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22일 '쇠고기 파동'에 대한 사과의 뜻을 담은 대국민담화를 발표하자 청와대는 뒤숭숭한 분위기다.
취임한 지 불과 87일 만에 대통령이 직접 국민 앞에 머리를 숙였다는 점에서 청와대 참모들과 각료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날 대국민담화 발표장에 배석한 관련 참모들과 국무위원들은 침통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들지 못했다.
쇠고기 파동이 '왜곡된' 정보와 이를 교묘히 악용한 일부 세력에 의해 확산된 측면이 없진 않지만 이유야 어찌됐든 자신들이 보필하는 국정의 최고 책임자를 이 상황까지 오게 한 데 대한 일종의 죄책감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이날 "정부가 국민께 충분한 이해를 구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노력이 부족했다.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데 소홀했다는 지적도 겸허히 받아들인다"면서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이 대통령은 그러면서 "국정 초기의 부족한 점은 모두 저의 탓"이라며 모든 책임을 혼자 떠 안고 가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대국민 담화에서 야당은 물론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에서 조차 요구해 온 '인적쇄신'에 대해 전혀 언급을 하지 않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새 정부가 출범한 지 3개월도 채 안됐으며, 청문회 등의 일정을 감안하면 실제 일할 수 있는 시간이 매우 짧았다"면서 "지금 책임을 묻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인적쇄신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상황은 그리 간단치 만은 않아 보인다.
통합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이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강행처리할 태세인 데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상황이 이쯤 됐으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니냐"며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권의 책임론 속에는 각료뿐 아니라 청와대 참모들도 당연히 포함된다.
사실 쇠고기 문제를 포함해 주요 정책 현안을 둘러싼 당정청간 엇박자가 국민의 불신을 키웠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 청와대와 내각은 모든 책임을 대통령에게만 떠넘길 뿐 대통령을 대신해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광우병 괴담'의 초기 대처 과정에서는 정무, 홍보, 민정기능이 사실상 마비됐을 정도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이 지적은 특정 수석실만의 문제가 아니라 청와대 전 참모진에 해당한다는 분석이다. 청와대 핵심 참모라면 업무 전문성 이외에도 정무적 기능을 갖추고 그때 그때 정확한 판단을 내려야 하지만 정무수석과 대변인 이외에는 아예 정무적 판단은 제쳐놓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실제 광우병 괴담이 확산되고 있는 와중에도 쇠고기 협상과 직.간접 관련이 있는 경제수석실과 외교안보수석실에서는 국민과의 소통 창구인 언론에조차 한미 쇠고기 협상의 전말과 문제점 등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언론의 비판에 못 이겨 지난 8일 한 차례 비공개 브리핑을 한 것이 고작이다.
아무리 집권 초기라 해도 청와대 참모들이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며 지나치게 '몸사리기'를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 대통령이 이날 "쇠고기 수입으로 어려움을 겪을 축산농가 지원대책 마련에 열중하던 정부로서는 소위 광우병 괴담이 확산되는데 대해 솔직히 당혹스러웠다"고 말한 데서 정부의 사전준비와 사후대책이 얼마나 미흡했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청와대 일각에서도 이런 문제점을 인정하는 기류가 엄존한다.
한 관계자는 "사태가 이렇게 된 데 대해 솔직히 할 말이 없다. 일종의 책임의식을 느끼고 있다"고 자성했고, 다른 관계자는 "우리가 서로 흔들기를 해서는 안되지만 한나라당에서 제기하는 책임론이 영 터무니 없는 것 같지는 않다"고 일부 동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