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이탈리아 등도 계좌정보 공개 압박
스위스 금융감독국, 은행담당 책임자 물색
미국 사법당국과 스위스 최대은행 UBS 간 합의를 계기로 한 번 구멍이 뚫린 스위스 은행들의 비밀주의가 곳곳에서 균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탈리아, 캐나다 등 다른 국가들도 탈세혐의가 있는 자국 고객들의 계좌 정보를 넘겨줄 것을 잇따라 요구하고 나서자 300년 이상 이어온 전통이 아예 무너져 버릴까봐 스위스 정부와 은행 당국이 노심초사하고 있다.
UBS가 주요 탈세 용의자 4천450명의 계좌 내역을 미국 정부에 넘기기로 합의한 사실이 공식 확인된 이후 다른 나라 정부들도 증거를 들이대며 조치를 요구, 스위스 측이 종전처럼 마냥 버티기는 어려운 형국이다.
캐나다 장 피에르 블랙번 국세장관은 오는 9월 초 국세청(CRA) 소속 변호사와 UBS 관계자들이 만나 캐나다인 비밀계좌에 관한 정보 공유 문제를 협의하게 될 것이며, 탈세를 위한 자금 도피 행위 근절을 위한 관련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고 지난 23일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미 의회의 청문회 과정에서 지난 2005년 현재 UBS 내 '캐나다 데스크'가 관리해 온 캐나다인들의 비밀 자금만 56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지는 등 관련 근거들이 이미 드러나있어 스위스 당국이 이 같은 요구를 피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또 이탈리아 정부가 재산 해외도피 혐의가 있는 17만 여명의 자국인에 대해 조사를 벌이면서 대표적인 조세 피난처인 리히텐슈타인과 스위스가 긴장하고 있다.
스위스 남부 이탈리아어권 지역인 티치노 칸톤(州)에 소재한 은행들에 조사가 집중되고 있고, 스위스-이탈리아 국경을 오가는 차량들에 대한 검문검색도 강화됐다. 또 최근 이탈리아 사법 당국은 스위스 변호사로부터 약 500여 명의 고객 명단을 확보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국 사법당국 역시 UBS 미국인 고객의 탈세 혐의에 대한 조사 범위를 홍콩으로 확대하는 등 양국 간 합의 이후에도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UBS가 미국인 고객들에게 홍콩 소재 기업 명의로 계좌를 개설하도록 함으로써 자금 은닉을 도와줬다는 혐의가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공개 압박이 여러 방향으로 확산되자 카스파 빌리저 UBS 회장은 직원들이 다른 나라에서 조세포탈을 지원했을 가능성을 인정하는 한편 계좌정보가 공개된 미국인 고객들 역시 `무고한 희생자'는 아니라며 일부 계좌정보 공개의 불가피성을 주장했다.
빌리저 회장은 스위스 신문 NZZ 암 존탁과의 회견에서 "나는 이런 조직적 행동이 미국에서만 발생한 것으로 믿고 있다"면서도 " "직원이 7만여 명에 달해 문제가 더 이상 없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일간지 존탁 블리크와의 회견에선 "(미국인) 고객들은 단순히 무고한 희생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빼돌리려고 하는 게 뭔지 잘 알고 있었고, 은행이 그 일을 잘 해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라며 "이제 우리는 그 점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스위스 금융시장감독국(FINMA)이 UBS, 크레디스위스 등을 관장할 은행 부문의 새로운 책임자를 찾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24일 전했다.
지난 1월 스위스연방은행위원회, 연방보험당국, 돈세탁방지국 등을 통합해 출범한 FINMA는 현재 7개 부문을 4개로 통폐합하는 등의 조직개편 작업을 진행 중이며, 오는 10월1일부터 새로운 조직을 가동한다고 홈페이지를 통해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