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일 충북 괴산서 제5회 '국세청 문학의 밤 행사' 열려
하늘 가장자리에서부터 가을이 열기기 시작 되는 날 억새가 폈다. 구름보다 하얀 은빛 솜털로 타올랐다. 실바람이라도 스치면 무리되어 하늘거리는 모습이 서럽도록 정겹다.
은빛 솜털로 피어오른 초가을의 억새. 은빛 물결처럼 출렁이는 현란한 군무, 그 억새꽃 아래 아직 못한 정다운 이야기와 詩와 文學의 향기에 취하고 싶어 길을 떠난다.
길을 떠난다는 것은 나를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나를 얻기 위해 길을 떠난다. 아니 아니다 잠시 놓았던 시심(詩心)을 찾기 위해 떠난 길이다.
11월 1일 토요일 이른 아침 부산의 김미선, 서정미 시인과 함께 청주행 고속버스에 몸을 얹었다. 그런데 어느 때와는 달리 몸이 이처럼 가벼운 것은 왜 그럴까? 아하 그렇구나? 지난 4년 동안은 회장이라는 이름으로 행사를 주관하고 모든 회원들이 안전하게 귀가할 때까지는 한 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으나 이런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리고 회원자격으로 참석한 것이라 그런지 몸과 마음은 날아가는 듯 깃털처럼 가볍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11월 초하루의 풍경, 아무리 4월의 꽃이 화려하다 하지만 11월의 세상만큼이나 화려 하랴, 11월은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까지 물들게 하니 시를 가까이하고 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11월 맞이하는 마음 속 이야말로 시의 보고(寶庫)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도대체 시가 나에게 무엇인가 이런 의문이 아직까지 지워지지 않는 것은 왜 그럴까? “ 시인 네루다는 “세상에서 가정 어리석은 질문이 시를 정의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구 많은 시인과 독자들은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는데 동참하려 든다.
혹자는 시는 “허기진 사람에만 약동하는 그 무엇”이라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가난하지만 평화로운 초가집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저녁연기”라고 정의를 내리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시는 없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래도 우리는 시를 알면서 스스로의 삶을 긍정하는 이유는 우리가 아름답고도 슬픈 영혼과 꿈을 가진 존재라는 것입니다.
9시30분에 출발한 고속버스는 1시가 되어 청주에 도착했다. 청주에 도착하자 창원의 임상현 문우와 합류하여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1차 집결지인 청주세무서로 향한다. 하지만 너무 이른 탓일까 아직 문우회원은 아무도 보이지 않고 넓은 청사 마당에는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단풍과 잔디밭에서 공놀이하는 아이들의 해맑은 얼굴이 우리를 맞이한다.
예정된 약속 시간이 가까워지자 순천 김군길 문우, 해마다 빠지지 않고 먼 길을 달려온 남원 김성자 문우, 그리고 논산 이욱 문우 부부와 입사하지 몇 달이 되지 않았다는 마포 김희정 문우가 남자 친구와 함께 청사마당에 들어선다. 우리는 서로 수(手) 인사를 나누며 반가움을 표시하는 동안 행사 준비에 여념이 없는 이규흥 시인이 도착하자 충북 괴산군 청천면에 위치한 자연학습원으로 향한다.
◆…1차 집결지 청주세무서에서 김군길, 초청된 서정미, 김미선 시인과 함께
차는 청주 시내를 휘돌아 느릿느릿 빠져나간다. 목적지인 화양구곡 가는 길은 남부지방과 달리 점령군처럼 오색물결이 산정(山頂) 부터 넓은 들판을 향해 거대한 포위망을 좁혀온다. 차창 안으로 몰려드는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날 때 마다 달디 단 내음이 뼈 속까지 전해온다.
그래서 사람들은 도심을 떠나 이렇게 산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을까? 숲이 우거지고 오색비가 내리는 깊은 계곡이 있고 나무그림자와 잔잔하게 흐르는 계곡의 물결을 역류하여 깊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는지 모른다.
◆…행사 장소인 청원군 자연학습원에서
1시간을 달려 차는 어느 듯 모임 장소인 청천면에 소재한 자연학습원에 도달하자 그 곳에서는 이미 오늘 행사를 총지휘하고 있는 이희섭 회장과 아름다운 풍경을 음미하여 소년, 소년처럼 얼굴까지 붉게 물들어 있는 초청 시인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여러 문우들이 우리를 반겨준다.
1년 만에 만나는 사람 아니면 오늘 처음 만나는 사람조차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데 이렇게 진심으로 맞이해 주며 세상을 살아가는 날이 일생에서 며칠이나 될까? 오늘이 그런 날 중의 하루가 될 것이다.
◆…천선희, 최윤정 문우들과 동반한 아이들 그리고 최진숙 사진작가
17시가 되자 행사는 예정된 순서에 따라 황은주 초청시인의 플롯연주를 시작으로 임상현 작가의 개회선언, 그리고 만남의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매년 행사장소 물색 등 수고를 해준 이규흥 시인의 경과보고, 신임 회장으로서 부인과 딸마저 시인으로 등단 전국적인 화제 거리가 된 이희섭 신임 회장의 인사말이 이어졌다.
햇밤보다 더 구수한 막걸리를 행사마다 제공해준 논산의 이욱 문우님의 참석자 소개에 이어 전국 전 청에서 모인 문우들의 단체 사진을 끝으로 「제5회 국세 문학의 밤 행사」‘만나서 좋은 날’의 1부 행사는 막을 내리고 본격적인 문학의 밤 향연을 위한 저녁만찬 시간이 돌아왔다.
태양도 숨소리를 죽이며 서서히 꼬리를 내리고 있다. 가을 햇살조차 한 조각 작은 불빛으로 굶주린 배를 채울 모양, 이제 막 오색 물결로 출렁이는 나무들도 지친 하루의 일과를 마감한다.
오늘 아름다운 추억들은 예견할 수 없는 내일의 배반이나 더구나 이룰 수 없는 꿈에 대한 욕심은 아니다 켜켜이 재로 가라앉은 한줌 미련도 아니다. 오늘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고 모두가 시와 문학을 사랑함을 인정하듯 참석한 모든 이들의 얼굴빛이 붉게 달아오른다.
저녁만찬은 자연학습원서 제공한 간단한 음식이었지만, 이욱 문우님이 가져온 공주산 밤막걸리와 김성자 문우님이 남원에서 이곳까지 공수해온 복분자, 그리고 임상현 작가가 창원에서 이곳까지 매달고 온 안동소주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밤의 시간을 연다.
식사 도중 오늘의 초청시인으로 문학 강연을 해 주실 안도현 시인이 도착하여 함께 반주를 하면서 사전에 깊은 교감을 나누었다. 유명세에 어울리지 않게 소박한 청바지 차림의 안도현 시인을 모두 반갑게 맞이한다.
간단한 저녁 만찬을 끝내고 여는 날의 제 2부 문학 강의 시간은 안도현 시인의 「몇 가지 詩話」라는 제목으로 강의가 이어졌다.
그의 강의 내용은 “시인의 가장 큰 임무 중의 하나는 죽은 언어를 구별하여 과감히 버리고 살아 있는 언어와 사투를 벌이는 일이다. 시에다가는 단 한 줄도 절대자의 말씀을 받아 적지 마라, 제발 부모의 자애로움을 칭송하지 말 것이며, 금실 좋은 아내와의 관계를 떠벌리지 마라, 또한 시가 오지 않으면 아등바등 시를 찾아 나서지 마라, 그냥 놀아라, 빈둥거려라, 시를 써서 이름을 얻겠다는 허영심을 버리고, 시가 실패할지 모른다고 초조해하지도 마라. 시 한 편 한 편 쓸 때마다 슬럼프인 것이니 이를 쓰는 사람에게는 별도의 슬럼프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등 쉬우면서도 간결한 강의로 1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18:00부터 3부 축제마당/ 여흥마당은 초청된 아이궁의 축하 노래와 모든 사람들이 참여 할 수 있는 오락 시간과, 전국적으로 지명도가 높은 시 낭송가 겸 시인인 유현서 시인이 초대시인 안도현 ‘그 드물다는 굳고 강한 갈대나무라는 나무’와 자작시 ‘요실금’ 을 낭송 할 때에는 전기에 감전 된 황홀한 시간이었다.
이어 초대시인인 김미선 님의 ‘혀물 물다’, 양해기 시인의 ‘가을 잠자리’, 위상진 시인은 ‘천경자’ 낭송하면서 중간에 구성진 노래와 특별한 복장의 퍼포먼스로 또 다른 시 낭송 재미를 주었다.
◆…시 낭송가이면서 시인인 유현서 님의 시 낭송
작년에 이어 금년에도 즐거운 마음으로 참석하고 갈수록 그의 시적 표현만큼이나 날카로운 시력(詩力)을 가진 윤영숙 시인의 ‘피라미 검법’, 19세 어린나이에 중앙일보를 통해 등단한 이희섭 회장의 장녀 이해미 시인의 ‘허공의 내력’ 부산의 서정미 시인의 ‘은목서 향기의 유혹’(김정호 시인 작)의 시 낭송과 시간 관계상 우리 직원들의 시 낭송으로는 올해 처음 참석한 서울청 강흥수 시인, 새내기인 마포세무서 김희정 문우님 그리고 직전 회장인 내 졸시 낭송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다른 해와는 달리 문인들만의 시간이 아닌 동반한 아이들까지 함께 어울리는 축제 한마당으로 초청된 아이궁의 축하노래와 즐거운 오락시간을 가져서인지 참석한 아이들의 얼굴까지 단풍처럼 붉게 상기되어 간다.
4부 캠프파이어 및 불꽃마당은 드넓은 운동장에 함께 원을 그리며 가을 노래와 모닥불 노래로 밤은 점점 진하게 익어간다. 엄마와 아빠를 따라 먼 길을 나선 아이들의 불장난 그리고 우리 모두는 어린애과 같은 한 마음이 되어 솟아오르는 불꽃에 우리 모두의 시심(詩心)을 달래기에 충분했다.
내 삶도/저렇게 아름다워 질 수 있을까/내 꿈도/저렇게 높이 솟아오를 수 있을까/어둠 속에서 더 처절히/빛날 수 있다는 것을/왜 진즉 몰랐을까/그래 열망으로 솟아라/그리움으로 피어 올라라/어차피 한 번은/신명나게 놀다/바람처럼 가볍게/기꺼이 갈 삶이라면/축제가 끝난 후/너를 다시 기억하지 못할 지라도/화려하게 피었다가/흔적 없이 사려져 가라// 졸시 「불꽃 축제」 중
◆…불꽃축제와 캠프파이어
「여는 날」의 5부 밤의 대화는 3부 시 낭송마당에서 시간 관계상 못다 한 김군길, 정선아, 임상현, 김성자, 김영완, 이희섭, 이욱, 이규흥, 김희장, 문전안, 박귀근, 임래훈 문우들의 시 낭송과 함께 시와 문학에 대한 열띤 토론 및 이영식, 박정원 시인의 시에 대한 강연이 있었다,
특히 오늘 좋은 강의를 해주신 안도현 시인은 다음 날 새벽 3시30분이 지나도록 시에 취하고 사람의 향기에 취하였으나 여명이 밝아오자 잠 한숨 자지 않고 바람처럼 사라졌으니 역시 프로다운 시인정신에 모두 경하심을 주기에 충분했다.
밤은 그렇게 초청시인들과 국세청 문우회원들이 함께 시와 문학의 향기에 붉게 더욱 붉게 익어 간다. 그렇게 첫 날 ‘만나서 좋은 날’을 마감하였다.
새벽 네 시가 되어 잠자리에 든 문우들은 지치지도 않았는지 아침 일찍 기상과 함께 간단한 해장국에 시와 주독에 지친 심신을 달래며 뒤풀이 날을 맞이한다. 당초에는 족구게임과 도명산 등반을 하기로 하였으나 조금 더 많은 추억과 아름다운 단풍을 만끽하고 싶어 계획을 변경 화양구곡으로 향한다.
구름이 물든 절이라는 채운사를 지나 낙엽비가 내리는 화양구곡길, 울창한 숲과 맑은 계곡의 조화가 함께 어우러진 계곡으로 조선시대의 대학자인 우암 송시열 선생이 머물면서 널리 알려졌다. 중국의 주자가 무이산 계곡에 구이구곡을 정한 것을 본 따, 화양계곡의 아홉 명소들을 화양구곡으로 정하여 지금까지 불리고 있다고 한다.
◆… 화양계곡에서 문우들과 함께
화양구곡을 지나는 산에는 층층나무, 때죽나무, 누리잠나무, 얼레지, 숫잔대, 솔나리, 은사시나무, 줄딸기, 쪽동백 나무와 서어나무와 망개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특히 동행한 김영완 시조시인의 해박한 식물에 대한 지식은 식물도감을 머리 속에 담고 있는 것 같기도 한다.
두 시간 동안 화양구곡을 산책하는 동안 국세청 문우들과 초청시인들은 밤새워 하지 못한 시와 문학에 대해 토론하고 웃음을 만들 수 있었다. 이제 아쉬운 이별의 시간 우리는 인근 작은 식당에서 버섯전골로 간단한 요기를 하며 모두 큰 원을 그리며 한 번의 만남은 그리움이 되고 또 한 번의 만남은 추억이 될 것이라고 믿고 내년에도 또 만나자는 이별 노래를 하며 제 5회 국세 문학인의 밤 행사는 마무리 되었다.
◆…내년 만남을 위한 이별의 시간
흔히 사람들은 여행은 눈으로 한다 하나 여행이란 반은 눈으로 또 반은 가슴으로 해야 된다는 것을 다시 느껴본다. 이번에도 여행이 아닌 행사 중의 하나였지만 오랫동안 가슴속에 머물 것 같다. 살아가면서 사람마다 추구하는 목적이나 목표가 다르겠지만 이렇게 자연과 시심을 가슴에 담고 살 수 있다면 황금, 명예, 질투, 미움 같은 단어들은 다 부질없다는 것이 다시 느껴진다.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은 허망의 명예와 조금 더 높은 자리를 오르려 오늘의 동지가 내일은 적이 되고, 상대방이 죽어야 내가 사는 그런 세상에 마치 발정 난 사자처럼 평정심을 잃고 살아가고 있다.
하늘의 별은 아무리 물질문명이 발달되어도 손에 쥐지 못할 것이다. 별은 위로 올라 갈수록 눈앞에 사라지거나 더욱 멀어질 뿐 풀밭에 누워 바라보면 가장 선명하게 보인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
그래서 어쩌면 높은 곳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은 어쩌면 낮은 곳을 지향하는 사람보다 더 불쌍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래 가끔 눈물이 날 것 같은 가을하늘을 쳐다보며 세상을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끝으로 우리들의 행사를 위해 격려와 지원을 해주신 본청 고충처리담당관실 관계자와 시인이자 수필가 이면서 국세청 동호회의 명예 회장인 본청 허장욱 국장님, 열악한 여건에도 우리들의 잔치에 기꺼이 참석해준 초대시인님들, 그리고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문우과 참석하지 못했지만 마음으로 관심과 격려를 해준 전국의 모든 문우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와 문운을 빌며 내일을 기약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