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규제개혁 종합연구결과를 발표한 한국경제연구원의 김종석 원장은 국내 규제 실태를 이렇게 단적으로 표현했다.
이번 연구는 정부가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산하 연구기관인 한경연에 정부에 등록된 규제에 대해 전수 조사를 벌여줄 것을 요청해 나온 것으로 정부가 민간기관에 전면적인 규제조사를 의뢰한 것도 이례적이지만 조사 대상이 전례없이 방대하다는 면에서 주목받았다.
조사 결과는 정부 규제 5천25개 중 약 3분의1에 해당하는 1천664건이 폐지 또는 개선의 대상으로 지적돼 현 정부들어 계속된 규제개혁에도 불구하고 시민과 기업이 느끼는 체감규제는 여전히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 정부 임기를 불과 몇달 남겨놓고 제시된 이번 규제개혁안은 이번 정부에서 얼마만큼 받아들여질지 미지수이나 차기 정부로 넘어가더라도 규제개혁의 밑거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 다시한번 드러난 '규제공화국' = 전경련과 한경련은 이번에 총 등록 규제 5천여건 중 폐지 516건, 개선 1천114건을 건의했다. 규제 3건 중 1건이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현재의 정부 등록 규제 5천25건은 지난해말의 8천여건에 비해 3천여건이 감소한 것이나 이는 수치상의 계산일 뿐 실제 규제건수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것도 조사 결과 드러났다.
규제 건수가 3천여개 감소한 것은 규제분류 기준을 변경한 결과일 뿐 정작 규제 자체는 남아있다는 것이다.
이번에 조사 대상이 된 규제는 올해 5월 현재 정부 규제개혁위원회에 등록된 것에 한정될 뿐 미등록 규제나 행정규제기본법이 명시적으로 적용을 배제하고 있는 국가안보 관련 규제, 입법부.사법부.헌법재판소.선거관리위원회.감사원 소관 규제, 조세 관련 규제는 제외됐다.
미등록 규제는 이번에 구체적인 규모가 제시되지 않았으나 상당한 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최근에는 의원 입법에 의한 규제가 크게 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경연은 현재 정부 입법과 의원 입법에 의한 규제 건수가 약 2대 8로 의원 입법이 전체 입법의 약 80%를 차지하고 있으며 정부가 의원입법을 유도함으로써 우회적인 방법으로 규제를 확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판치는 '불량규제' = 효과보다 비용이 훨씬 큰 규제, 특정 집단에 특혜를 제공하거나 국민의 경제자유와 기회를 제한하는 규제, 공무원에게 과다한 재량권을 부여해 비리의 소지를 발생시키는 규제, 현실성이 떨어지는 규제 등 '불량규제'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기관과 건강보험공단의 연결 전산망으로 가입여부가 확인돼 증거 서류로 거의 이용되지 않고 있는 건강보험증 발급, 비현실적인 자동차 최고제한속도, 시각장애인에게 흰지팡이를 짚고 다니도록 하는 규제, 첫 설치기간 15년 및 3회 연장 가능한 분묘설치기간, 시도 공무원이 수시로 온천이용시설에 출입해 제한없이 각종 검사를 할 수 있도록 한 규제, 저장탱크의 안전밸브 검사를 위해 2년마다 내부를 비워야 하는 규제 등이 불량규제로 지적됐다.
◇ 규제개혁추진체계도 개선해야 = 규제를 효과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규제만 줄일 것이 아니라 규제개혁 추진체계와 규제관리시스템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됐다.
현정부는 획기적인 규제개혁을 위해 규제개혁추진회의, 규제개혁장관회의, 규제개혁기획단을 신설했으나 규제개혁 공식조직인 규제개혁위원회와 중복돼 비전문성과 비효율을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최근들어 의원입법이 늘어나는 만큼 국회규제개혁위원회를 상설조직으로 신설하고 연구, 조사조직을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규제영향분석의 유명무실화, 효과적 규제관리를 위한 규제정보시스템의 부실, 담당 공무원에 대한 형식적 규제개혁 관련 교육.훈련, 규제총량제 및 규제일몰제의 형식적인 시행도 문제점으로 드러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