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군표 국세청장 뇌물수수 의혹 관련
요즘 국세청 사람들의 안테나는 온통 부산 쪽으로 고정돼 있습니다. 곧 쏟아질 것 같은 소나기는 오지 않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비를 예고하는 듯한 부산발 천둥과 번개만 요란하기 때문입니다.
30일 역시 국세청 사람들은 "이병대 부산지방국세청장이 정상곤씨를 만나 '상납관련 진술을 하지 말라'고 입막음을 시도했다"는 천둥소리에 화들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나름대로의 논거를 들이대며 '비는 오지 않을 것'을 예측하며, 왜 매번 석연치 않은 의혹만 계속되는지 몹시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국세청 사람들은 "이병대 부산청장이 '6000만원을 전군표 국세청장에게 상납했다'고 정상곤씨가 진술도 하기 전에 만나, 전군표 청장의 지시에 따라 '상납진술을 하지 말라'고 입막음을 시도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입니다.
상납사실을 진술한 이후 '진술을 번복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면,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한 물불 안가리는 행위로 추측할 수 있겠지만, 상납사실을 진술하기 전에 '아예 상납사실을 입밖에 내지 말라'고 권고하는 일이 있을 수 있겠냐는 것이지요.
이 이야기는 정상곤씨가 구속되자마자 전 청장이 이 부산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정상곤에게 돈을 받았다"고 털어놓은 뒤, "부산청장이 그를 만나서 내게 돈을 줬다는 진술은 하지 말라고 입을 막아라"라고 지시를 해야 전개가 가능한 스토리입니다.
이 스토리가 사실이기 위해선 현재로선 두 가지 가정을 추론해 볼 수 있겠습니다. 첫째 지방국세청장에 임명된 사람들은 관행적으로 국세청장에게 주기적으로 돈을 상납하고 있었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전 청장이 이 부산청장에게, 이를테면 "이 청장도 알다시피 우리에겐 관행이 있지 않소. 이번에 정상곤씨가 자칫 관행을 털어놓을 수 있으니, 그것을 막아 주시오"라는 식의 청탁을 했을 경우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뇌물상납을 모르는 사람에게 굳이 뇌물사실을 털어 놓아 화를 키울 이유가 없겠지요.
그런데, 뇌물상납관행에 대해 지방청장을 지낸 전·현직 간부들은 한결같이 부인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있었지만, 73년부터 78년 말까지 5년 넘게 국세청장에 재임한 제3대 고재일 청장 때 이 관행을 없앴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세울 수 있는 가정은 전 청장이 이 부산청장을 매우 신뢰한다는 것입니다. 금품수수사실을 미리 털어놓고, 증거인멸(?)을 시도하려면 매우 강력한 상호 믿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국세청 사람들은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작년 12월 28일 부임한 이병대 부산청장은 적어도 올 연말까지는 부산청장에 재직하겠다는 희망에도 불구하고, 올 하반기 유력한 교체대상으로 거론 돼 왔기 때문입니다.
즉, 전군표 청장은 명예퇴직대상자들을 대상으로 금품을 수수하고, 또 다른 명예퇴직대상자에게는 이 사건의 무마를 청탁했다는 얘기가 되는 것입니다.
이 쯤되면 전 청장은 피도 눈물도, 일말의 양심도 없는 '철면피'라는 거지요. 그 뿐 입니까. 전 청장은 이러한 일들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예상치 못한 미련한 '곰탱이'이거나, 뇌물 수천만원정도는 일상적으로 받아 챙기고 오리발 내미는 간 큰 '탐관오리'였음을 우리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얘기가 되겠지요.
이에 따라 국세청 주변에선 "검찰의 주장과 국세청 정황 중에 어떤 것이 진실인지 빨리 양단 간에 결정이 나야지, 궁금해서 미치겠다"며 "검찰이 칼을 빼 들었으면 확실한 증거를 찾아 구속영장을 청구할 일이지, 왜 여러 의혹만 요란하게 들리는지 모르겠다"는 말들이 많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