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오 "국세청, '노태우 비자금'에 유독 소극적…미룰 이유 없다"

"당시 노 전 대통령 300억원 조성 방법, 지위 이용한 뇌물 말고는 없다"

"1000만명이 영화 '서울의봄' 관람…우리 사회서 '전두환·노태우 신군부' 평가 끝났다"

"세무당국이 먼저 추징 조치, 법적 쟁송 벌이는 것이 일반적…국세청 이해 안 돼"

"모든 정당이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 찬성…의지만 있다면 법안 통과 가능"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상고심에 대한 심리불속행 기각 여부가 8일 결정되는 가운데, 두 사람의 이혼소송에서 '선경 300억원' 메모 등을 통해 드러난 이른바 '노태우 비자금' 의혹에 대한 진실 규명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 정치권에서는 노태우 전 대통령 일가의 비자금 환수를 위한 법안이 발의되고 국정감사 등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의 차명보험 납부, 아들 노재헌 씨가 이사장으로 있는 동아시아문화센터의 비정상적인 공시 및 상속증여세 회피 의혹, 차명 부동산투자회사를 통한 비자금 은닉 정황 등 새로운 비자금 의혹들이 제기되기도 했다.

시민단체에서는 노 전 대통령 일가를 조세범처벌법·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으로 검찰과 국세청에 고발해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과 국세청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는 상태다.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강민수 국세청장은 비자금 의혹과 관련해 "사실관계 부분이 3심에서 확정돼야 움직일 수 있다"며 대법원 판결까지 끝나야 세무 당국이 조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심우정 검찰총장도 "관련 고발장이 3건이 들어왔으며, 수사팀에서 관련된 법리나 여러가지를 검토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다.

이와 관련해 조세일보는 8일 노 전 대통령 일가의 비자금 환수를 위한 법안을 직접 발의한 진보당 윤종오 의원과의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윤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직무상 지위를 이용한 뇌물'로 규정했다. 나아가 헌정질서를 파괴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제대로 단죄 받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많지 않다며, '비자금 몰수법'을 통해 헌법 질서를 바로잡고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특히 "세무당국이 먼저 추징 등의 조치를 취하고, 그에 대해 법적 쟁송을 벌이는 것이 그동안의 일반적인 과정이었다"며 "국세청이 유독 이 문제에 대해 이렇게 소극적으로 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윤 의원은 "1000만명 넘는 관객이 영화 '서울의봄'을 관람한 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에 대한 평가는 이미 끝난 것 아닌가"라며 "여야가 의지만 있다면 법안 통과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루 빨리 법안이 통과되기를 기대하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윤 의원과의 일문일답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세상에 알려져 자금 환수 가능성에 국민적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비자금의 성격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관장이 법원에 제출한 증거가 김옥숙 여사의 '선경 300억원'이라 적힌 메모와 약속어음 사진이었다고 한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노태우씨의 재산상황을 볼 때 300억원을 조성할 수 있었던 방법은 직무상 지위를 이용한 뇌물 말고는 없다. 법원이 최태원 SK 그룹 회장에게 1조3800억원의 재산을 분할해야 한다고 판결한 것도 '300억원'이 노태우씨가 받은 뇌물임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올해 국정감사 과정에서 강민수 국세청장은 "사실관계 부분이 3심에서 확정돼야 움직일 수 있다"며 대법원 판결이 나온 후 조사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국세청에서 추가적으로 어떤 조치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국세청 입장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세무당국이 먼저 추징 등의 조치를 취하고, 그에 대해 법적 쟁송을 벌이는 것이 그동안의 일반적인 과정이었다. 국세청이 유독 이 문제에 대해 이렇게 소극적으로 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지적된 여러 사례들만으로도 지금 국세청이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미룰 이유가 없다.

-지난 6월 '헌정질서 파괴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을 발의한 의도와 배경, 법안의 주요 목적은 무엇인가.

노태우씨의 불법 비자금이 드러났지만 현행 법상으로는 환수하기 어렵다. 내란과 군사반란 사범의 불법적 재산 축적을 단죄할 수 없다면 사회적 정의 실현은 불가능하다. 헌정유린으로 집권한 전두환·노태우씨가 그 지위를 이용해 받은 뇌물과 같은 범죄수익에 대해서는 사망이나 공소시효 만료로 공소를 제기하지 않는 경우에도 몰수 또는 추징을 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해당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와 함께 공소를 제기하지 않는 경우에도 몰수를 선고할 수 있는 '독립몰수제도'를 담은 '형법' 개정안도 함께 발의했다. 이번처럼 범죄자가 사망하거나 공소시효가 만료되는 등의 사유로 공소 제기를 못한 때에도 특정 재산과 범죄와의 연관성만 입증하면 해당 재산을 몰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현재 법안이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입법(본회의 통과)까지 넘어야 할 난관이 무엇인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언제쯤 법안이 실행될 수 있을지 등에 대해 말해달라. 

소관 상임위인 법사위에 법안이 상정돼 소위원회로 회부됐지만 실질적인 논의는 이뤄지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 지난 21대 국회도 비슷한 취지의 법안이 발의됐다가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1000만명 넘는 관객이 영화 '서울의봄'을 관람한 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에 대한 평가는 이미 끝난 것 아닌가. 국민적 공감대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고 죄송하다.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해 조속한 심의를 촉구하기 위한 활동을 하려 한다.

- 공소시효에 관한 문제 등을 제기하고 있는 법안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소급효' 문제가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특례법의 형식으로 입법 발의한 측면이 있겠지만, '소급효' 문제에 대해 어떻게 극복할지 궁금하다.

현행 '헌정범죄시효법'에는 전두환·노태우의 헌정질서 파괴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배제하는 규정이 이미 들어 있다. 개정안은 여기에 바탕을 두고 내란과 군사반란으로 집권하고 그 직무상 지위를 이용해 받은 뇌물도 공소시효와 무관하게 국가가 몰수하도록 하는 내용을 추가하는 것이므로 소급효는 문제가 안 된다.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정치권의 의지만 있으면 된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과거사 청산을 위한 '5.18 특별법'이나 '친일재산귀속법'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일관되게 합헌 결정을 내려왔다. 헌법재판소는 프랑스가 나치 협력자를 소급해 처벌한 것을 두고 '과오와 폐해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문명사적 반성의 산물이며 여기에는 다시는 공동체 내에서 그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경계하는 결의와 성찰이 담겨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추가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군사반란과 내란으로 헌정질서를 파괴한 전두환·노태우 등의 범죄자에 대한 사법부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제대로 단죄 받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많지 않다.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몰수법'이 헌법 질서를 바로잡고 정의를 실현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모든 정당이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찬성하고 있는 만큼, 여야가 의지만 있다면 법안 통과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루 빨리 법안이 통과되기를 기대하고, 진보당도 최선을 다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