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술년(丙戌年)도 어느 덧 다 저물어 이제 몇 일만 있으면 정해년(丁亥年) 새해를 앞두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연말연시(年末年始)'입니다.
항상 그렇듯 연말연시는 지나간 한 해에 대한 돌이켜 봄과 반성, 앞으로의 '변화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게끔 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특히 한 해 동안 있었던 일들을 정리해 보고 나름의 성과와 미비점을 따져 보기에 적절한 시기인 것입니다.
국가 조세정책의 밑그림을 그리는 재정경제부, 그 중에서도 '브레인' 역할을 도맡고 있는 세제실의 입장에서 병술년은 그야말로 다사다난(多事多難)의 한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변화'의 궤적이 넓었던 것이지요. 저물어감과 다가옴이 교차되는 연말연시, 병술년 한 해 동안 세제실의 변화의 궤적을 하나 둘, 추적해 보겠습니다.
□ 인사(人事)의 변화=가장 먼저 손 꼽힐 만한 변화는 역시 인사(人事).
그 중에서도 세제실의 수장인 세제실장의 변화가 눈에 띕니다. 올해 6월 기존 김용민 세제실장이 조달청장으로 영전하면서 후임자로 지목된 인물은 허용석 현 세제실장입니다.
당시 조세정책국장을 맡고 있던 허 세제실장은 김용민씨(현 조달청장)의 뒤를 이어 참여정부 4대 세제실장으로 발탁됐습니다. 재경부에 불어닥친 (행시)기수파괴 바람을 타고 발탁된 허 실장의 행시기수는 22회.
취임 이후 6개월이 지난 현 시점에서 허 실장이 이끄는 '세제실호(號)'는 그럭저럭 순탄한 항해를 하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허 실장의 발탁과 더불어 세제실 핵심 브레인인 국장급 인사에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특히 사상 처음으로 '민간출신' 보직국장이 탄생하는 등 엄청난(?) 변화가 있었지요.
허 세제실장의 영전으로 공석이 됐던 조세정책국장은 당초 (고위공무원단 시행에 따라)'내부공모'형태로 선발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 관세국장이었던 이희수 국장이 조세정책국장의 바통을 이어 받았습니다.
이 국장의 자리이동으로 공석이었던 관세국장에는 '개방형 공모'라는 치열한 경쟁 끝에 장근호 전 홍익대학교 교수가 발탁됐습니다. 사상 처음으로 세제실에 '민간의 피'가 수혈된 셈이지요.
이로써 세제실은 허용석 세제실장-이희수 조세정책국장-권혁세 재산소비세제국장-장근호 관세국장 체제로 정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아마도 별다른 이변이 없는 한 참여정부 마지막까지 이 체제가 유지될 것으로 보입니다.
□ 조직(組織)의 변화=다음으로는 '조직(組織)'의 변화입니다.
병술년 한 해는 세제실 조직이 살을 찌운 한 해로 기록될 만합니다. 병술년 세제실은 조세정책국, 재산소비세제국, 관세국, 여기에 임시조직인 부동산실무기획단, 조세개혁실무기획단 체제로 출발했습니다.
올해 초 또 다른 임시조직인 근로장려세제추진기획단이 세제실 조직에 편입됐습니다. 부단장에는 백운찬 국장이 발탁, 참여정부 분배기조의 핵심인 EITC(근로장려세제) 제도 도입의 밑그림 그리기를 전담하게 됐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조직의 변화는 임시조직에 불과했던 조세개혁실무기획단이 전격적으로 상시조직으로 개편, 조세기획심의관실로 개편된 부분입니다(이렇게 까지 하면서 중장기 조세개혁 방안 추진에 공을 들였지만 현재까지의 결과는 신통치 않네요).
조세기획심의관실에는 기존의 국제조세과와 함께 새로이 조세분석과가 신설·편입됐습니다. 초대 조세기획심의관은 김도형 국장이 맡게 됐습니다.
이로써 세제실은 조세정책국-재산소비세제국-관세국-조세기획심의관실-부동산실무기획단-근로장려세제추진기획단 체제를 갖춰 명실상부 재경부 내에서 가장 막강한 부서로 재편됐습니다.
□ 연이은 사건·사고, 세제실은 말 많은 동네(?)=병술년 새해 벽두부터 재경부 세제실에 '대형사고'가 터져 나왔습니다. 지난해부터 쉬쉬하며 준비해 온 중장기 조세개혁 보고서 유출 사건입니다.
중장기 조세개혁 보고서 유출은 단순한 대외비 문건의 유출을 뛰어넘어 엄청난 사회·정치적 논란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오죽했으면 중장기 조세개혁 방안 발표 자체가 기약 없는 내일로 밀려 버리고 기본적 틀마저 대대적인 수정이 가해지는 등 수난을 겪었습니다.
게다가 재경부 역사상 처음으로 담당 국장 '보직해임'이라는 극단적 조치가 취해지면서(후에 '누명'을 벗고 복권이 되긴 했지만) 세제실은 씻을 수 없는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8·31부동산 대책의 실패도 세제실의 위상에 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왜냐하면 8·31부동산 대책의 핵심이었던 종합부동산세 과세강화 기조가 파장을 일으켰고 또 사회분열적 논란을 부채질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최근 종부세 부과징수 업무가 큰 탈 없이 끝이 났지만 논란의 소지는 여전히 남아 세제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 '황금돼지의 해'‥세제실의 2007년은?=2007년 정해년이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는 600년만에 한 번씩 온다는 '황금돼지'의 해라는 것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담이지만 출산율 저하로 고심하고 있는 정부 입장에서는 600년만에 돌아온 황금돼지 해가 고마울 수밖에 없겠지요.
또 다른 주목의 이유는 대통령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참여정부는 이제 붉은 노을 속에 반쯤 몸을 담근 채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 즉 정치적 민감성이 가장 증폭될 수 밖에 없는 시기에 직면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번 대통령 선거는 '조세정책'이 당락을 결정짓는 최대의 이슈로 부각될 것이라는 전망이 벌써부터 쏟아지고 있습니다.
세제실의 2007년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국가조세정책을 파고드는 극성스런 정치의 기운을 무엇보다 더 경계해야 할 시점이기 때문입니다. '정치적 색깔'에 줏대 없이 흔들리지 않는 세제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동안 세제실은 정치의 계절에 특히 취약한 모습을 보여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굳이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흔한 말로 우리나라 조세법이 '누더기'라는 비판을 듣고 있는 것은 이처럼 세제실이 '정치색'을 제대로 견제해 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뿌리가 깊은 나무처럼 흔들리지 않는 세제실의 모습을 보여주는 2007년이 되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