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요구하는 자동차 관련 세제개편의 핵심은 현행 배기량 기준으로 매기는 자동차세를 재산세와 마찬가지로 가격에 따라 적용할 수 있도록 바꿔달라는 것이다.
언뜻 보면 우리 나라 자동차 가격에 비해 비싼 미국 자동차에게 유리한 점은 없어 보인다. 오히려 가격기준으로 자동차세제가 바뀌게 되면 외제차량은 국내 시장에서 더욱 경쟁력을 잃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현재 국내로 수입되는 외제차중 유럽이나 일본의 자동차에 비해 미국산 자동차가 배기량이 높다는 점을 알면 그 속내가 쉽게 이해가 된다. 또한 가격 경쟁력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미국산 자동차의 국내 수입자동차 시장 점유율은 1998년 만해도 59.1%로 유럽보다 앞섰으나, 일본 자동차가 수입되기 시작한 2001년 이후 줄곧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 지난해에는 역대 최저 점유율인 12.3%에 그쳤다.
미국 입장에서는 우리 나라 시장에서 유럽과 일본 자동차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우리 나라의 자동차 관련 세제개편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미국의 요구대로 자동차 관련 세제를 가격기준으로 바꿀 경우에는 국민들의 세부담은 늘어나게 된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고가의 차량 또는 배기량이 낮은 차량의 소유자들은 세부담이 갑자기 늘어나게 돼 조세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가격기준으로 바꾸려면 이를 감안해 세율을 낮춰줘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세수는 엄청나게 줄어들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는 지자체의 세수에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국가에서 이를 보전해준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굳이 잘 되고 있는 제도를 바꿀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또한 배기량이 낮은 차량을 권고하고 있는 우리 정책방향에도 반하는 문제도 있고, 사고가 잦은 자동차의 특성상 차량의 가격을 매기는 일과 함께 일일이 조사해야 하는 등 일률적으로 운영하는 데에 현실적인 정책 집행상의 어려움도 생기게 된다.
우리 나라 정부에서는 이 같은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확고한 입장이다.
김종훈 한·미 FTA 수석대표는 최근 "미국은 오래전부터 우리 나라가 자동차 배기량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내·외국인 차별이라고 주장해왔다"면서 "자동차 관련 특별소비세, 지하철 공채, 자동차세는 모두 지방자치단체 세수의 주요 원천인 만큼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미 FTA는 개별적인 사안들만 보는 것이 아니라 A를 양보하는 대신 B를 얻고 C는 상호 절충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미국의 국내 자동차 시장점유율 상승을 위한 자동차 세제개편 요구는 우리 국민의 세부담 증가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