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시장조정자 제도 도입되나?...쟁점은 '유동성 제고' vs '시장 조작'

가상자산 전문가 "유동성 제고 위해 시장조정자 제도 도입 필요"

일각에선 "시장조성 활동, 시장 조작으로 악용될 수 있다" 우려 제기

김병환 금융위원장 "가상자산 제도화 부분 보폭 더 빠르게 가져갈 준비 하고 있다"

금융위, 올해 주요 업무추진 계획에 '법인 실명계좌 발급 단계적 허용 검토' 포함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은 특정 종목에 대해 지속적으로 매도·매수 양방향의 적절한 호가 제시로 시장 유동성을 높이는 역할을 수행하는 시장조성자(Maket Maker)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국내 가상자산 시장에도 시장조성자 제도 도입이 시급하다는 진단이 나온다.

반면 일각에서는 시장조성자의 활동이 지나칠 경우 시장 조작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면서 반대하기도 한다. 금융당국은 글로벌 상황 변화에 따른 가상자산 관련 규제 해소 움직을 보이면서 시장조정자 도입 여부가 초미의 관심거리다.

코빗 리서치센터 최윤영·김민승 센터장은 24일 '시장조성자(Market Maker), 시장 유동성의 열쇠' 제목의 분석보고서에서 "(국내 가상자산 시장은) 시장조성자 활동에 대한 명확한 규정과 제도적 기반이 부재해 여러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혁신금융 규제 샌드박스를 활용, 시장조성자 제도를 도입하고,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가상자산 시장에 적합한 법률과 제도를 마련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시장조성자와 시세조종 간의 명확한 구분과 가상자산사업자의 등록 요건 및 역할 정의를 통해 시장의 공정성과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시장조성자는 자본시장에서 시장 유동성 공급, 가격 변동성 완화, 공정한 가격 형성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시장조성 활동이 시장 조작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최·김 센터장은 "국내외 주요 증권거래소들은 다양한 시장조성자 모델을 통해 시장 안정성을 강화해 왔다"며 "학계에서도 시장조성자 활동이 유동성을 높이고 거래 비용을 낮추는 긍정적 효과가 있음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시장조성자는 시장 성숙도 제고와 투자 환경 개선에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는 평가지만, 국내 가상자산 시장은 법인 투자자의 가상자산 거래를 위한 실명계정 발급이 사실상 차단되어 있다는 점에서 시장조성자 활동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적 한계를 지닌다고 짚었다.

또한 시장조성자 활동에 대한 명확한 규정과 제도적 기반 부재 등 현재의 규제 공백은 합법적인 시장조성자 활동조차도 시세 조종으로 오해받을 위험을 높이며, 유동성 부족으로 인한 시장 변동성을 심화시키고 국내 거래소와 참여자의 글로벌 경쟁력을 저해한다고 지적했다.
 

가상자산 시장에서 시장조성자 유동성 제고 역할 중요 요소 부각

이들 센터장들은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에서 시장 조성자의 유동성 제고 역할이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가상자산시장은 전통금융 시장에 비해 유동성이 낮고 변동성이 크며, 특히 소형 알트코인의 경우 거래량 부족으로 인해 슬리피지(미끄러짐)와 스프레드 확대와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며 "이러한 환경에서 글로벌 시장조성자 업체인 윈터뮤트(Wintermute), 암호화폐 거래사 GSR 등은 유동성 공급과 가격 안정화를 지원하며, 코인베이스와 같은 해외 주요 거래소들도 유동성 프로그램을 통해 유동성이 낮은 거래쌍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체계적인 유동성 관리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를 통해 가상자산 시장은 전통금융 시장 수준의 유동성 및 효율성을 갖추기 위한 기반을 다지고 있다"면서 "시장조성자는 시장 성숙도 제고와 투자 환경 개선에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다만 시장조성자가 '유동성 제공자인가' 혹은 '시장 조작자인가'냐는 논란에 대해선 "시장조성자의 활동은 시장 유동성을 제공하는 데 필수적이지만, 그 과정에서 시장 조작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곤 한다"고 짚었다.

이들은 시장 조작은 의도적인 행위(trigger)를 통해 가격 변동(nexus)을 유도하고, 이를 통해 특정 포지션(target)에 이익을 주는 구조로 이루어진다는 Ledgerwood & Carpenter(2012년) 이론을 인용해 "이러한 프레임워크를 시장조성자의 활동에 적용해 보면, 시장조성자가 가격을 의도적으로 조작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시장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만약 어떤 시장조성자가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특정 자산을 대량 매도해 가격을 하락시킨 후, 저렴한 가격에 해당 자산을 매수하는 전략을 취한다면, 이는 시장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훼손하게 된다"며 "특히 개인 투자자들에게 불리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일부 학계에서 제기됐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이 이론에 따르면 시장 조작 행위는 종종 비경제적 거래를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비경제적 거래란 단순히 수익 창출이나 자산 배분과 같은 정상적인 경제적 동기를 벗어나, 시장 심리 왜곡이나 가격 조작 등 특정 의도를 달성하기 위해 수행되는 거래를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한국(자본시장법)의 경우 시장조성자 활동에 대한 세부사항이 한국거래소의 자율규정에 의해 관리되고 있는 점에 대해선 "시장조성자 자격조건, 호가 제출 의무, 혜택 등을 상세히 다루고 있지만 법률 차원의 명확한 정의가 부족해 시장조성자 활동과 시세조종 행위를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는 합법적인 시장조성 활동조차 가격 조작이나 거래량 부풀리기와 같은 비경제적 행위로 간주될 가능성을 키우며, 시장조성자 활동의 위축이나 비합법적 거래를 조장하는 환경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공식적 인정·규율하는 시장조성자 제도 마련 안 돼 있어

최·김 센터장들은 현재 가상자산 시장에서 유동성 공급 활동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거나 규율하는 시장조성자 제도는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으며 이는 자본시장법이 상장증권 거래에서 제한적으로라도 시장조성자 활동을 허용 또는 규율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점과 대비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해 7월 시행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은 가상자산 시장에서의 불공정거래 행위를 금지하고는 있지만, 시장의 효율성을 높이고 유동성을 제공하는 시장조성자 활동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나 예외조항을 포함하지 않고 있다"고 짚었다.

이어 "가상자산 시장은 자본시장법의 기본적인 예외조항조차 존재하지 않아, 시장조성자가 합법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부재하다"면서 "유동성 공급을 시도하는 참여자는 그 행위가 자칫 불공정거래로 간주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가상자산 시장에서 시장조성자 제도가 부재한 데 따른 문제점으로 ▲유동성 부족 상황에서 시장 가격의 극단적인 변동성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고 ▲초기 단계의 가상자산 시장은 시장조성자가 불공정거래 혐의를 우려해 활동을 기피하면 시장 성숙도가 낮은 상태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꼽았다. 규제 공백은 곧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에서의 경쟁력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다만 이들은 적법한 시장 조성자로 판단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함에 있어 고려해야 할 쟁점인 ▲거래의 반복성과 영리성에 대한 오인 가능성 ▲정보 비대칭성에 대한 잠재적 문제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우선 단순히 거래 빈도가 높다는 점만으로 가상자산 시장조성자 행위를 위법행위로 볼 것이 아니라, 가상자산 시장의 특성, 유동성 공급과 거래 활성화를 위한 목적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통상적인 수준을 벗어날 정도로 지나친 거래빈도가 아닌 경우에는 적법한 거래행위로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시장조성자는 정보 비대칭성으로 인해 개인 이용자에 비해 우월적 지위에서 거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정하지 못하다'라는 문제 제기가 가능하지만 시장조성자가 풍부한 정보 및 지식을 바탕으로 오히려 건전한 거래의 방향을 제시하고 합리적인 가상자산 시장 가격 조성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들은 규제 부재로 야기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우선 혁신금융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가상자산 시장에서 시장조성자를 우선 도입하고, 이를 통해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가상자산 매도/매수업 라이선스를 발급하는 등 자본시장법과는 차별화된 가상자산 시장의 시장조성 관련 법률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또한 "가상자산 시장의 성숙과 공정성을 위해 시장조성자와 시세조종 간의 명확한 구분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가상자산사업자 등록 요건과 시장조성자의 역할을 명확히 정의하고, 기존 자본시장법과의 형평성을 고려한 규제 개선이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당국, 법인 실명계좌 발급 단계적 허용 검토 입장...시장조성자 규제 해소되나?

한편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 22일 월례 기자간담회에서 "(가상자산 관련) 제도화 부분에 있어서 보폭을 조금 더 빠르게 가져갈 준비를 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조치나 방향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상황들을 보고 판단을 하겠다"고 말했다.

미국 트럼트 2.0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가상자산 정책 변화가 클 것에 대한 대비책 마련 차원에서 가상자산위원회 개최 등으로 부분적으로 탄력을 받고 있는 국내 가상자산제도 개선과 관련해 더욱 속도를 내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됐다.

김 위원장은 그간 금융당국이 가상자산 시장 육성과 투자자(이용자) 보호라는 양 갈래 선에서 일단 투자자 보호 쪽에 무게를 뒀지만 앞으론 시장 상황 변화가 예상되기 때문에 이런 기조가 달라질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지난 15일 개최된 제2차 가상자산위원회 회의에서 법인 실명계좌 허용 여부 관련 논의가 없었던 점에 대해 "가급적 빠른 시간 내에 입장을 정해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인 실명계좌는 현행법상 금지하고 있지 않지만, 금융당국이 이를 제한하도록 지도해왔다.

금융위는 지난 8일 '2025년 경제1분야 주요현안 해법 회의'에서 발표한 '2025년 주요 업무 추진계획'에 법인의 실명계좌 발급을 단계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KB증권 김지원 연구원은 24일 '국내 가상자산 정책 체크 포인트' 제목의 보고서에서 법인의 가상자산 투자 허용 여부와 관련, "지난 15일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법인의 가상자산 투자 허용 관련 입장을 빠른 시일 내에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며 "이는 산업계의 수요와 더불어 금융권에서도 비트코인 현물 ETF와 같은 가상자산 기반 금융상품 출시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부문"이라고 설명했다. 비트코인 현물 ETF가 국내에 도입되기 위해서는 법인(커스터디 업체)이 비트코인을 현물로 보유해야 하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김 연구원은 "지난 12월 일부 언론 보도를 통해 단계적 허용(1차: 중앙정부 부처와 지자체, 공공기관, 비영리법인→2차: 가상자산거래소 등 사업자의 원화계좌 개설→ 3차: 일반기업→ 4차, 5차: 금융회사 등) 가능성이 제기되었다"며 "금융당국은 결정된 사항이 없다며 반박 보도를 했으나, 향후 단계적 허용 가능성은 높아 보여 진행 상황을 지속 체크할 필요가 있겠다"고 부연했다.

이와 같이 금융위원장이 직접 나서 가상자산 규제 관련 언급을 한 점으로 미루어 법인 실명계좌 발급 금지 등 가상자산 규제의 상당 부분이 빠르게 해소될 것으로 기대되면서 시장 조성자의 역할이 확대될 지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