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청유공 등으로 사무관 승진을 한 후 국무총리실을 거쳐 다시 국세청으로 복귀를 하였지만 2년여의 사무관 임용경력이 취소당했다. 어떤 연유에서든, 이유야 어떻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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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오랫동안 국세청 인사분야에서만 근무했던(연속 16여년) 그가 그런 일을 치러야했던 과정을 취재하고 싶었지만 시인은 극구 사양했었다. 하지만 시집을 냈다는 소식에 기자는 시인이 있는 하남으로 향했다. 이번에도 시인은 기자의 질문에 일체의 답을 회피했다. 그러나 시인에게서 건네받은 시집 <고드름>에 그 답이 얼추 녹아있었다. |
무엇을 용서해달란 말인가. 무엇이 그의 한줄 인생에서 5년이란 세월을 잘라내고 싶어 한 걸까. 아주 낮게 앉은 시인이 겸손하게 외치고 있는 <용서>란 말이 시 <고드름>과 <사라진 힘>에서 여실히 나타났다.
예리하지 않고서는 견뎌낼 수 없는 오기였다
가장 약한 것이 가장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밤마다 처마 밑에서 울던 회초리였다
거꾸로 매달려 세상을 볼 수밖에 없었던
날카로운 송곳이었다
냉혹하게 자신을 다스릴수록 단단해지던 회한이었다
언제 떨어질까 위태롭다고들 했지만 그런 말들을 겨냥한
소리 없는 절규였다
복수하지 마세요 그 복수의 화살이 조만간 내게로 와
다시 꽂힙니다
절 마당엔
노스님이 가리키던 동백꽃 하나 투욱, 지고
이쯤에서 풀자 내 탓이다 목이 마르다
처마 끝에서 지상까지의 거리를 재는 낙숫물 소리
결국엔 물이었다
한 바가지 들이켜지 않겠는가
- <고드름> 전문
꺾은 장미를 화병에 꽂아놓은 이튿날 저녁
화병속의 물이 모두 사라졌다
잘라내려는 가위의 힘보다 잘리지 않으려고 버티던 힘이
체념보다도 더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던 끈끈함이
여기저기 화병 속 밑바닥에 눌러 붙어있다
살려고 바동거린 마지막 혈흔이리라
꽃보다 가시 색깔이 더 짙은 것으로 보아
피맺힌 절규는 저리 시뻘겋다 못해 날카롭다
여기까지가 내 길의 끝인가 알기라도 한 듯
목 떨군 향마저 깊다
죽음도 힘이 필요한 걸까
그러쥐었던 꽃대궁 색깔 또한 검붉은데
속 전부를 드러낸 장미의 힘이 핏빛으로 얼룩졌다면
얼룩진 핏빛 메마르도록 내몬 힘 또한
남의 눈에 피눈물 흘리게 하는 일
죽지 않으려는 힘을 보듬고 있던 화병이
더 허허해 보이는 것은 왜일까
마른 꽃처럼 부귀영화가 바삭거릴 때
폈던 주먹을 다시 쥐어본다
- <사라진 힘> 전문
박정원을 제일 아끼는 시인 정호승 선생은 추천 글에서 시인을 <물의 시인>이라고 정의했다.
박정원은 물의 시인이다/…… (중략)……/ 그는 햇살에 고드름이 녹는 순간 문득 깨닫는다/ 그 날카로운 고드름도 결국 물이라는 사실을/ 가해와 피해와 공격과 방어와 사랑과 용서가 결국 한 몸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박정원의 시는 이 깨달음의 바탕위에 깊게 무위의 뿌리를 내리고 있다/ 본질을 외면하고 잡다한 외형에 치우쳐온 우리의 삶을 성찰하는 눈!/ 본질을 똑바로 볼 수 있는 물의 눈!/ 그 눈이야말로 시인 박정원의 눈이다/ 그 눈은 ‘꺾은 장미를 화병에 꽂아놓은 이튿날 저녁/ 화병속의 물이 모두 사라졌을’ 때/ 화병 밑바닥에 눌러 붙어 있던 ‘버티던 힘’을 보고/ ‘살려고 바동거리던 마지막 혈흔’을 본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시는 아프되 아프지 않고/ 고통스럽되 고통스럽지 않다/ 그는 한때는 날카로운 칼이었던 고드름 녹은 물을 따뜻하게 데워/ 춥고 목마른 우리들에게 한 대접씩 건넬 뿐이다/ 이 시집이 화해와 용서의 긴 과정을 보여주는 것은 바로 그런 까닭이다/ 나는 이 시집이 마치 고향집 뒤뜰 장독대 위에 놓여 있던/ 우리들 어머니가 새벽마다 일어나 정성스레 떠놓던 한 대접 정한수 같아/ 그 물을 마신다
시인이 '국세청 문우회'를 창립(1997년 5월)한 후, 그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국세청에는 유독 많은 시인이 배출됐다. 황상순, 이영식, 이규흥, 김정호, 김영환, 이희섭, 문영일, 강흥수 시인 등 국세공무원으로서의 바쁜 일상에도 불구하고 한 토막 시를 찾는 문인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
| 이들 국세공무원 '문인'들이 자칫 딱딱해져 버릴 수 있는 국세청 조직의 정서순화에 큰 몫을 하고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깊은 성찰의 시간을 지낸 후 낸 '시인 박정원'의 다섯 번째 시집(한국문화예술진흥원의 2006년도 문예창작기금에서 지원), '고드름'을 통해 그가 전해주는 이야기들을 마음 속에 품을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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