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혀둔 퇴직연금, 증권사에서 '불린다’

수익률 높은 증권사로 ‘머니무브’
DC·IRP에 디폴트옵션 도입, 사전지정방법 따라 운용

퇴직연금에는 기업이 적립금을 운용하는 확정급여형(DB)과 가입자가 운용하는 확정기여형(DC), 추가로 가입할 수 있는 개인형 퇴직연금(IRP)이 있다. 그중 내년 6월부터 디폴트옵션이 도입될 DC와 IRP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중 IRP 수익률은 5.75%, DC 수익률은 4.77%인 반면, DB 수익률은 1.8%로 나타났다. IRP와 DC는 실적배당상품 비중이 각각 32.4%, 21.1%였지만 DB는 4.6%에 그친 데 따른 결과다.

업권별로는 증권사의 DC/IRP 수익률이 10.82%/9.45%로 가장 높았다. 은행과 보험사의 DC 수익률은 3.07~5.04%, IRP 수익률은 2.26~4.65%에 불과했다.
상대적으로 증권사에서 퇴직연금 적립금을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올해 상반기에 증권사 IRP로 순유입된 자금 규모는 2조2000억원에 달했다.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박영호 연구위원은 “근로자가 DB나 DC형에서 퇴직급여 일시금을 수령해 운용이 자유로운 증권사 IRP 계좌로 이전하는 상황”이라며 “고령화 사회와 저성장, 저금리 추세에 따라 가입자들이 장기투자와 자산배분 관점에서 퇴직연금을 운용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특히 금투협은 연금 계좌이체를 통해 은행·보험에서 증권사로 1조2000억원이 순유입됐다고 추산했다. 금투협은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가입자들이 자발적으로 실적배당상품 투자를 위해 증권사로 머니무브를 진행하는 것”이라며 “디폴트옵션이라는 제도적 장치가 도입되면서 본격적인 연금 운용이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기존엔 연 700만원의 세액공제 혜택을 받기 위해 연말에 납입하는 투자자가 많았는데 최근에는 연초에 납입하는 사례가 증가했다”며 “IRP 계좌에서 ETF(상장지수펀드), TDF(타깃데이트펀드) 등을 직접 운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디폴트옵션, 사전지정방법 따라 운용...원리금보장상품 편입 비판도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은 DC형 및 IRP 퇴직연금 가입자의 운용지시 없이도 금융사가 사전에 결정된 운용방법으로 투자상품을 자동으로 선정, 운용하는 것을 말한다. 사전지정운용방법은 타깃데이트펀드(TDF)‧장기가치상승추구펀드‧머니마켓펀드(MMF)‧인프라펀드 등 장기투자에 적합한 펀드나 원리금보장상품으로 구성된다.

변재일 한화자산운용 WM솔루션운용팀장은 “퇴직급여법 시행으로 인한 DC 전환 가속화와 디폴트옵션 도입으로 TDF는 연 2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현재 10조 규모의 TDF 시장은 향후 5년 내 35조 규모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투협 관계자는 “가입자는 자산배분 및 장기투자를 통해 수익률을 높이고 퇴직연금을 노후연금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며 “퇴직연금 사업자 간 경쟁을 통해 가입자와 금융회사가 상생하는 구조로 변화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편, 퇴직급여법 개정안이 디폴트옵션의 선택지에 원리금보장형 상품을 포함한 데 대해서는 “실적배당형 상품으로 퇴직연금 수익률을 올린다는 디폴트옵션의 당초 도입 취지를 희석한 조치”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위험자산 비중을 일정 부분 확대하고 적절히 분산된 글로벌 포트폴리오를 마련한다면 장기 수익률 측면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며 “원리금보장상품은 디폴트옵션의 선택 가능한 상품 유형에서 배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