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 경영권 분쟁 '봇물'

최근 들어 상장사들의 경영권 분쟁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작년과 올해 급증한 우회상장 기업들 중 경영권 분쟁이 발생한 곳이 많은 데다, 경영 개입을 목적으로 한 사모투자펀드(PEF)가 분쟁을 유발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경영권 분쟁은 통상 주가 상승의 재료로 인식되지만, 주가 차익을 노린 머니게임으로 치닫거나 기업 경쟁력을 저해하는 소모성 분쟁에 그치는 사례가 많아 투자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일 금융감독원과 증권업계에 따르면 샘표식품은 최근 우리투자증권이 운영하는 '마르스제1호PEF'가 2대주주로 올라서며 이사선임과 합병.분할 등 경영참여를 선언,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샘표식품에서 우리증권 PEF에 협력 의사를 밝히고 있고 우리증권 PEF도 인수합병(M&A)보다는 투자수익이 목적이란 입장이지만, 샘표식품의 주가는 PEF의 지분 취득 소식이 알려진 직후 1만3천원대에서 2만3천원대로 80% 가까이 수직상승하며 M&A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일명 '장하성 펀드'로 알려진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KCGF)의 공격을 받고 있는 대한화섬을 비롯한 태광그룹도 경영권 분쟁이 법적 공방으로 이어지며 장기화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한화섬은 분쟁 직전 6만원대였던 주가가 16만원대로 3배 가까이로 치솟았다.

지난주에는 브릿지증권이 운영하는 사모 M&A펀드 '브릿지사모기업인수1호증권투자회사'가 코스닥 상장 배합사료 업체인 코스프의 최대주주로 올라서며 적대적 M&A에 나섰다.

이 펀드에는 코스프의 전 경영진이 최대주주로 참가하고 있어 경영권을 둘러싼 전.현 경영진 간의 분쟁 양상을 보이고 있다.

코스닥 상장사인 모델라인이엔티는 지난주 대표이사를 상대로 모회사인 모델라인의 전 경영진이 주식 양수도 계약의 무효를 선언하면서 경영권 분쟁에 휘말렸다. 모델라인이엔티는 모델 관련 사업체인 모델라인이 올해 3월 코스닥 상장 휴대폰 단말기 수출업체인 기가텔레콤을 인수해 사실상 우회상장한 회사다. 모델라인이엔티는 현재 코스닥 상장사인 HS창투의 경영권 분쟁에도 개입돼 있다.

또 다른 우회상장 업체인 카프코씨앤아이도 경영권을 둘러싼 법적 분쟁을 지속해왔으나, 지난주 법원의 결정으로 분쟁이 일단락됐다고 밝혔다.

팬텀과 벅스인터랙티브 등 코스닥시장에 우회상장한 엔터테인먼트 업체들도 분쟁이 일단락되는 모습이지만, 최근까지 경영권을 둘러싼 회사 안팎의 분쟁에 시달려왔다.

전.현직 경영진이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상호 고소하는 등 법적 공방이 격화되고 있는 젠컴이앤아이를 비롯해 네오웨이브, 파인디지털, 동아제약, 케이피앤엘 등도 경영권 분쟁이 진행 중이거나 분쟁 조짐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경영권 분쟁에 휘말린 상장사들 중에는 우회상장을 했거나 PEF의 공격 대상이 되는 곳이 많다는 분석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앞으로 PEF의 경영권 인수나 경영 참여 시도가 확산될 가능성이 있어 이와 관련된 분쟁도 더욱 늘어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박정근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부실기업이나 자산가치가 저평가된 기업을 인수해 기업가치를 제고시킴으로써 투자 수익을 올리려는 국내 PEF의 활동이 하나의 트렌드를 형성해가는 모습"이라며 "자산가치가 저평가되고 대주주 지분율이 낮은 기업들이 일차적인 표적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또한 우회상장사들 중에서도 드러나지 않은 내부 갈등을 겪고 있는 곳이 많아 이로 인한 경영권 분쟁도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동민 대우증권 연구원은 "우회상장 후 취약한 사업 기반과 신속한 투자자금 회수를 원하는 투자자들의 요구가 상충되면서 갈등을 겪고 있는 업체들이 많다"며 "이 같은 우회상장의 후유증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경영권 분쟁은 주가 상승을 유발하기 때문에 투자자들에게 단기적인 호재가 될 수 있지만 자칫 해당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을 어렵게 만들고 기업가치를 훼손할 위험도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정근 연구원은 "경영권 분쟁을 겪는 기업들에 접근할 때는 무엇보다 자산가치와 함께 분쟁 후 실질적인 기업가치 상승을 기대할 수 있는 지를 면밀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