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FTA 왜 필요한가?

남북 간의 정치·경제 교류와 관련한 정비된 어떤 규칙도 없다. 법적 강제성이 없는 선언적 의미있는 합의만 몇 개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는 적어도 기업하는 사람들이 마음 놓고 남북교류를 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지속적이며, 준수를 강제할 수 있는 규범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남북교역을 정비하는 남북FTA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세계 각국의 FTA가 추진되는 목적은 대체로 다음 3가지이다.

첫째는 해외시장에 대한 접근을 용이하게 하여 무역확대 고용창출 또는 투지유치를 통한 경제성장이다. NAFTA의 경우 북미지역의 교역자유화를 통해 역내 교역확대 및 공동의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이밖에 선진국들과의 FTA를 통해 선진국의 경제시스템을 도입함으로서 경제구조의 선진화를 추구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둘째, 경제적 통합뿐만 아니라 제도적 법률적 통합을 의미하며 외교 · 안보적 목적도 중요시 된다. 예를 들어 중미공동시장 (CACM), TDCA(남아공화국), ASEAN, 미-이스라엘 FTA, 미-요르단 FTA 등은 외교안보를 강화하고 평화체제를 공고히 하려는 목적으로 체결되었고, MERCOSUR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지역 국가들이 단일경제권을 형성하여 EU 북미지역과의 협상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체결되었다. EU의 시초인 유럽석탄철강공동체(European Coal and Steel Community: ECSC) FTA도 안보와 정치적 의도 때문에 형성된 것으로서 FTA가 반드시 경제적 통합을 위해서만 성립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셋째, 시장개방을 통해 국내 경제구조 개혁이라는 국내 문제를 정책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추진된 경우도 많다. 넷째, 개도국이나 체제 전환국들은 선진국과의 경제통합을 통해 국내 시장개방과 규제개혁 체질개선 등을 목표로 추진하였다. 멕시코와 칠레의 FTA는 외국과의 협정이라는 구속력을 이용해 국내 이해집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제도개혁을 시도하려는 의도가 있었으며, 1990년대 이후 루마니아 헝가리 폴란드 등 체제전환국가간 또는 체제전환국과 유럽국가간의 협정이었는데 소련의 붕괴로 동유럽국가간의 경제협력이 어려워지자 이를 보완하거나 경쟁지향적인 민주주의 시스템 전환 및 경제체질 개선을 위해 FTA가 활용되었다.

특히 FTA로 인해 경쟁과 투자의 활성화에 따른 생산성 향상과 대량생산에 따른 규모의 경제유발 체결국으로부터 첨단기술이 유입으로 인한 기술수준 향상으로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시킴으로서 결과적으로 이로 인한 경제성장 촉진 등 동태적이고 장기적인 경제적 파급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러한 FTA의 추진 목적을 남북한의 정치·경제 담당자들이 이해하고, 적절하게 추진한다면 남북경제 협력에서 발생하는, 그리고 많은 기업인들에게 크나큰 피해를 주었던 리스크들을 제거할 수 있게 된다. 

남북한이 FTA를 체결한다는 것은 양 국의 체제를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이미 국제사회에서는 남북공동으로 UN에 가입했기 때문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문제이다.

다만, 경제적인 문제와 정치적인 문제를 같이 다루면, 첨예한 정치적인 문제로 인하여 경제적인 조항마저 협의가 이루지지 않을 수 있다. 그간 남북경협은 민족 내부거래 관행에 따라 무관세거래를 해왔고 국제사회에서도 이를 묵인해왔으나, 향후 남북경협 규모가 커지거나 경제통합이 본격 논의되는 단계에 가면 국제사회의 문제 제기가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그간 남북경협은 제도화 수준이 낮고, 民(남)-官(북), 官(남)-官(북) 형태로 진행되어 북한의 개혁·개방이나 시장화 촉진에 기여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남북한 FTA 체결은 이러한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다. 그러나 남북한 특수관계를 반영, 남북한 FTA를 1국 내 두 독립관세구역간 FTA인 중국 내륙과 홍콩 사이에 체결된 경제협력강화약정(CEPA: Closer Economic Partnership Arrangement)으로 개념화하고, 이를 점진적으로 발전시켜 본래적인 의미의 FTA로 나가는 방향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남북경협 합의현황
현존하는 모든 남북경협 관련 합의의 출발점은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의 교류협력 관련 부속합의서｣(1992.9.17.)라고 볼 수 있다. 이 합의서에서 남과 북은 상품교역, 자원 공동개발(광물·수산자원 등), 투자(공업·농업·건설·관광) 등의 분야에서 남북경협을 추진하며, 자유로운 활동과 편익을 보장하기로 합의하였다.

특히 남북경협을 민족내부거래로 규정하고 무관세거래와 청산결제의 원칙을 적용한다고 선언하였다. 이후 남북경협은 북핵위기와 IMF 위기 등을 거치면서도 양적, 질적으로 꾸준히 성장하였다. 여기에는 남북경협을 민족 동질성 회복과 통일의 밑거름으로 삼으려는 한국정부의 노력이 주요하게 작용하였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남북경협은 꾸준히 성장하였고, 마침내 2000년 6월 1차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본격적인 도약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남북한 사이에는 확대되는 경협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려는 목적에서 다양한 경협합의서들이 체결되기 시작하였다.

남북한 FTA에 포함할 주요 내용

가. 상품교역에 관한 사항
그간 남북한간 무관세거래가 별 문제 없이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남북경협 자체의 특성과 관련이 있다. 즉 남북경협에서 상업성 상품의 이동은 대부분 북에서 남으로 이루어졌고 그 규모가 작아 북한산 물품의 반입이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또한 남에서 북으로 넘어간 상품이나 물자는 북한에서 생산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거나 개성공단·평양 등의 지역에서 한국기업이 생산·경영활동을 전개하는 데 소요되는 원자재나 소모품에 국한되어 북한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미미하였다.

하지만 향후 남북경협이 양적·질적으로 확대·심화될 경우 북에서 남으로 반출된 상품이나 남에서 북으로 반출된 상품이 남 혹은 북의 경제에 무시할 수 없는 정도의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남북교역이 재개된다면 상품교역의 범위는 이제까지 개성공단을 중심으로 물량이 남한으로 반입되던 한계에서 벗어날 것이다. 교역의 범위는 남한과 북한 지역 전체를 아우르고, 반출입되는 상품의 종류는 크게 늘어나게 된다. 산업의 종류에 따라서는 남한이 피해를 입거나, 북한 산업의 발전에 영향을 주는 일도 일어나게 된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남한과 북한 정부는 지역내 산업을 보호할 장치가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문제는 남북한 사이에는 이미 무관세거래가 합의되었을 뿐 아니라 25년간 관행화되었기 때문에 CEPA 체결 시 관세조치를 통해 이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데 있다. 존재하지 않던 관세율을 제정하거나 관세할당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WTO의 FTA 체결 규정에 배치될 뿐 아니라 민족내부거래(무관세거래)의 국제적 승인 확보라는 CEPA 체결의 근본 취지에도 역행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어느 일방의 불공정 행위, 예컨대 덤핑이나 보조금 지급에 대해 반덤핑관세나 상계관세를 도입하는 것도 무관세거래라는 대원칙에 위배된다. 따라서 남는 방법은 이미 존재하는 비관세장벽을 적절히 활용하거나 분쟁 해결절차에 의지하는 것이다. 중국-홍콩 CEPA 역시 관세할당, 반덤핑관세, 상계관세의 적용을 명시적으로 배제하고 있으며 문제가 발생할 경우 세이프가드와 분쟁해결절차에 의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나. 서비스 교역 및 투자
남북경제협력이 재개되면 가장 우선적으로 투자될 분야로 북한의 인프라이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한 투자방식과 성과배분에 대하여는 합의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현재의 북한 경제법에 따르면 합영투자만이 가능하다. 합자투자는 투자는 북한의 경영진이 기업을 운영하고, 외국의 투자자는 직접 경영에 참가하기가 어렵게 되어있다. 북한 경영진의 고의적인 적자나 파산도 막지를 못하고 심지어는 무능해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이런 불합리한 점을 예방하기 위하여라도 같이 투자하고 같이 경영하는 '합영투자' 또는 남한기업이 단독으로 북한 지역에 투자하여 직접 경영할 수 있는 '단독투자'도 허락되어야 한다. ｢남북정상선언｣(2007.10.4.)에서는 남과 북은 상대방에게 “민족내부 협력사업의 특수성에 맞게 각종 우대조건과 특혜를 우선 부여”하기로 명시하고 있다. 2000년 체결된 ｢남북 투자보장 합의서｣(2000. 12.16.) 역시 남과 북은 “상대방 투자자와 그의 투자자산, 수익금, 기업활동에 대해 다른 나라 투자자에게 주는 것과 같거나 더 유리한 대우를 제공”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합의사항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대와 특혜의 내용이 규정되어야 하고, 다음으로 우대와 특혜의 대상이 되는 투자자 혹은 서비스 공급업체의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는 한국에 진출한 외국기업이 북한에 재진출할 때 한국기업으로 대우할 것인지 여부, 그리고 어떤 조건을 충족하는 경우 한국기업으로 대우할 것인지의 문제 등과 결부되어 있다.

다. 무역투자 편리화 및 분쟁해결
무역·투자 편리화 조치와 관련해서는 이미 남북한 간에 많은 합의가 마련되어 있다. 무역·투자 편리화와 관련된 남북한 합의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우선 결제, 투자보장, 과세와 관련된 3대 합의서(｢남북 청산결제 합의서｣(2000.12.16.), ｢남북 투자보장 합의서｣(2000.12.16.), ｢남북 이중과세 방지합의서｣(2000.12.16.))가 있다.

이 합의서들은 남북한 FTA를 체결할 경우 일부 수정을 거쳐 그대로 부속문서로 채택될 수 있다. 다음으로 이른바 3통(통행·통관·통신)과 관련된 합의서들인데 이른바 '3통 문제'는 그간 남북경협 업체들이 가장 많이 고충을 토로한 분야이기도 하다.

또한 3통 관련 합의서는 개성공단과 금강산지구에 국한되어 있어 향후 남북한 FTA를 체결하는 경우 질적 개선과 함께 지역적 확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무역·투자 편리화와 관련하여 가장 미진한 부분은 북한에 진출한 기업의 경영활동상 자율성을 보장하는 문제이다. 비록 ｢투자보장 합의서｣에서 자유로운 경영활동을 보장한다고 하기는 했지만 이는 선언적 문구 이상의 의미를 갖지는 못한다.

특히 북한 측 근로자들에 대해 한국 측 기업이 인사·노무관리 권한을 갖지 못하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이는 북한체제의 특성과 관련되어 있어 북측의 합의를 이끌어내기가 쉽지는 않지만 어쨌든 향후 남북한 FTA 체결 시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