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료거래-세금계산서 분산처리 등 거래질서 문란한데‥회원들은 탈퇴
올해 초 식품·청량음료업계에 대한 국세청의 유통추적조사 결과 8000억원 규모의 허위세금계산서가 발급된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준 가운데, 화장지 및 위생용품 업계에서도 이러한 사례가 심각하다는 제보다.
2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화장지·위생용품업계는 업체 대리점 및 도매업자들을 중심으로 소매상에게 무자료로 제품을 공급하고 폐업자 및 자료상 등에 세금계산서를 분산 처리하는 등 '불부합 거래'를 일삼고 있다는 것.
특히 화장지 업계에서는 업체들이 모든 물품을 취급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대리점끼리 제품의 구색을 맞추기 위해 부족한 물품을 서로 '품앗이'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거래가 무자료로 이뤄지는 등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에도 불구, 관계당국에서는 업체들 스스로 자정노력을 하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으며 그나마도 최근 업체간 과도한 경쟁으로 인해 거래질서가 더욱 심각한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어 대책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또한 자정노력을 위해 설립된 '거래질서정상화협의회'는 최근 일부 회원사들의 탈퇴가 이어지고 있어 업계의 자정노력이 한계를 맞고 있는 형국이다.
■ "화장지 업계 어떻게 탈세하나?"
업계에 따르면 화장지 및 위생용품의 시장규모는 연간 1조4000억원 규모로 추산되고 있으며, 주요 10개 업체사의 매출액이 1조2000억원 수준으로 전체 시장의 85% 가량을 점유하고 있다.
주요 제품은 두루마리 화장지, 티슈, 아기용 기저귀, 여성용 생리대 등으로 대한펄프, 모나리자, LG생활건강 등의 국내업체와 유한킴벌리, 한국P&G 등 다국적 기업들이 경쟁하고 있다.
이들의 과도한 경쟁으로 인해 도매업자와 소매상들은 타사보다 더욱 저렴한 가격으로 제품을 공급받으려하고, 그 과정에서 세금계산서 수취를 거부하는 것은 이미 오랜 관행이라는게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들 업체들은 대리점과 도매업자를 중심으로 소매점에 무자료로 제품을 공급하는 한편, 매입과 매출부분을 맞추기 위해 폐업자 및 자료상들에게 세금계산서를 분산해 처리하는 기존의 방식으로 약 800억원 규모의 허위세금계산서를 발행하고 있다는 것.
특히 화장지 업계에서는 업체별로 특성화된 제품만을 생산·판매하기 때문에 도·소매상들이 원하는 제품의 구색을 맞추기 위해 타 업체 대리점들끼리 부족한 제품을 구입하거나 교환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이뤄지는 매매·교환은 모두 무자료로 이뤄지고 있으며, 지난해 업계 대리점 매출액의 10% 선인 400억원을 훨씬 넘어서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또한 일부 집단 도매시장 및 유명제품 모방상표를 사용하는 영세업체 등의 고질적인 무자료거래와 일명 '나까마'로 불리고 있는 중간상인들이 소매상이나 개인에게 무자료로 판매하는 경우도 좀처럼 근절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왜 탈세하나"‥과도한 경쟁 및 공급과잉이 시발점
업계에 정통한 관계자는 화장지 업계의 무자료거래 등 탈세규모가 연간 2200~2600억원 선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대리점이나 집단상가 등에서 벌어지는 무자료거래 외에도 영세업체와 나까마 등 '지하'에서 이뤄지는 액수를 합치면 탈세 규모는 더욱 크다는 것.
이 관계자는 "업체들간의 만성적인 과당경쟁상태에서 소매상들이 구매 영향력을 활용해 세금계산서 수취를 거부하고 사업자등록증을 제시하지 않게 되더라도 이를 거절할 방법이 없다"며 "영세한 무지화장지 업체들의 난립과 가격경쟁력 약화로 인한 탈세관행도 고질화돼 있는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위생용품 시장은 현재 과잉공급상태에 있기 때문에 제조업체의 판매목표 잔여물량을 소화하기 위해 무자료 시장과 타 업체 대리점끼리 구입 또는 교환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국내 업체의 경우 두루마리 화장지와 각티슈가 주요 제품인 반면, 다국적 업체는 기저귀와 생리대 등 다양한 제품을 제조·유통하기 때문에 소매상에게 판매하기에 앞서 제품의 구색을 맞추기 위해 무자료 구입 또는 교환이 관행처럼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회원사 탈퇴 등 협의회 파행운영…자정노력 '뒷걸음질'
이러한 업계의 탈세관행은 현행 국세청의 세원관리시스템으로 아우르기 힘든 부분이 있기 때문에 업체들의 자율 정화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중론.
이에따라 국세청은 지난 1988년부터 무자료 거래 및 탈세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부실거래 가능성이 높고 국민생활과 밀접한 업종을 중심으로 자율적인 협의회를 결성해 거래질서 정상화를 유도하고 있다.
화장지·위생용품 업계도 지난 1994년부터 거래질서정상화협의회를 설립해 탈세방지 및 무자료거래 근절 등 자율정화노력을 기울여오고 있으나, 최근 모나리자와 LG생활건강 등의 업체에서 협의회 활동에 불참할 것을 통보하는 등 파행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화장지·위생용품 거래질서정상화협의회 관계자는 "모나리자, 쌍용씨앤비, 대전 모나리자와 LG생활건강, LG유니참이 내부방침에 따라 협의회 동참을 거부하기로 했다"며 "이에 따라 남아있는 회원사도 탈퇴업체와의 차별화 및 인센티브가 없으면 동조할 기미가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무자료거래 근절을 위한 거래질서 정상화는 업계의 자율적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면서 "이러한 추세가 계속되면 업계의 세무·유통환경이 극도로 악화돼 무자료 및 변칙거래가 만연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 국세청, "업계 자정 필요, 협의회는 자율에 맡겨야"
이러한 화장지 업계의 탈세행각에 대해 국세청에서는 평소 관리를 하고 있으며, 업계의 자정노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입장.
국세청 관계자는 "대기업이라도 탈세는 분명 있을 수 있다"며 "다만 업체들이 자정노력을 더욱 열심히 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탈세실태에 대해 조사국에서 평소 모든 품목에 대해 관리하고 있으며, 거래질서가 특히 문란할 경우 올해 초 식·음료업계의 유통추적조사와 같은 일괄조사를 실시하게 된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특히 국세청은 거래질서정상화협의회를 탈퇴하는 업체와 관련해 협의회 활동을 강제할 수 있는 규정이 없기 때문에 업계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업체가 협의회 활동을 하고 안하고는 업계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며 "협의회가 국세청의 소속기관은 아니기 때문에 가입을 강제할 수 없고 단지 독려만 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식·음료업계가 무자료거래 등으로 인해 적발돼 검찰에 고발당한 상황에서 거래질서정상화협의회도 활동이 침체된 것으로 보인다"며 "업계 분위기가 어수선한데 협의회 활동을 독려하면 괜한 오해의 소지가 발생할 수 있어 조심스러운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화장지 업계의 비정상적인 거래가 만연하고 있음에도 거래질서정상화협의회마저 파행 운영된다면 업계의 정화는 세무당국의 손으로 넘어갈 수 밖에 없는 것. 국세청의 향후 대응이 주목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