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노사, '반사이익'에 취해 위기 불감증

수출 내수 모두 성장세 둔화에도 ‘高高’?

현대자동차 노조가 4년 만에 파업을 감행하자 고임금을 받는 귀족노조가 무리한 요구를 내걸고 정치적 파업에 나섰다는 비판 여론이 적지 않다.

재계에서는 현대차 노조가 지난 3년간 금속노조 등 상급단체의 정치파업에 참여하지 않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선봉대로 나섰다는 점에서 또다시 파업이 연례행사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현대차 노조는 오는 20일 금속노조 2차 총파업에도 참여키로 했으며, 투쟁수위를 점차 높여나갈 것으로 알려진 상황.  

현대차 임금협상과 관련한 구조적인 문제는 일본 자동차업체에 비해 생산성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차는 품질과 1인당 생산성 등을 감안하면 아직 글로벌 경쟁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업계에선 현대차가 최근 몇 년간 급성장세를 보인 것은 자생적 경쟁력 향상 보다는 일본 자동차업계에 집중된 악재로 인한 반사이익과 정부의 특혜성 산업·환율정책에 힘입은 바 크다고 보는 분위기다.

그런데 경영진은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도 리스크 관리보다는 공격적인 생산·마케팅 전략을 펼치고 있다. 노조도 여기에 뒤지지 않으려 임금 인상은 몰론 주간연속2교대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년연장 등 과도한 요구를 하고 나섰다.

노사 양측 모두 위기불감증에 걸린듯한 모습이다.

현대차 노사 협상의 주요 쟁점

노조, 금속노조 2차 총파업도 참여…투쟁수위 높이기로

현대차 노조는 16일 쟁의대책위원회를 열고 금속노조가 2차 총파업을 벌이는 20일 주야간 각각 4시간 부분파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노조측은 “사측에서 만족할 만한 일괄제시안을 내놓지 않아 협상이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사측에 모든 책임이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2차 파업에 이어 노조창립기념일인 25일에는 특근을 거부하고 26∼27일 이틀간은 주야간 각각 2시간의 잔업도 거부하여 투쟁수위를 높여가기로 했다.

노조측은 “18일 10차 본교섭에서 회사측에서 납득할 만한 일괄타결안을 제시하지 않을 경우 보다 강도 높은 투쟁이 불가피하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이에 대해 “협상다운 협상을 해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노조가 일방적으로 교섭결렬을 선언했다”며 “상급 노동단체인 금속노조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 파업일정을 먼저 정해놓고 있다”며 불만을 표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번 파업의 목적이 대선을 앞둔 정치적 성격이 짙으며, 올해는 임금협상만이 의제인데 단체협상에 속하는 의제까지 들고 나와 협상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노조의 교섭태도에 문제를 제기했다.

현대자동차는 지난 13일의 주야간 각각 4시간 부분파업으로 약 4300대의 생산 차질과 880억원 상당의 매출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반사이익’에 취해 ‘분배’ 강조하는 노조

현대차 노조의 요구에 대해 업계 전문가들은 “경쟁사의 악재로 인한 반사이익으로 얻은 과실을 놓고 분배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자동차산업학회장인 이종욱 박사는 언론사 기고를 통해 “현대차 노조와 경영진은 일본의 빅3가 겪은 것과 비슷한 고난이 밀어닥칠 때를 대비해 경쟁력을 높이는 데 투자해야 할 때”라고 꼬집었다.

조세일보가 ‘기업탐사’를 통해 현대차를 분석한 결과도 업계 전문가들의 상황인식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 현대차가 최근 몇 년간 화려한 실적을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회사의 내막을 들여다보면 축배를 들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우선 현대차의 화려한 실적 이면(裏面)에는 ‘빚더미 재무구조’가 복병으로 도사리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 5년간 투자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매년 회사채와 장단기 차입금 등 외부에서 자금을 차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작년말 차입금 총액이 43조8000억원으로 자기자본 대비 부채비율이 171%에 달했다.
 
삼성전자의 부채비율이 52.8%, 포스코 92.5%, SK텔레콤 91.4%, LG화학 57.5% 등 국내 주요기업의 부채비율은 모두 100% 이내이다. 이들 기업과 비교할 때 현대차의 재무구조는 취약한 수준이다.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판매가를 올려 이익률을 개선해야 한다. 하지만 가격 저항이 만만치 않다. 이 때문에 내수시장에서 비싼 옵션을 붙여 꼼수로 값을 인상할 처지다.

지난 5월에는 신형 산타페를 출시하고서도 열흘 넘게 가격을 정하지 못하고 소비자 눈치를 살펴야했다. 원자재 등 제조원가상승에 따라 가격을 올려야했지만 가격경쟁력을 잃을 수 있어 고심했던 것이다. 
 
현대차의 가격경쟁력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은 수입차 판매시장에서 여러 가지 신호를 보이고 있다. EU(유럽연합)에 이어 미국과의 FTA(자유무역협정) 발효 이후 수입차업계의 공세가 본격화되자 수입차의 시장점유율이 급속히 높아지고 있다.

올 상반기 내수판매는 현대차가 –4.7%로 뒷걸음친 반면에 수입차의 판매는 20.5% 증가했다. 수입차에 안방을 내주고 있는 셈이다.

현대차의 경우 생산차종 중 유일하게 SUV만 21.6% 신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신형 산타페의 출시로 인한 신차효과 덕이다. 가장 많이 팔리는 승용차는 판매량이 7.2% 줄었다. 

현대차가 믿었던 것은 내수 시장을 내주더라도 해외 수출이 늘어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해외시장에서도 적신호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2009년 11월 이후 31개월 만에 자동차 수출이 감소세를 기록했다.

현대차의 경우 가장 큰 수출시장인 미국시장에선 일본자동차 업계가 각종 악재에서 벗어나 고속성장세를 보이자 현대차의 점유율이 하향세를 보인 뒤 정체상태에 놓였다. 게다가 미국 자동차시장의 성장세에 못미치는 판매증가율을 나타내고 있다.

현대차의 수출시장 가운데 가장 역동적으로 성장하던 EU지역 수출도 급제동이 걸렸다. 지난 3월까지 급증세를 보였던 EU 수출이 4월부터 증가세가 급속히 둔화되고 있다.

게다가 유로존 재정위기가 세계경제의 양대 엔진인 미국과 중국의 각종 경기지표의 부진을 초래하고 있어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금융통화위원회까지도 기준금리를 전격 인하하며  경기를 부양하는 쪽으로 급선회할 정도이다. 그만큼 기업 경영여건이 악화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현대차 노조는 이같은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듯하다.    

노조의 ‘정치파업’에 싸늘한 시선
 
현대차 노조의 파업에 대한 각계의 시선은 싸늘하다. 울산지역 101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행복도시 울산 만들기’ 범시민추진협의회는 “현대차 노사가 파국으로 치닫는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4300여 협력업체의 경영난 가중과 154만여 명에 이르는 직간접적인 종사자의 생계에 전가된다”며 협상 재개를 요구했다.

현대차의 한 퇴직근로자는 “이번 파업이 금속노조의 하투 일정에 무리하게 맞추려는 것 같아 현대차가 20여년 이어온 ‘정치파업의 선봉대’라는 망령이 되살아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경영자총협회는 이번 파업에 대해 "민주노총의 투쟁지침에 따라 이루어지는 정치파업“이라고 간주하고 ”명백한 불법파업에 해당하기 때문에 정부가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히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미국 자동차 업계의 빅3가 몰락한 원인중 강성노조의 ‘과잉복지 불감증’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미국 상원이 구제금융 지원의 전제조건으로 임금삭감을 요구할 정도였다. 그만큼 자동차메이커의 경쟁력에 임금수준과 노사관계의 안정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남겼다. 

업계전문가들은 “노사 모두 미국 빅3의 실패사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현대차가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노사가 이번 기회에 파업이 연례행사가 되는 악순환을 끊을 해법을 찾아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