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61년 첫 울음을 터뜨린 세무사제도가 오는 9일이면 45번째 생일을 맞게 됐습니다. 10년이면 강산(江山)도 변한다 했으니 4번하고도 절반, 강산이 변하는 시간 동안 세무사제도가 지속되어 온 것입니다.
생일은 누구에게나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을 초대해 식사라도 함께 하며(선물은 주고받지 않더라도)자축하는 것이 일반적이지요. 세무사들의 권익단체인 세무사회도 생일상 준비에 분주한 모습입니다.
세무사회의 주도로 지난 4일부터(오는 8일까지) '세금을 아는 주간'이라 해서 전국 세무사무소에서 고객인 납세자들을 대상으로 무료 세무상담을 해주는 행사를 펼치고 있고 오는 11일 서초동 세무사회 본관에서 각계 인사들을 초청, '생일파티'를 열 계획입니다.
45년 동안 지속되어 오면서 세무사제도가 사회에 끼친 영향력이 결코 적지 않다는 점, 사회적 투명성 제고에 기여한 공로는 마땅히 평가받아야할 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작금의 시장현실만 놓고 따져보면 축하인사 보다는 오히려 걱정 섞인 자성(自省)의 요구를 전해야할 시점이 아닌가 합니다.
●‥(세무사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A+급' 태풍은 슬금슬금 북상, 부지불식간 동지나해(東支那海)를 훌쩍 넘어섰습니다. 이미 시장은 태풍의 영향권에 떨어진 지 오래입니다.
경고등이 켜지지 않았던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레드얼럿은 환히 켜져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한 다양한 대처방안 강구에도 불구하고 시장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참여자들의(세무사) 어려움이 더욱 가중되고 있습니다.
세무사들의 '젖줄'인 기장대리시장 침체가 가속화된다는 둥 목조임 현상을 부추기는 시장상황에 대한 장황한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시장에서 악전고투(惡戰苦鬪)를 거듭하고 있는 참여자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현재상황은 '억대연봉이 보장된 1등 신랑감'이었던 불과 몇 년 전의 상황과 너무도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억대연봉의 1등 신랑감이라는 '영예로운 간판'을 가지고 다녔을 그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요?
무한경쟁 체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피말리는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이미 시장은 (과거와는 달리)온전히 그들의 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단지 시장상황만이 세무사들을 괴롭히는 것이 아닙니다. 동반자 개념이었던 정부도 더 이상 세무사들의 편이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 사실입니다.
이를 증명해주는 최대의 '물증'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성실납세제도'입니다. 애초 이 제도는 '간편납세제도'라는 이름으로 도입이 추진됐습니다.
그렇다면 도입 취지는? 자영업자 등에게 납세협력비용(정도에 따라 연간 수 백만원)을 줄여주겠다는 데에서부터 출발한 것이 사실입니다.
세무사회(회계사회) 등의 강력한 반발에 제도자체가 변질, 당초 도입 취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지만 이 제도 도입시도 자체가 세무사들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는 분명했습니다.
"더 이상 정부는 세무대리인들의 동반자가 아니다"
●‥최근 수 십명의 세무사들이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세무사회는 "시장의 어려움을 감안해 달라"며 당국에 수 차례 세무조사 자제를 요청했지만 그닥 약발이 먹히지 않았던 모양인지(?), 국세청은 유유히 세무조사에 착수했습니다.
부정에는 당연히 패널티가 따라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무사회 자체 분석에 따르면)조사대상 중 단순착오에 의한 수입금액 누락 등이 많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정부의 (세무대리인들에 대한)인식태도는 분명히 달라졌다고 봐야한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게다가 부정여부가 확인된 세무대리인들에 대한 징계수위는 상당히 높습니다. 세무사회가 징계수위 완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기는 하지만, 정부의 반응은 냉담에 가깝습니다.
오히려 부정을 저지르는 고소득 전문직종사자(아무리 어렵다, 어렵다해도 세간의 인식 속에 세무사들은 여전히 고소득 전문직종사자에 속합니다)에 대한 처벌강도를 강화하고 싶은 것이 정부의 '속내'입니다.
최근의 사회적 분위기도 정부의 속내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점도 징계양정 규정 완화를 오매불망 바라마지 않는 세무사회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한 세무사는 "시장 상황이 말이 아니다. (나야 그나마 낫지만)사무실 운영비용도 빼지 못해 나가떨어지는 동료세무사들이 많다. 안타깝다. 돌파구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고충을 털어놨습니다.
시장에서 체감하는 '고통지수'의 강도가 점점 커져가고 있다는 목소리가 여기 저기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물론 세무사들 스스로 기장대리 등 전통적 수익원에만 매달리지 말고 '블루오션'개척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세무사는 "기장대리 시장이 나아질 여지는 사실상 없다. 개방화 등 시장을 위협하는 요소는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고 결국 기장대리에만 매달리는 참여자들은 도태될 것"이라고 쓴소리를 내뱉었습니다.
●‥세무사제도는 이제 중년층에서 장년층으로 한 걸음씩 옮겨가고 있습니다.
45년 역사도 찬란하겠지만 앞으로 50년, 100년 걸어갈 미래를 찬란하게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명제입니다.
(어디나 마찬가지이겠지만)과거의 찬란함에 기대어 '앞으로도 똑같겠지'하는 막연한 생각만 가지고 손발을 놓고 있다면 찬란한 미래는 보장되지 않습니다.
이미 현실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개개인의 노력도 노력이지만 세무사회라는 힘있는 권익단체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함께 살 길'을 찾아야 하는 시점인 것입니다.
불혹(不惑)의 반환점을 이제 막 돌아선 세무사제도. 세상의 일에 흔들리지 않는 나이가 되었건만 현실은 결코 세무사제도를 가만두지 않는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