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세무문제 사전답변제'-'수수료' 검토

미국-질의사안 중대성 따라 차등수수료 부과

사례 1. S은행은 지난 2003년 엔화스왑예금이라는 상품을 개발 판매했다. S은행은 국세종합상담센터에 인터넷 질의를 의뢰해 받은 답변을 토대로  이를 '이자소득세 비과세 상품'으로 가입자들을 유치했다.

국세청은 2005년 S은행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이고 엔화스왑예금 판매로 인해 탈루된 이자소득세 등 130억여원을 추징했다. 뒤늦게 예금가입자들도 이자소득세를 추징 당했고 과세불복을 제기했지만 이 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상담센터에서 제공하는 질의·회신은 법적 효력이 전혀 없는 단순한 답변에 불과하다. S은행은 공식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법적 효력이 없는 상담센터의 회신만 가지고 비과세 예금으로 홍보·판매, 사실상 세금을 탈루한 셈이 됐다.

사례 2. H은행은 최근 국세청으로부터 세무조사를 받고 1조원이 넘는 초거액 세금을 추징당했다. 또 다른 은행을 합병하는 과정에서 생긴 세무문제를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세금을 추징 당한 H은행측은 "국세청으로부터 세무상 문제가 없다는 내용의 유권해석을 받았다"며 부당함을 주장했지만 당시 은행을 대신해 국세청에 유권해석을 의뢰한 법무법인은 해당 은행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를 적시하지 않은 채 유권해석을 의뢰한 것으로 밝혀졌다.

결과적으로 H은행은 효력 없는 유권해석을 받은 셈이 됐고 그것을 그대로 믿고 합병절차를 진행한 H은행은 수 년이 지난 뒤 가산세까지 얹어져 엄청난 세금을 물게 됐다.

두 은행의 사례는 유권해석 질의의 구체성 결여, 질의에 대한 국세청 답변의 합법성 및 구속력 여부에 대한 쌍방의 뚜렷한 '시각차'로 인해 빚어진 문제. 한 마디로 '불확실성'이 빚어낸 세금 해프닝인 셈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 같은 불확실성은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국세청이 기업 활동의 '예측가능성'을 보장하는 측면에서 '세무문제 사전답변제(Advance Ruling)'를 도입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 'Advance Ruling'…불확실성 제거 촉매=외국계 기업들은 한국에 투자를 하고 싶어도 세무문제에 있어서 '예측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가장 큰 불만요소 중 하나로 꼽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불명확한 세법해석으로 인해 신규투자가 지연되거나 결정권자의 신속한 의사결정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국세청의 입장에서도 유권해석 질의시 사실관계를 누락.왜곡하거나 가명.차명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명확한 답변을 내리기 어려운 측면도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국세청은 미국의 Private Letter Ruling(개별유권해석) 제도와 유사한 Advance Ruling(세무문제 사전답변제도)제도를 도입해 이 두 가지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방침이다.

세무문제 사전답변제도란 납세자가 어떤 특정한 거래에 있어 과세 여부 등 세무 관련 의문 사항을 구체적인 사실 관계를 적시해 질의할 경우 국세청이 이를 질의자에게 적용되는 법령 등을 명확하게 답변해 주는 제도.

특히 '법적 구속력과 효력'이 살아있기 때문에 법적 효력이 없는 국세종합상담센터의 일반 질의회신과는 근본부터가 다르다. 다만 국세청은 법령해석이 아닌 ▲사실관계의 확정 ▲쟁송 중인 사항 ▲조세회피 목적이 명백한 경우 등은 답변대상에서 제외할 방침이다.

□ 국세청, '수수료' 부과방안 검토=국세청은 세무문제 사전답변제 도입과 결부해 일정액의 수수료를 부담케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재 미국의 경우 최저 625달러에서 최고 1만달러까지 수수료를 부과하고 있다. '수익자 부담 원칙'을 적용한 셈이다.

그러나 유사한 제도를 운용하고 있는 네덜란드의 경우 수수료를 받지 않고 있고 일본은 그 동안 수수료를 부과하지 않았으나 최근 수수료 부과가 가능하도록 법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경근 법무법인 율촌 세무사는 이와 관련해 "세무문제 사전답변제는 특정 납세자를 위해 행정기관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투입할 수 밖에 없다는 측면에서 (미국에서도)수익자 부담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세무사는 이어 "수수료 없이 운용할 경우 제도가 남발될 가능성도 있다"며 "남발소지를 최소화하고 가치 있고 법적 구속력이 명확한 법령해석을 담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수수료 부과는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현재 국세청은 수수료 부과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열렸던 '국세행정개혁위원회'에서도 기업규모에 따른 수수료 차등부과 등과 같은 구체적인 의견을 취합한 것으로 전해졌다.

□ '법제화' 해야 실질적 효과 있을 것=현재 미국의 경우 Private Letter Ruling제도를 법제화해 운용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도 지난 2002년 유사한 제도를 도입하면서 '국세청 기본통달'에 이를 명시해 법제화했다.

국세청도 법제화 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법제화가 이뤄지지 않은 채 제도를 운용할 경우 법적효력에 대한 분쟁의 소지가 있기 때문.

또한 질의·회신 내용에 대한 공개여부도 법으로 규정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는 지적이다. 일본과 네덜란드의 경우 과세관청과 납세자가 Advance Ruling 신청사항에 대해 합의한 내용은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한 조세전문가는 이와 관련해 "국세청이 개별납세자에게 내려준 법령해석 답변이 법적 효력이 있다는 점을 명확히 가리기 위해서는 제도 자체를 최소한 시행령(대통령령)에 근거해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