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첫 만남’서 韓기업 지원 따냈다.. 강민수 국세청장의 ‘세정 외교’

사우디 국세청과 만나 '코리안데스크' 지정 등 세정 지원 확보

양국 과세당국 회의~지원책 도출까지 주도..강 청장 수완 빛나

현지 韓 기업과 밀착 소통.. 아랍권 문화 익히며 철저한 준비도

지난 5일(현지 시각) 이역만리 열사(熱沙)의 땅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국세청이 1대1 소통을 통해 외교적으로 얻은 낭보로 눈길을 끌었다.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 국세청장이 양국 역사상 처음으로 독대한 회의에서 현지 한국기업들에게 힘이 되는 세정 지원 대책을 얻어낸 것이다. 이러한 성과의 뒤에는 맨 처음 회담이 성사될 때부터 사우디 당국을 설득해내기까지 현장을 주도한 강민수 국세청장의 현장 밀착적인 '세정(稅政) 외교'가 있었다는 후문이다.

중동 유일의 G20 회원국이자 1위 산유국으로 잘 알려진 사우디는 최근 몇 년간 대규모 개발 붐으로 우리 기업들의 '러시'가 이어지는 지역이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해외 건설산업의 최대 발주국(119억 달러)이고, 특히 빈 살만 왕세자 주도의 '비전 2030'을 비롯한 개혁정책 이후 네옴 시티 등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가 본격화해 이른바 기회의 땅으로 급부상했다.

이런 사우디에서 외교부나 산업통상자원부가 아닌 국세청에서 무역·통상 분야의 새로운 물꼬를 튼 계기는 뜻밖에도 강 청장이 국제무대에서 보여준 활동이었다. 강 청장이 지난해 11월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세청장회의에서 인공지능(AI)를 활용한 디지털 세정 혁신 사례를 발표했던 것을 보고 사우디 당국자들은 회의장에서 직접 다가오며 큰 관심을 보인 것. 이후 양측의 우호적 소통 끝에 이번 초청까지 이어진 것이었다.
 
그렇게 사우디 국세청과의 양자회의가 예정된 지난 5일, 강 청장은 리야드에서 오찬 간담회를 열고 현지 진출한 우리 기업들부터 만났다. 이번 회담은 한국과 사우디 양국의 세정 협력을 다지는 것도 중요했지만 우리 기업이 맞닥뜨린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고,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중동붐'에 대한 기대와 달리 사실 외국계 기업에만 법인세를 부과하는 사우디 과세 정책 탓에 우리 기업들은 차별과 이중과세 등 고통을 겪고 있었다. 이 때문에 사우디 동부 한 기업의 세무담당 실무자인 정 모 팀장은 리야드까지 400km를 날아와 이날 간담회에 참했다. 그는 "사우디 국세청 담당자를 만나는 것조차 어렵다. 국세관 파견과 같은 소통창구 마련이 절실하다"며 현지 세무조사로 인한 애로사항을 토로했다.

당초 국세청 내부에서는 이번 간담회에 대해 다소 형식적인 자리로 생각하고 참석하는 기업이 있을까 우려하는 견해가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걱정이 기우였다는 듯, 간담회장은 금세 기업과 국세청 관계자들의 소통 열기로 뜨거워졌다. 강 청장도 "우리 기업 보호를 위해 뭐라도 하겠다"며 열의를 내비쳤고 참석자들도 앞다퉈 세무애로와 건의사항을 제시해 간담회는 결국 예정된 시간을 초과할 정도로 길어졌다고 한다.
간담회를 뒤로하고 30분 만에 사우디 국세청으로 달려간 강 청장. 이때부터는 그가 협상력을 발휘해야 할 시간이었다.

강 청장은 수하일 아반미 사우디 국세청장과의 양자회의에서 특유의 친화력과 유창한 영어를 활용한 밀도 높은 대화를 이어갔다. 아반미 청장을 비롯한 사우디 당국 고위간부들과 격의 없이 소통했고, 현지 우리기업이 직면한 세무애로에 대해 강력하게 어필했다.

그 결과 사우디측은 ①한국 기업들이 세금 문제를 전달할 수 있는 소통창구인 코리안데스크 지정 ②한국 국세청이 임석한 가운데 현지 한국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워크숍 개최 ③ 우리 기업 이중과세의 신속한 해소 노력 등 세무애로에 대한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청장의 관심을 약속했다. 특히 코리안데스크 지정은 중동 국가에서 우리 기업 세정지원의 물꼬를 튼 것이라는 평가다. 과세당국이 납세자에게 직접 설명하는 워크숍 개최는 사우디 국세청으로서는 매우 예외적이고 특별한 조치로 우리 기업들의 세무 불확실성을 크게 해소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날 사우디와의 회의가 마냥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 한국에 진출한 사우디 기업은 거의 없고, 우리 기업들만이 사우디에 다수 진출해있는, 마치 '기울어진 경기장' 같은 상황이 사우디 입장에서 양국 협력이 그리 달갑지 않을 수도 있었다. 강 청장도 어떻게 하면 한국이 사우디의 과세 주권을 존중한다는 인상을 주면서도 우리 기업의 세무애로를 효과적으로 호소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강 청장은 세무애로를 해소하면 한국 기업이 더욱 힘내 사우디에 안겨줄 경제적 이로움을 부각시키는 등 사우디측을 설득할 전략을 치밀하게 준비했다. 또 친밀감을 조성할 아이디어를 메모장이 빼곡히 채워질 정도로 준비해 회의 초반 분위기를 주도해나갔다. 강 청장은 출장 전부터 사우디 주재원 출신 작가의 '이제 다시, 사우디아라비아' 등 서적과 유튜브를 섭렵하며 아랍의 문화를 익히는 한편, 더욱 친밀한 소통을 위한 '비장의 무기'로 28개 아랍어 문자까지 익힐 정도로 정성을 기울였다고 한다.

회의를 마친 후 국세청이 가장 먼저 찾은 것은 우리 기업들이었다. 오찬 간담회 참석자들에게 회의의 주요 결과를 공유했고, 특히 400km를 건너온 참석자로부터 "매우 뜻깊은 시간이었고 긍정적 성과를 이끌어 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다. 앞으로도 국세청은 워크숍이 내실 있게 개최될 수 있도록 사우디 측과 긴밀하게 협력하는 한편, 이중과세 해소를 비롯한 기업의 애로사항 해결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