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3월25일 신 인감증명법 시행 이전에는 부정 발급해 준 해당 지방자치단체에도 30~40%의 책임이 있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였으나 이번 판결은 신 인감증명법 이후 나온 첫 판결이어서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주목된다.
구 인감증명법에는 본인 또는 대리인이 인감도장을 반드시 지참해야 인감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했지만 바뀐 법에는 인감도장 없이도 본인 또는 대리인이 신분증 제시만으로 인감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다.
2004년 6월 서울의 한 동사무소에서 인감증명서 발급업무를 담당하는 이모씨는 김모씨를 사칭하는 사람으로부터 김씨의 인감증명서를 발급해 달라는 신청을 받고 신원을 확인한 뒤 김씨 명의의 인감증명서를 발급해 줬다.
김씨의 인감증명서를 받은 오모씨는 김씨의 주민등록증과 인감도장을 위조한 다음 H상호저축은행에서 자신이 김씨라고 사칭하며 인감증명서와 신분증 등을 제출하며 부동산 담보 대출신청, 3억원의 대출을 받아 달아났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H상호저축은행은 "담당공무원이 본인확인절차를 제대로 준수하지 않고 타인의 인감증명서를 발급해 줘 손해를 봤다"며 해당 구청장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1심은 피고의 책임을 30%로 인정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공무원의 과실은 인정되나 부정발급과 대출 사이에는 법률상 인과관계가 없다"며 금융기관에 100%의 책임을 물었다.
서울고등법원 민사6부(윤재윤 부장판사)는 20일 H상호저축은행이 타인의 인감증명서를 발급해 준 동사무소 구청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인감증명서 발급 담당 공무원인 이씨가 본인 확인 등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과실은 인정된다. 그러나 김씨 명의 인감증명서만으로 대출신청인이 김씨라는 점이 증명되지 않기 때문에 담당공무원의 과실로 인한 인감증명서 부정발급과 대출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대출신청시 담당자가 인감증명 이외 주민등록증이나 등기관계서류 등 서면의 검사, 필요한 경우에는 현장조사 등을 했어야 하나 김씨 명의의 인감증명만 믿고 그대로 대출을 실행했고 주민등록증에도 형식상의 하자가 있었으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이어 "구 인감증명법 하에서는 신청인이 직접 인감도장을 제출해 동일성이 인정될 때 인감증명서를 발급하는 직접증명방식을 취하고 있어 당시에는 인감증명은 인감 자체의 동일성과 거래행위자의 동일성, 거래행위가 행위자의 의사에 의한 것임을 확인하는 자료로 사용됐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현행 인감증명법은 인감도장이 없이 위임장이나 신분증만으로 증명서 발급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것을 필요로 하는 당사자가 상대방의 사용 인영(印影)과 인감증명서상의 인영을 대조하고 신원확인서류 확인 등으로 본인의 동일성을 확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또 "거래시 인감증명서가 여전히 인감 자체의 동일성을 증명하고 거래행위자의 동일성을 확인하는 자료로 사용되나 사실이나 법률상 그 기능이 명백히 변화된 이상 사용 관행만으로 인감증명서 부정발급과 이를 믿고 거래해 발생한 손해 사이의 법률상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