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과세 인프라 미비‥상속·증여세 과세 어려워
최근 미술 투자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음에도 불구, 2003년도에 관련 법안 삭제로 인해 과세할 수 있는 근거가 사라져 현재는 미술품 거래로 억대 차익을 얻어도 양도소득세가 없다.
그렇다고 아예 미술품에 대한 세금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술품은 엄연한 상속·증여세 대상이다. 현행 상속·증여세법상 미술품은 시가로 평가하되 시가 확인이 어려운 경우 2인 이상의 감정인에 의한 감정가의 평균가로 신고하도록 돼 있다.
문제는 미술품 자체가 동산으로 분류되고 등기등록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명의변경 대상이 아니라는 점. 명영호 세무사는 "이런 특징으로 인해 제3자를 통해 거래 사실이 확인되는 경우 외에 얼마든지 악의를 가지면 상속재산에서 제외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강오 세무사도 "상속 증여되는 것 중에 등기등록 대상이 아닌 것은 미술품 외 서화, 골동품, 기계 장치 등이 있는데 공표가 되지 않는 한, 몇 천 만 원짜리 골동품이 집에 있어도(세금 내지 않으려고) 신고를 하지 않으면(과세당국이)모를 수 있다"고 밝혔다.
미술품에 대한 과세 자체가 '실효성'이 없는 상황에서 미술품의 가격이 치솟고 있으니 땅 대신 상속 또는 증여할 수 있는 좋은 구실을 만들어 준 셈이다. '대가 없는 부의 이전'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 "집에 고가의 그림 있다고 떠들 사람이 있을까?"
미술품을 온라인 경매로 구입할 경우 위탁자와 낙찰자, 낙찰금액정보가 기록으로 남기 때문에 상속·증여세를 과세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한 세무사는 "전자상거래나 (온라인)경매로 미술품을 많이 구입하는데 금액이 공개적으로 알려지게 되므로 추후 세무조사를 받게 되면 압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화랑이나 오프라인 경매의 경우 세금계산서나 현금영수증 등을 원칙적으로 발급해줘야 하는데도 고객이 원할 경우에만 주고받는 것으로 알려져, 이럴 경우 상속·증여세를 비켜나갈 빌미를 제공할 가능성이 높다.
P화랑 관계자는 "미술품을 구매하면서 세금계산서나 현금영수증을 발급해주는가"라는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했지만, "구매자가 원할 경우에 한해서"라는 사족을 달았다. 다른 오프라인 경매사도 "구매자가 원할 경우에 한해 세금계산서나 현금영수증을 발급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미술품에 대한 상속·증여세를 거둘만한 과세 인프라가 명확하지 않아 미술품에 세금을 부과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부정적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정준모 한국시각문화정책연구원 원장(미술평론가)은 "세금을 부과할 게 있고 안 할 게 있다. 미술품에 과세를 하면 절에 있는 불상에도 과세할 것이냐, 조상이 물려준 신주단지에도 과세할 것이냐"며 "5대째 할아버지가 오원 장승업의 그림을 막걸리 두말에 샀고 현재 그 그림이 1억 원이라면 상속세를 얼마 내야하는가"라고 따져 물었다.
한 세무사는 이와 관련해 "현행 세법에는 유족들의 구성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1억 짜리 그림 하나만 있으면 기초공제로 세금이 부과되지 않고, 추가적인 친족이 없는 경우 5억까지 비과세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재산과 함께 오원의 그림이 5대째 내려와 막걸리 두말 하던 가격이 1억원으로 높아졌다면 상속·증여세법에 의해 1억원 이하 10%의 세율이 적용돼 약 1000만원의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이 경우라면 정 원장의 말대로 본의 아니게(?) 물려받게 된 미술품으로 괜한 세금만 낼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런 이유로 미술품에 대한 상속·증여세는 상속 또는 증여 받은 자가 세금을 내겠다고 '자진신고' 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세금을 거두기가 쉽지 않다.
명 세무사도 "(온라인) 경매 등을 통해 거래되는 경우 경락가액을 시가로 볼 수 있으나 쉽게 공개되지 않고 그 외의 경우도 감정을 받지 않는 한 시가확인이 불가하다"고 밝혔다.
□ 1차 시장이 투명하지 않은데 상속세는 무슨...
미술품 거래 시장 자체가 투명하지 않아 현재법에 명시된 화랑이나 오프라인 경매회사들의 세금신고가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미술품 판매업체의 세금신고가 잘 안 지켜지는 상황에서 미술품 상속·증여세가 제대로 걷히기가 무리(?)인 셈.
김범훈 포털아트 대표는 "누구의 그림을 누구한테 얼마에 팔았는지 반드시 신고해야 하고 작가나 판매회사가 세금을 제대로 내야 위작이 없어진다"며 "오프라인 경매나 화랑 등에서 총 낙찰금액이 올라가고 있다고 하지만 나중에 그들이 내는 세금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경매의 경우 일반적으로 개인이나 기업이 갖고 있던 미술품이 경매회사를 거쳐 낙찰자에게 가는데 그 과정에서 낙찰금액의 약 5~10%의 수수료가 경매회사의 수익으로 돌아간다. 낙찰금액이 높아지면 자연히 경매회사의 세금도 증가하게 된다.
김 대표는 "내년 4월에 세금 순위로 작가들을 발표하겠다"며 "미술이 국가 경쟁력이기 때문에 반드시 투명화해 세금을 내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정부, "미술품‥과세할 생각 없다"
지난 2003년 미술품 등 양도차익 과세 제도를 강행하려 했다가 허무하게 무너져 내린 '경험'을 가진 정부는 현재로서는 미술품 과세에 대한 어떠한 입장도 없는 상황이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지난 2003년 당시 미술품 양도세 과세에 대한 법안이 폐지된 이후 현재는 과세되지 않고 있다"며 "현재로선 미술품에 대해 어떠한 방식으로든 과세 움직임이 없다"고 말했다.
과세제도를 입안하는 재경부가 이 같은 소극적 자세를 보임에 따라 행정당국인 국세청도 '먼 산만 바라보고 있는' 형국이다. 과세제도 자체가 미비하니 국세청으로서는 과세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상황인 것이다.
현행 법상 상속·증여시 관련 세금(상속·증여세)을 징수할 수 있지만 상속·증여자가 내용을 신고하지 않으면 사실상 세금을 과세할 수 없다는 것이 국세청의 입장. 즉 '세무조사'를 하지 않는 이상 미술품 상속, 증여 행위가 있었다는 것도 밝혀내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이와관련 한 전직 세무공무원은 "현행 법상 미술품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제도가 없기 때문에 세금부과는 어렵다"며 "상속 및 증여시 신고를 할 경우 세금부과가 가능하지만 신고를 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하고 다만 세무조사 등을 통해 적발, 세금을 과세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훈 서울시립대 교수는 이와 관련해 "미술업계에서는 시장이 죽을 것 같고, 과세당국에서도 미술품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아 과세에 어려움이 있다는 우려가 있다"며 "그러나 미술품이라는 자산을 팔아서 돈을 벌었다면 공평성 차원에서 과세를 해야 하는 게 맞다"고 밝혔다.
또한 박 교수는 "최근 자금들이 부동산에서 주식으로, 주식에서 또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미술품에 과세한다고 시장이 죽을 것 같지는 않다"며 "과세당국에서도 적절한 조세행정을 개발해가면서 과세를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