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약세장으로 오히려 거래정지가 '보약'
한국 139일 vs 미국 10일...공시 직후 거래재개
원인 사유 ‘해소’→충실한 ‘공시’ 전환 필요성
◆…자본시장연구원 제공
올해 6월말 기준 1000일 이상 거래가 정지된 기업이 12개사에 달하는 등 거래정지의 장기화 현상이 지속하고 있다. 주주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거래의 연속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장기 중단’의 정지가 아니라 ‘일시 멈춤’의 정지로 제도화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이상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9일 ‘주식 거래정지 장기화와 투자자 보호 관점의 전환 필요성’ 보고서에서 “거래정지가 지나치게 장기화할 경우 투자자가 주식을 자유롭게 처분하지 못해 재산권을 보호받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자본연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코스피·코스닥 시장에서 한 차례 이상 매매거래가 정지된 기업은 103개사다. 181영업일 동안 평균 거래정지 기간은 139일로, 정지일수 비율이 77%에 달했다.
거래정지가 장기화하면서 거래정지 기업이 일반 기업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는 시장 왜곡 문제도 나타났다. 올해 상반기 거래정지 기업의 99%는 시장수익률 대비 초과성과를 기록했으며, 시가총액 규모도 13조4000억원에 달했다.
◆…자본시장연구원 제공
실제 대규모 횡령사태로 거래가 정지됐던 오스템임플란트는 거래정지 기간(1월3일~4월27일) 코스닥 지수가 13.3% 하락하는 가운데 시총 규모가 22위에서 14위로 상승하기도 했다.
이상호 위원은 “시장지수의 낙폭이 큰 상황에서는 거래정지 종목이 시장지수 대비 초과수익률을 기록할 만큼 주가와 기업가치 간 괴리가 심화된다”며 “향후 거래재개 시 주가 변동성 확대로 이어져 또 다른 투자자 보호 문제를 야기할 수 있어 거래재개 절차에 대한 개선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은 거래정지 기업이 평균 33분 만에 거래를 재개하는 등 거래정지 장기화 현상이 없었다. 사안이 엄중해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직접 거래중단 조치를 발동하는 경우라도 최대 10영업일을 넘지 않는다.
이는 우리나라는 원인 사유의 ‘해소’ 이후 거래를 재개하지만 미국의 경우 원인 사유의 ‘공시’를 거래재개의 요건으로 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요 정보의 충실한 공시가 이뤄지는 즉시 거래정지 조치의 해제를 원칙으로 한다.
이 위원은 “우리나라는 시장교란 행위로부터 투자자 피해를 예방하고 시장질서를 유지하는 관점에서 투자자 보호 필요성이 크기 때문에 원인 사유의 해소에 중점을 두고 있다”며 “다만 장기적으로 거래정지 제도는 정보 비대칭 상황에서 새로운 정보의 공시를 유도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필요가 있다”고 봤다.
또 다른 이유는 2018년 이후 개정 외부감사법 시행으로 감사환경이 강화되면서 감사의견 미달 사유로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에 포함되는 기업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 위원은 감사의견 미달로 인한 거래정지의 장기화는 일정 부분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재산권 침해, 변동성 확대 등 우려도 작지 않다고 봤다.
이 위원은 과거 연도 내부회계관리제도 검토(감사) 의견이 2년 연속 비적정에 해당해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이 되는 경우 해당 사유의 충실한 공시를 전제로 거래정지를 예외로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또 계속기업 불확실성 사유만으로 감사의견이 변형되는 경우 충실한 공시를 전제로 기업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최종적인 평가를 시장의 판단에 맡기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궁극적으로 매매거래 재개 절차상 요건을 원인 사유의 해소에서 ‘충실한 공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해 기업공시에 대한 인식개선과 투자문화의 성숙이 뒷받침돼야 하며, 상장적격성이 떨어지는 기업의 신속한 퇴출을 위해 장외시장의 활성화도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