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1일 정기국회 국정감사가 종료되면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정계개편 논의의 용광로 속으로 몸을 던져 정치권 새 판짜기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되며, 한나라당 내에서는 이른바 '빅3' 후보들의 경쟁이 본격적으로 가열될 것으로 전망된다.
여야의 대선후보 확정 시기는 2002년 보다 상당기간 늦춰져 내년 6,7월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게 흘러나오고 있긴 하지만, 이미 여권은 10.25 재보선 참패를 계기로 정계개편 논의의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한나라당내 대선주자군 역시 내달부터 지방강연과 외국방문, 민생현장 탐방 등 경선전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다양한 행보를 예약해두고 있다.
◇여권 정계개편 = 10.25 재보선을 포함해 2005년 이후 치러진 4차례 재보선에서 완패한 여당 내에는 "더이상 이대로는 안된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있고, 민주당과 고 건(高 建) 전 총리측은 '제3지대 신당 창당론'을 내걸고 여당의 핵분열을 재촉하고 있다.
우선 주목해야 할 것은 141석을 가진 우리당내에서 정계개편의 성격과 방향을 둘러싼 논란이 어떻게 가닥을 잡아나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10.25 재보선이 끝나자마자 당 지도부는 물론 계파별로도 각종 모임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고, 정계개편 문제에 대한 입장 발표도 온-오프라인 양쪽 공간에서 백가쟁명식으로 터져나오고 있다.
정계개편 논의의 큰 줄기는 우리당을 완전히 해체하고 민주당과 고 전 총리, 제3후보군 등과의 헤쳐모여식 신당 창당을 추진해야 한다는 '해체론'과 현재의 여당의 정체성을 유지한 상태에서 전면적인 리모델링을 한뒤 외부세력을 '+α' 형태로 통합해야 한다는 '개조론'의 양갈래다.
여당내 기류는 해체론이 대세를 형성하고 있는 가운데 친노(親盧) 그룹 의원들이 '당 사수론'을 내걸고 스크럼을 짜고 있는 상황이다.
국정감사 종료 다음날인 내달 2일 소집될 예정인 우리당 의원총회에서는 해체론과 개조론의 두 기류가 정면으로 격돌하는 공간이 될 가능성이 크다.
대선주자들도 내달초부터 '평화번영세력(김근태 의장)', '신중도통합론(정동영 전 의장)', '민생개혁세력 결집론(천정배)', '중도실용개혁세력 결집론(고 건 전 총리)' 등 새로운 정치세력 형성을 위한 기치를 전면에 내걸고 세 불리기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정계개편 논의의 구체적인 화두로는 당내에 정계개편의 방향과 틀을 논의할 수 있는 별도 기구를 구성할 것인지, 2월말로 예정된 정기전당대회를 내년 1월이나 12월로 앞당기는 것이 필요한 지에 대한평가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탈당 여부 등이 떠오르고 있다.
특히 김한길 원내대표는 내달 초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여당과 현 정부와의 관계 설정을 언급할 것으로 알려져 그 내용과 파장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와 함께 우리당은 내주중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 도입을 위한 선거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함으로써 정계개편을 위한 법률적 토대 마련을 시도할 방침이다. 선거법 개정안은 여권 후보군의 저변을 넓히는 동시에 한나라당 내부에 정치적 선택을 압박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게 우리당 관계자들의 기대섞인 관측이다.
여당내 대선주자들의 지지율이 1-3%대를 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대권 도전을 신중하게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정세균(丁世均) 산업자원부 장관의 연말 당 복귀설이 흘러나오고 있고, 강금실(康錦實) 전 법무장관, 시민운동가인 박원순(朴元淳) 변호사 등 새 후보군을 끌어들이려는 움직임도 물밑에서 진행중이다. 이는 오픈프라이머리 도입 문제와 맞물려 여당내 대선후보 경쟁구도를 한층 복잡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우리당 밖에서는 민주당 한화갑(韓和甲) 대표가 '제3 교섭단체' 구성을 공개적으로 제안한 데 이어 여당의원들을 상대로 한 개별적인 영입작업 등 여당 흔들기가 한층 가열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관련 민주당 추미애(秋美愛) 전 의원은 "여당과 민주당 모두 간판을 떼고 용광로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며 헤쳐모여식 통합을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나섰다.
범여권의 유력주자인 고 전 총리측도 국정감사가 끝나는 대로 구체적인 정치일정과 프로그램의 윤곽을 공개하겠다는 방침이어서 주목된다. 고 전 총리측은 제3지대에 통합신당을 만들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우리당 이인영(李仁榮) 의원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정계개편이 기성 정치권의 단순한 이합집산이나 의원들의 재편이 아닌 새로운 시대정신을 지닌 것이 되려면 명분과 에너지를 지닌 제3의 세력이 결합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에 대한 고민도 함께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대선 앞으로' 출발]-한, '빅3 경쟁' 본격화
◇한나라당 '빅3' 경쟁본격화 = 열린우리당이 정계개편 논의로 어수선한 가운데 한나라당은 이미 '빅3'를 중심으로 한 대선레이스의 스타트 라인을 끊으면서 멀찌감치 앞서가는 모습이다.
박근혜(朴槿惠) 전 대표는 원내에서, 이명박(李明博) 전 서울시장은 해외에서, 손학규(孫鶴圭) 전 경기지사는 현장에서 각자의 행보에 전념하고 있는 듯 하지만 물밑으로는 치열한 탐색전과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특히 내달초 국감이 끝나면 박 전 대표도 본격적인 대외활동에 나설 것으로 알려져 한나라당은 올연말부터 사실상 조기 대선국면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빅3' 가운데 유일하게 국회의원 신분인 박 전 대표는 지금까지 주로 의정활동에 충실했으나 내달부터는 대외활동 빈도를 높여 대권행보에 속도를 가할 계획이다.
박 전 대표는 내달 2일 서울 팔레스호텔에서 열리는 '서초포럼' 초청 특강을 시작으로 수도권에서 제주도까지 전국을 돌며 대학 등에서 강연정치를 재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 대표 재직시절 찾았던 각종 민생현장을 다시 방문, 본인이 했던 약속이 얼마나 지켜졌는지 점검하고 민심을 경청할 계획도 잡고 있다. 트레이드 마크인 '민생행보'를 재가동하는 셈이다.
박 전 대표의 대외활동은 국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그간 준비해온 정책비전을 제시한다는 취지지만 최근 여론지지도가 최대 경쟁상대인 이 전 시장에 뒤처지고 있다는 긴장감이 내심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박 전 대표는 또 내달말께 중국을 방문, 베이징(北京)과 남부지방 일부를 돌며 정재계 인사들과 면담하고 강연도 하는 등 해외활동에도 시동을 건다.
지난 7월 서울시장 퇴임 이후 수해복구, 내륙운하 탐방, 민생탐방, 해외 정책탐사 등 숨가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이 전 시장은 다음달에도 국내외에서 대권행보를 이어가며 여론지지율 '굳히기'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그는 독일, 스위스, 네덜란드 등 유럽 3개국 순방을 마치고 29일 귀국하자 마자 내달초 강원도, 호남 등을 방문하며 내달 8일부터는 일본을 찾아 도쿄대 특강, 쓰쿠바(筑波) 과학도시 탐방 등에 나선다. 내달말에는 전국의 농촌을 찾아 '농심(農心) 잡기'도 시도하고 내년초에는 인도와 중동 방문도 계획하고 있다.
'국가도약 어젠다와 경제살리기 콘텐츠'로 초반 기선제압에 성공했다고 자평하고 있는 이 전 시장측은 그러나 박 전 대표에 비해 '당내 장악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이를 만회하기 위해 당내 인사들과의 비공식 회동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00일 민심대장정'으로 당 안팎에서 호평을 받았던 손 전 지사는 다음달 둘째주부터 다시 100일간의 '제2차 민심대장정'에 들어간다.
최근 마친 1차 대장정이 농어촌을 중심으로 한 현장체험과 민심수렴 중심이었다면 2차 대장정은 이에 대한 해법을 찾는 작업이 될 예정이다. 방문지도 대도시 중심으로 바뀐다.
또 2차 대장정은 1차에서 주목했던 일자리, 교육, 주거, 노후 문제의 '4대 불안' 에다 북한 핵실험으로 인한 외교안보 불안, 한나라당 개혁을 포함한 정치개혁을 더한 '4＋2 과제'를 다룰 계획이다.
이런 6가지 주제를 갖고 각 지역의 관계 공무원, 전문가, 이해 당사자, 네티즌 등과 '끝장토론'을 갖고 해법을 함께 모색하면서 박 전 대표나 이 전 시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진한 지지율을 끌어 올려보겠다는 것이다.
한 측근은 "1차 대장정에서 농어촌과 벽지를 돌며 민생문제에 대한 현장의 소리를 들었다면 2차는 주요 거점 도시를 다니며 국민들과의 직접소통과 토론을 통해 국민 동의에 기초한 정책을 구상해 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