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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2007년 9월 현재 세계 70개국과 조세조약을 체결·시행하고 있다. 조세조약이란 어느 두 국가의 투자가가 상대국에 투자시 발생하는 이중과세를 배제할 목적으로 체결하는 양자적(bilateral) 성격의 조약으로써 '이중과세방지협약'이라고도 불린다. 국제무역에 적용되는 세계무역기구(WTO) 협정과 같이 한번 서명하면 전 세계의 모든 가입국에 동시에 적용되는 다자적(multilateral)성격의 이중과세방지협약은 아직 출현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
조세조약의 이러한 양자적(bilateral) 성격으로 인해 실제로 조세조약은 상대 국가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예를 들어 우리가 체결한 대부분의 조세조약의 경우 상대국 거주자가 우리나라 기업(A)이 발행한 채권에 투자하여 수취하는 이자에 대해 10% 내외의 소득세를 우리 과세당국이 과세할 수 있으나, 우리가 아일랜드, 러시아 및 헝가리와 체결한 조세조약 하에서는 이자에 대한 세금을 과세할 수 없다.
조세조약에는 상호주의가 적용되기 때문에 우리나라 투자가가 상대국에서 얻은 이자소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상대국에서 과세할 수 없다.
그런데 예를 들어, 홍콩의 투자가가 A가 발행한 채권을 구입하여 이자소득을 수취하고자 하려면 우리나라와 홍콩간에는 조세조약이 없으므로 국내세법상의 세율이 그대로 적용되어 15.4%(국세14%+지방세1.4%)에 해당하는 금액이 우리나라에서 세금으로 원천징수된다.
만일 홍콩의 투자가가 아일랜드에 별도의 법인을 설립한 후 이를 통해 A의 채권을 구입한다면 동 법인이 수취하는 이자에 대해서는 한·아일랜드 조세조약이 적용되어 우리나라의 과세를 피할 수 있게 된다.
□ 조세조약 남용 그대로 방치하면?
이와 같이 조세조약을 이용하여 조세회피를 하는 행위를 포괄적으로 '조세조약의 남용(tax treaty abuse)'이라고 부르고 그 중에서도 투자자가 조세회피를 위해 자기에게 유리한 조세조약을 선택하는 행위를 가리켜 'treaty shopping'이라고 부른다. 만일 이와 같은 조세조약 남용행위를 그대로 방치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위의 사례에서 홍콩의 투자가는 우리나라에서 이자소득세를 납부하지 않게 될 것이므로 그만큼 우리나라의 세수 손실이 발생할 것이다. 또한 홍콩의 과세당국은 우리나라나 아일랜드에 대해 굳이 조세조약을 체결하려 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우리가 아일랜드와의 조세조약 체결협상시 아일랜드 측의 이자소득 원천징수 배제요구를 수용한 것은 아일랜드가 조약의 다른 조항에서 우리 측 요구를 수용하였기 때문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홍콩이 우리나라와 조세조약 체결 협상을 하면서 아일랜드와 같은 대우를 받으려하는 경우 우리에게 그만큼 양보를 해야 할 것이므로 조세조약 남용이 국제적으로 허용되는 상황에서는 홍콩은 타국과 조세조약을 체결하지 않으려 할 것임은 자명하다.
이와 같은 문제점을 국제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조세조약의 국제적 표준이라고 할 수 있는 OECD 모델조세조약과 UN 모델조세조약은 각각의 주석서 제1조에서 '협약의 부적절한 이용(improper use of the Convention)'이라는 제목 하에 조세조약 남용을 방지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사실 2003년 전까지는 이 부분에 대한 UN의 주석서는 OECD 주석서의 대부분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었는데, OECD 주석서가 2003년 이 부분에 대한 내용을 대폭 보강함에 따라 UN의 주석서는 OECD의 과거 내용을 그대로 유지한 초라한 모습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UN은 2005년 경제사회이사회(ECOSOC) 산하에 '조세전문가위원회(Tax Expert Committee)'를 신설하고 동 위원회에 '조약남용방지 소위원회(Subcommittee on Treaty Abuse)'를 조직하여 UN 모델 주석서를 개정하기 위한 준비작업을 본격적으로 전개했다.
동 소위원회는 2006년과 2007년 개최된 전체회의에서 그간의 작업결과를 발표했는 데 특히 2007년 회의에서는 UN 모델조약 주석서 제1조의 '협약의 부적절한 이용(improper use of the Convention)'부분을 대체할 초안을 발표했다.
□ UN이 제시한 조세조약 남용 대응방안은?
2007년 회의시 심도있는 토의 끝에 동 초안의 내용 대부분이 원안대로 통과되었고 2008년에는 초안의 일부만이 개정된 채 최종안이 결정될 전망이므로 여기서는 2007년 제출된 초안의 주요 내용을 소개함으로써 우리나라의 과세당국과 납세자의 이해를 돕고자 한다.
우선 초안의 주요특징을 살펴보면, 동 초안은 개도국의 세무공무원들이 납세자들에 의해 시도되는 조세조약의 남용을 막기 위해서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필요한지 우선 그 접근방법을 6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그 동안 국제적으로 파악된 대표적인 조세조약 남용사례들을 유형별로 나누어 소개한 후, 그 구체적 대응방안을 앞서 분류한 6가지 접근방법과 연결지어 가며 제시하고 있다.
끝으로 초안은 각국이 조세조약 남용방지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조세조약의 규정을 제대로 집행할 수 있는 행정절차를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며 독립된 사법권의 확립과 효율적인 상호합의제도의 운영도 납세자들로 하여금 조세조약 남용방지 규정이 객관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본 기고문에서는 우선 위 초안이 제시하고 있는 6가지 접근방법을 소개하고 후속되는 기고문을 통해 각 조세회피사례와 이에 대한 대응방안을 차례로 소개하고자 한다.
조약남용을 막기 위한 6가지 접근방법이란, 첫째로「국내법상에 규정된 개별적인 남용방지제도(specific legislative anti-abuse rules found in domestic law)」이다. 이러한 제도의 대표적인 예를 든다면 우리나라 「국제조세조정에관한 법률」에서도 규정되어 있는「과소자본세제」와 「조세피난 과세제도」등이 그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동 초안이 위와 같은 내국세법상의 규정이 조세조약상의 규정과 경우에 따라 충돌될 수도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초안은 양자간에 충돌이 생기는 경우 조세조약이 우선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조약에 관한 일반 협정인 비엔나 조약 (Vienna Convention)의 기본정신인 Pacta sunt servanda (직역을 하면 ‘계약은 준수되어야 한다’는 의미임)원칙이 존중되어야 함을 이 초안은 특히 이 부분에서 강조하고 있다.
조약남용을 막기 위한 두번째 접근방법은「국내법상에 규정된 일반적인 남용방지제도(general legislative anti-abuse rules found in domestic law)」이다.
일반적인 남용방지제도란 우리나라의 국세기본법등에 규정된 「실질과세원칙 (substance over form principle)」, 「경제적 실질 (economic substance)」 또는 캐나다 세법에 규정된 「일반적 조세회피방지 규정 (General Anti-Avoidance Rule)」등을 가리키는 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국내세법에 규정된 일반적인 남용방지 규정」이 2003년 개정된 OECD 주석서상의 조약남용방지원칙에 부합하는 한 조세조약에도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는 OECD의 입장을 상기 초안이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약남용을 막기 위한 세번째 접근방법은「국내법의 일부를 구성하는 법원판결 상의 남용방지 원칙(Judicial doctrines that are part of domestic law)」을 적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사업목적(business purpose)」, 「실질과세원칙」, 「경제적 실질」,「단계적 거래 (step transaction)」 등과 같이 법원이 조세남용과 관련하여 개별사건의 심리과정에서 개발한 과세원칙이 이에 해당한다.
조약남용을 막기 위한 네번째 접근방법은「조세조약에서 사용되는 개별적인 남용방지 규정(specific anti-abuse rules found in tax treaties)」을 포함하여 이를 적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UN 모델 조세조약에서 조약남용방지를 위해 이미 채택한 개별적인 남용방지 규정들로서 「수익적소유자(beneficial owner)」개념, 이자와 사용료 조항에서 특수관계자와의 거래시 국내세법을 적용할 수 있다고 한 규정, 부동산으로 주로 이루어진 주식의 양도에 대해 소득발생지국 과세원칙을 적용하도록 한 규정, 연예인·체육인이 회사를 세워 그 회사의 피고용인의 지위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회사가 급부를 받는 경우 해당 연예인·체육인이 직접 급부를 받은 것으로 보아 과세할 수 있도록 한 기준 등이 이에 해당한다.
UN모델 주석서 초안은 이들 규정이 국내법상의 일반적 남용방지 규정과 상호보완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지나치게 조약상의 개별적인 남용방지 규정에만 의존하는 경우 조약이 복잡해지고 한편으로 새로운 조세회피유형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게 되는 위험이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조약남용을 막기 위한 다섯번째 접근방법은「조세조약 상의 일반적 남용방지 규정(General anti-abuse rules found in tax treaties)」을 포함하여 이를 적용하는 것이다.
주목할 점은 OECD 모델 조세조약에서「지도원칙(Guiding Principle)」으로 소개된 조세조약혜택적용 배제에 관한 원칙을 「일반적 남용방지 규정」으로 발전시키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상기 초안은 이를 위해 UN모델 조세조약에 새로운 조항을 신설하기보다는 주석서에서 사용가능한 문안을 제시하여 원하는 국가간에 자유로이 채택하게 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조약남용을 막기 위한 여섯번째 접근방법은「조세조약 규정의 해석(Interpretation of tax treaty provisions)」을 통하는 방법인 데 이는 조세조약 규정에 대한 적절한 해석으로 조약남용을 시도하는 거래를 무력화시키는 방안이다.
이러한 해석을 함에 있어 위에서 소개한 OECD 모델 조세조약의「지도원칙(Guiding Principle)」이 활용될 수 있음을 초안은 또한 지적하고 있다.
요컨대 앞으로 개정될 UN모델 주석서 초안은, 과세당국이 납세자에 의한 조세조약 남용사례를 막기 위해서는 각 사안별로 위 6가지 접근방법 중 적절한 방법을 혼합하여 효과적으로 대응해 나갈 것을 제안하고 있다는 점에서 OECD 모델보다 한층 발전되고 실용성이 높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경근 박사(UN조세전문가위원회 부의장 / 법무법인 율촌 / 前재정경제부 국제조세과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