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세무서 1층 로비에 신고창구를 운영하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만 65세 이상이거나 장애인, 금융소득 2000만원 이하, 부부합산 2주택 이하, 단순경비율 대상자, 감면신청이 없는 경우 등의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만 신고창구를 이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 쓰여있다. (사진 조세일보)
"몰라서 왔는데 왜 안해주냐고요?"
한 남성의 고함소리가 연수세무서 로비를 울리고 세무서 직원이 민원인을 달래기 위해 진땀을 빼고 있다.
과거, 5월 종합소득세 확정신고 막바지에는 밀려드는 납세자로 북새통을 이루는 신고창구에서 오랜 시간을 대기하는 민원인들이 세무서 직원들에게 항의를 하는 일이 잦았다. 때로 "납세자를 이렇게 대접해도 되느냐"며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는 민원인이 세무서에 들어서자마자 고성이 나오는 일이 잦아졌다. 세무서 신고창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당연히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신고창구가 없어졌으니 납세자는 당황한 채 직원에게 항의하는 것이다.
국세청은 올해 5월 종소세 신고부터 민원인의 신고서를 대신 작성해주는 신고지원창구를 모두 폐쇄하고 만 65세(1957년 1월1일 이전 출생자) 이상 고령자와 장애인에 대해서만 신고창구를 운영한다고 밝혔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내려진 조치이지만, 사실 국세청 내부에서는 과거부터 납세자가 해야 할 신고서 작성업무를 국세공무원이 해주는데 대한 직원들의 불만이 쏟아져왔다.
세무서 직원이 납세자의 신고서를 대리작성해주는 것은 편법이다. 우리나라 소득세 신고제도는 납세자가 직접 자신의 세금내역을 신고하는 '자진신고제'인데, 공무원이 신고서를 대신 작성해 주는 것은 자진신고제 취지에 맞지 않을 뿐더러 나중에 신고오류가 발견됐을 때 책임소재가 모호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리작성창구를 폐지하고 납세자가 직접 신고서를 작성하도록 유도해야한다는 지적이 오랫동안 국세청 내부적으로 지적돼 왔다.
이에 더해 지난해부터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국세청은 감염 우려 등을 이유로 신고창구 폐지를 서둘렀지만 민원인들은 코로나19를 핑계로 세무서에서 해야할 일을 하지 않고 납세자에게 부담을 준다며 거세게 항의했다.
종소세 신고 막바지인 27일 오전 10시30분. 이날은 비바람이 몰아치는 등 좋지 않은 날씨에 연수세무서를 찾은 민원인들이 적은 편이었다. 하지만 궂은 날씨에도 종소세 신고를 하겠다며 찾아온 민원인에게 직원들이 만 65세가 아니라면 집에 가서 홈택스로 신고하라는 말은 청천벽력과도 같이 들리는 듯 했다.
◆…종합소득세 신고를 위해 세무서에 방문한 민원인들은 로비에 위치한 종합소득세 안내데스크에서 "홈택스에서 직접 신고해야 한다"는 안내를 받는다. 대부분의 민원인들은 안내를 받고 돌아서지만 일부 민원인은 이곳에서 고성을 지르며 항의하기도 한다. (사진 조세일보)
A씨는 "나도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아서 혼자 해보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아서 왔다"며 "여기까지 왔는데 신고도 안해준다고 하고 이게 뭐냐. 아주 불편하다. 왜 제도를 이렇게 불편하게 만들었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한 외국인 부부는 종소세 신고를 하러 왔다가 홈택스로 직접 신고해야한다는 말에 당황하기도 했다. 이들은 홈택스에 가입하지 않았다며 어쩔 줄 몰라했고 직원은 홈택스 회원가입을 도와주겠다며 민원실로 안내했다.
40대 남성 B씨 역시 홈택스로 직접 신고하라는 안내에 당황한 모습이었다. 안내직원이 "수입금액 모르시죠?"라고 묻자 B씨는 그렇다고 대답했고, 직원은 2층으로 자리를 옮기면 수입금액을 조회해준다고 안내했다.
세무서 1층 로비 안내데스크가 종소세 신고를 홈택스에서 직접 해야 한다고 설명하는 곳이라면, 2층에서는 수입금액 조회와 PC로 신고서 자기작성을 할 수 있는 곳이다.
평소에는 하루 200~300명이 다녀갈 정도로 북적이는 곳이지만, 이날 오전에는 궂은 날씨 탓에 한산한 편이었다. 집에 PC가 없거나, 신고서 작성을 하는 과정에서 도움을 받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세무서에 비치된 자기작성 PC를 이용할 수 있다. 다만 본인이 직접 신고서를 작성해야 하며, 도와 주는 아르바이트생이 있기는 하지만 초보적인 정도다.
더구나, 기준경비율을 적용받거나 타 소득과 합산해 소득신고하는 경우에는 세무서의 자기작성PC를 이용할 수 없다. 특히 연수세무서는 관내 특성상 임대소득자들이 많이 찾아왔는데, 이 경우에는 임대차계약서 등 신고자가 직접 챙기지 않으면 안되는 서류가 많아 세무서에서 도와줄 수 없는 것이다.
◆…연수세무서 2층에 마련된 신고창구. PC가 없는 등 인터넷 이용이 어려운 단순경비율 적용(영세납세자)자의 경우 PC로 스스로 신고서를 작성해 신고할 수 있다. 신고서를 작성하다가 어려운 부분이 있으면 앞에 앉아있는 아르바이트생이 도움을 준다. (사진 조세일보)
박성찬 연수세무서 소득1팀장은 "찾아오시는 분들에게 왜 본인이 직접 신고를 해야하는지 안내해드리고 있고, 취지를 이해하고 돌아가시는 분들도 있지만, 화를 내시는 분들도 많다"며 "이제껏(과거에는) 해줬는데 왜 안 해주느냐며 세무서에서 화내시거나 전화로 화내시는 분들이 많다. 직원들도 항의 민원이 잦아 힘들어하지만 힘든 시기가 지나가면 자기작성이 정착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방성자 연수세무서 운영지원팀장도 "저희가 본인이 직접 신고를 해야한다는 안내문을 우편으로 발송하고 카카오톡 등 모바일 안내문도 보내드렸지만 세무서로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다"며 "단순경비율을 적용받는 영세납세자는 2층 자기작성PC에서 신고하면서 모르는 부분은 저희가 도와드릴 수 있지만, 기준경비율을 적용받는 분들은 아무래도 챙겨야 할 자료나 입력해야 할 사항이 많아 저희가 도와드릴 수 없는데, 이를 가지고 화를 내시는 분들이 계시다"고 토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