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개정돼야 기업들 움직임 빨라지게 될 것"
경제를 한눈에 읽을 수 있는 기업 재무제표. 빠르면 2009년, 재무제표를 국제회계기준(IFRS)에 맞춰 작성하는 기업이 나올 수 있다.
한마디로 국가 경제전반에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는 사안. 하지만 지금 국내 기업들의 IFRS 준비 움직임은 '거북이 걸음'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회계법인들에 따르면 현재 IFRS 도입에 대비해 준비를 하고 있는 상장기업은 20~30개에 불과한 실정이다. 그것도 은행권을 중심으로 한 금융회사들과 덩치가 큰 제조업체들로 회계법인과 IFRS 도입을 위한 준비단계 자문 계약(3단계 과정 중 1단계 수준)수준에 머물러 있다.
우리나라 전체 상장회사 수는 678개, 이중 자산 총액이 2조원 이상인 기업이 90여개인 점을 감안할 때, 자산 총액 2조원 이상인 기업 중의 3분의 1만이 IFRS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는 셈. 전체 상장기업으로 봤을 때는 약 5% 미만에 불과한 숫자다.
지난해 3월 정부가 발표한 IFRS 로드맵에는 2009년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희망하는 기업에 한해 IFRS가 적용되고, 2011년에는 상장기업 전체에 의무화되는 것으로 나와있다.
삼일회계법인 이갑재 상무는 "금융권에서는 은행만 하고 있고, 보험, 증권, 자산운용사들은 준비하고 있지 않다"며 "은행 6~7개가 준비하고 있는데, 이 중 3개사가 외국에 상장된 회사들이다"라고 밝혔다.
삼정회계법인은 한국전력공사, 대한항공, KCC, STX와 금융권으로 국민은행, 하나은행, 외환은행을 상대로 IFRS 전환을 위한 자문 계약을 하고 있다. 안진회계법인도 삼성, LG 등 제조업을 하는 대기업을 대상으로 IFRS 전환을 위한 자문이 한창이다.
은행과 일부 큰 회사들만이 국제회계기준에 대비하고 있을 뿐, 나머지 기업들의 참여는 저조한 상황.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IFRS 준비가 저조한 이유를 IFRS 도입을 위한 법 개정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 올 중순쯤 IFRS 법 개정…국회제출은 하반기 예상= 지난해 말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의 IFRS를 우리말로 번역한 한국채택 국제회계기준(K-IFRS)이 제정 공포됐다. 올해 말까지 회계기준원은 K-IFRS에 맞춘 실무지침을 만들어야 하고, 정부는 관련법을 개정해야 하는 상황.
로드맵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내에 개정법안의 국회통과를 마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IFRS 도입에 맞춰 상법, 세법, 증권거래법, 외부감사법 등 관련 법령 개정이 필요하다. IFRS는 연결재무제표와 공정시가를 기준으로 해 개별재무제표, 장부시가로 하는 한국회계기준(K-GAPP) 과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
정부관계자는 "2008년 내에 법 개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아직 구체적으로 나온 일정은 없지만, 국회에 제출하는 시기는 하반기가 될 예정이고, 법 개정은 중반기 정도에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삼일회계법인 이갑재 상무는 "2008년 중반기 정도에 법이 개정돼도 늦다"며 "법규가 만들어지고, 고치고 또 시행령까지 손볼려면 1년 정도가 걸리기 때문에 2008년도 내에 완성하기 어렵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법규가 마련돼서 의무화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며 "2009년에 기업들에 (IFRS가) 허용이 됐는데, 그 전까지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놓지 못하면 안 되지 않겠느냐"라고 덧붙였다.
또한 IFRS 국제자문단의 한 자문위원은 "2008년 중반 정도에 법규가 마련되면 IFRS 전환을 위해 준비하는 기업들이 나올 수 있다"며 "기업들을 움직이게 하려면 IFRS 관련 법규를 만들어 의무화하는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한편 IFRS를 주도적으로 도입한 EU의 경우 2002년도 7월에 IFRS 관련 법규가 만들어졌고, 3년 동안 적극적인 홍보와 교육을 거친 후 2005년 1월에 IFRS가 의무화됐다.
□ 2009년에 도입하는 기업…이 속도로는 힘들어= 빠르면 IFRS를 도입하는 기업이 2009년에 나올 수도 있지만, 모든 법과 제도가 정비되지 않는 이상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009년부터 IFRS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그 전년도 재무제표도 IFRS에 따라서 작성해야 하기 때문. 즉 2008년도 재무제표를 IFRS와 한국회계기준(K-GAPP)으로 작성해야 한다.
결국 최소한 2009년 1월 1일까지는 IFRS를 위한 모든 준비가 완료돼야 하는 상황. 그러나 현재 속도로는 2009년에 IFRS를 도입하는 기업은 아예 없거나 극히 드물 것으로 보인다.
회계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실적인 시간제약과 실행상의 어려움, 시스템 수정 및 안정화 등에 걸리는 기간을 감안하면 극소수일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그러나 많은 대기업들이 2010년 도입(1년 조기도입)을 목표로 IFRS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라고 밝혔다.
삼일회계법인 이갑재 상무는 "현재 국내에 있는 기업 중 IFRS와 유사하게 재무제표를 작성했던 곳은 유럽회사 중 국내에 자회사를 두고 있는 회사 정도"라며 "이들을 중심으로 2009년에 IFRS를 도입할 가능성이 있지만, 그 전에 도입을 위한 준비작업이 확실하게 돼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밝혔다.
한영회계법인 이갑수 상무도 "정부에서도 2008년 말까지 제도 준비를 하도록 돼있기 때문에 2009년에 도입하는 기업이 있을지라도 제도와 상관없이 재무제표를 작성할 수는 있지만 불확실성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기업이 IFRS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주주 등 이해관계자와 의견일치를 봐야 한다.
한 전문가는 "한 기업이 IFRS를 2009년에 할지, 2011년에 할지 결정하는 것은 주주와 커뮤니케이션을 한 뒤 결정되는 것"이라며 "투자자들이 기업이 (IFRS) 준비를 잘했는지 보고, 주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를 판단해 결정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