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은 또 "제가 매우 황당한 것은 믿음을 무겁게 가지고 있던 사람에게 그 믿음이 무너졌을 때, 그것이 얼마나 난감할 일일지는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며 곤혹스런 심경을 감추지 못했다.
아울러 "대체로 저는 제 스스로의 판단에 대해서 비교적 자신감을 가지고 그렇게 처신해 왔던 편인데, 이번 문제는 제 스스로의 판단에 대한 자신이 무너진 것이다. 그래서 무척 당황스럽다. 매우 당황스럽고 매우 힘들다"고 까지 말했다.
대통령은 국가 운명을 뒤바꿔 놓을 만큼의 거대권력을 국민들이 부여한 사람이다. 그의 결정과 판단은 언제나 정확해야 하기 때문에 대통령은 주위에 비서와 보좌진을 제도를 통해 갖춰 놓고 언제든 필요한 정보를 얻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그 기능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사건이 불거진 지 열흘이 넘도록 대통령은 정확한 사태를 진단하지 못한 채, 의혹을 제기하는 언론만 탓해야 했다. 제기된 의혹들이 사실로 점차 확인되는 상황에서 대통령은 할 말을 잊었다.
청와대에는 민정수석실 안에 민정·사정·공직기강비서관을 두고 안팎에서 취합한 정보를 바탕으로 대통령의 친·인척 관리와 고위공직자 감찰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고 있다.
민정수석실은 수시로 국가정보원과 검찰·경찰·국세청 등의 정보보고와 민원 제기 등을 통해 각종 내용을 파악해 대처 방안을 수립, 대통령이 정확한 사고판단을 할 수 있도록 보좌하는 업무가 본업이다. 실제 수사권은 없지만 의혹으로 의심되는 내용은 검찰과 경찰에 수사 의뢰를 할 수 있다.
대통령이 변양균 사건에 대해 난감함을 통감하고 자신의 판단력마저 의심할 정도로 자괴감을 느끼게 만든 것은 전적으로 민정수석실 책임이라는 얘기다.
노 대통령에 따르면 청와대 비서진 일부는 되레 '뭐라고 국민들께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옳지 않느냐'며 대통령에게 대국민 사과를 건의했다고 한다. 어느 누구도 책임을 통감하지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에게 사과를 건의한 것이다.
특히 천호선 대변인에 따르면 민정수석실은 대통령의 정확한 판단력에 필요한 정보제공을 못한 이유로 지적되는 검증시스템의 부실에 대해 '권한의 한계 때문'이라고 변명하고 있다.
민정수석실은 수사권이 없어서 조사의 강제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고, 아주 특별한 예외적인 경우를 빼 놓고서는 민간인을 조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는 통화내역도 본인의 동의를 받지 않고서는 확인할 수 가 없는 상태여서 변씨를 검증할 수 없었고, 검찰이 이미 수사를 시작해서 청와대가 이중적으로 수사를 할 수도, 조사를 할 수도 없었다고 해명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변씨와 같은 사건이 앞으로 추가적으로 발생하더라도 권한의 한계 때문에 대통령이 자괴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또 연출될 수 있다는 말과 다름 아니다.
이는 국민들이 청와대에 어떤 권한과 책임을 부여했는지 이해를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대통령의 측근비리를 수사하겠다는데 이를 반대할 국민은 그 어디에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수사권한이 없다면, 검사를 파견받아 업무를 처리할 수도 있다.
청와대 비서진은 권한의 한계를 말할 것이 아니라 무능 또는 직무유기를 인정해야 하며, 국민들에 대한 사과를 대통령에게 건의하기에 앞서 대통령에게 제대로 보좌하지 못한 책임을 지는게 옳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