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세무공무원 인명록(人名錄)'입니다.
이 책에는 전국에 산재한 2만여 국세공무원들의 배치부서와 전화번호 등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국세청 뿐만 아니라 기획재정부 세제실, 관세청, 국무총리실 조세심판원 등 '세(稅)'와 관련된 업무를 수행하는 공직자들의 현황도 모두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민간업체에서 제작, 국세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판매되고 있습니다. 권당 가격도 2∼3만원 수준으로 시중에 판매되는 어지간한 책보다 비싸다고 합니다.
인명록 제작업체들은 국세청 정기인사와 수시인사 등 인사상의 변화가 있을 경우, 변경된 내용을 반영한 인명록을 다시 제작해 판매합니다. 따라서 매년, 혹은 수 개월에 한 번꼴로 인명록이 제작되고 있는 셈입니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인명록 소비자인 국세공무원들이 일부러 돈을 쥐어주고 자신들이 근무하고 있는 조직 내 인사관련 정보를 얻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렇다고 국세공무원들이 조직 내 인사관련 정보를 원천적으로 차단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 국세청 인트라넷에 간단하게 성명만 입력하면 원하는 인사의 정보를 쉽사리 열람할 수가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국세공무원들은 철마다 민간업체가 적지 않은 액수의 돈을 받고 파는 인명록을 구입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많은 국세공무원들은 인명록을 구입하는 것은 내부 인트라넷을 통해 검색하는 것보다 직접 '활자화'된 인명록을 뒤져가며 확인하는 것이 "편해서"라고 말합니다.
국세청도 불과 몇 년 전까지 국세공무원 인명록을 예산을 들여 제작해 내·외부에 배포해 왔습니다. 그러다 지난 2003년 조사국 비노출 제도가 실시된 이후부터 인명록 제작에서 손을 떼고 인트라넷에 인사정보를 수록해 직원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활자화된 인명록에 익숙해진(?) 대다수 국세공무원들이 돈을 들여 인명록을 구입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국세공무원들 사이에서 "조직 차원에서 예산을 투입해 인명록을 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꽤나 높습니다.
특히 한상률 국세청장이 취임하면서 조사국 비노출 제도를 폐지하는 등 '투명세정' 실천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과거처럼 국세공무원 인명록 제작도 검토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기대감을 부풀리기도 했습니다.
지난 수 년 동안 인명록을 구입해 사용하고 있다는 한 국세공무원은 "가격이 만만치 않고 인사상 변화가 클 경우 오래지 않아 새 인명록을 구입해야 하는 등 경제적 부담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과거처럼 조직 차원에서 인명록 제작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국세청은 나름대로의 명분이 있겠지만 "인명록 제작 계획은 없다"는 것이 공식 입장이라고 전했습니다.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지금도 인트라넷을 통해 직원들이 필요한 인사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다"며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인명록을 제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디지털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여전히 책자(아날로그)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이라면 계속해서 자신의 호주머니를 털어 인명록을 구입해야 할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