가 챙겨야 할 준비사항이라고 김 의원은 주장했다.
뒤에 따라오는 이야기는 더욱 황당하다.
"(세무조사 문제를 국세청 훈령에 규정하지 않을 경우)이단세력이 종교인 과세를 종단 내부의 분열을 책동하고 신뢰도를 흠집내는 수단으로 악용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종교문제의 심각성을 부각하기 위해 '이단세력'이라는 단어까지 동원하고 있지만 그 내용의 핵심을 조세행정 측면에서 간추려보면 '종교계 내부의 탈세 문제가 발생하면 종교계가 알아서 덮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말과 다름없다.
종교인들의 탈세에 관대한 행정처리를 해달라니 종교인들은 탈세를 해도 아무런 규제도, 처벌도 받지 않는 '초헌법적 존재'로 인정해 달라는 것인가. 이렇게까지 모든 것을 종교계에 양보해야 할 이유가 있는지 알길이 없다.
이런 주장이 과연 종교계와 종교지도자들에게 어떠한 도움이 되는지도 모를 일이다.
오히려 과세 제도 시행에 반발하는 종교계에 대한 국민들의 여론만 더 악화시킬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해 보인다.
분명한 사실은 종교인 과세 제도는 종교인들에게 세금을 뜯어내겠다는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공평과세'라는 대의명분 위에 세워진 국민들의 준엄한 명령이다.
즉 종교인 과세 제도로 인해 종교계 안팎에서 그 어떤 갈등이 빚어진다면 이는 종교계 자체의 문제일 뿐이다. 세금 몇 푼 때문에 종교계 내부에서 서로를 물고 뜯는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는 주장 자체가 종교계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감을 떨어뜨리는 언사다.
괜한 '공포분위기'를 조성해 종교인 과세 제도의 '본질'을 흐리려는 시도는 그만두길 바란다.
김 의원이 제시한 내용들의 대부분은 종교계, 특히 기독교계가 주장해 왔던 종교인 과세 제도 반대논리와 일치하고 있어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경위야 어떠하든 그가 내놓은 주장들은 내년 시행은 사실상 불가능하니 과세 제도를 좀 더 유예해야 한다는 것에 기반을 두고 있다.
호랑이 등에 올라타 버린 김 의원에게 법안을 철회하라는 말까지는 하지 않겠다. 특정 집단이나 계층이 아니라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해야하는 국회의원의 '본분'은 잊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