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는 노조는 '귀족'이고 임원은 '파리목숨'이라는 말로 통한다. 지난 2006년 비자금 사건이 터졌을 때 현대차는 비자금 가운데 500억원을 노조를 무마하기 위한 노무관리비로 썼다는 설이 나돌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현대차는 유독 노조에는 절절맨다.
그러나 임원에겐 다르다. 상무급만 되면 2년을 버티면 만족해야 하는 상황이다. 3년 임기의 이사회 멤버도 정몽구 회장의 최측근 가신이 아니면 임기를 채울 확률이 거의 없다.
'기업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임원들의 입지가 불안정해 기업경쟁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될 정도이다.
■ 사상 최대 승진 = 사상 최대 규모 임원 해고
현대자동차는 작년 12월 145명의 임원승진이라는 승진잔치를 벌였다. 사상 최대 규모다. 전체 임원이 226명임을 감안하면 임원의 66%가 승진자로 채워진 것이다.
그러나 승진한 임원들의 표정이 밝을 수만은 없는 것이 현실.
현대차의 경우 임원이 되고나면 재임기간이 불과 2~3년밖에 안되고, 해고 시기와 이유를 예측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조세일보가 현대차의 2006년 이후 5년간 상무급 이상 임원 연인원 685명의 인사변동 내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06년 말 재임중이던 임원가운데 22.9%만이 재직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5명중 4명이 퇴직하고 1명만 남아 있는 셈이다.
2007년의 상무급 임원중에는 27.4%만이 2011년 까지 재직하고 있고, 2008년 임원중에는 41.4%가 남아 있어서 3년 이상 재직하고 있는 임원이 절반도 안된다.
임원변동 현황을 직급별로 분석해 본 결과 전무급 임원의 퇴사율이 가장 높았고 부회장급 퇴사율이 가장 낮게 나타났다.
직급별 재직률을 보면 부회장 및 사장급은 상대적으로 부사장급 이하 보다 재직률이 높게 나타났다. 설영흥 부회장과 최한영 부회장이 조사기간('06~'11년) 중 계속 재임하고 있는 등 부회장급은 '06년 대비 '11년까지의 재직율이 50%, 사장급은 30%를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사장 이하 전무, 상무급은 부회장이나 사장급에 비해 재직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은 것으로 조사됐다.
전무급은 26명중 3명만이 남아 있어 재직률이 12%에 불과했다.
■ 상무 이상 임원 평균 재직기간 2.3년…임원되면 나갈 준비부터
2007년부터 2009년 사이에 승진한 상무급 이상 임원들의 평균 재직기간은 2.3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차에서 상무급으로 승진하면 퇴직준비를 서둘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007년에 상무 이상 진급한 임원은 15명인데 이들이 퇴사한 연도를 분석해 본 결과 평균적으로 2.9년만에 퇴사했고, 2008년은 2.1년, 2009년은 2.3년으로 2007년 부터 2009년에 상무이상 임원으로 승진한 임원들은 평균 2.3년 후에 퇴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이들 중 19.5%는 승진한 바로 다음해에 임원명부에서 볼 수 없었다. 오 아무개 전무, 성 아무개 전무 등 전무급 2명을 포함한 16명은 승진한 다음해 퇴직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08년에는 상무급 이상 승진자가 39명으로 예년에 비해 2배 가량 많았는데 이중 3분의 1인 13명이 2009년 임원명부에서 제외돼 있다.
김 아무개 상무, 문 아무개 상무, 송 아무개 상무 등 13명이 2008년에 승진하고 2009년에 회사를 그만뒀다. 임용 1년을 못 버티는 '파리목숨'이 전체의 3분의 1 이나 되는 것이다.
■ 2008년 이후 선임 이사회 멤버 1명도 임기 못 채워
등기임원의 경우는 더욱 심각한 수준이다. 2008년 이후 이사회 멤버로 선임된 등기임원(사외이사 제외) 가운데 정몽구 회장을 제외하곤 단 한명도 3년 임기를 채운 이사가 없을 정도로 불안정하다.
등기임원은 이사회를 구성해 회사의 주요 정책을 의결하는 점을 감안하면 이로 인한 폐해가 우려된다.
2009년에는 정몽구 회장을 제외한 상근 등기임원 전원을 교체하는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그 체제도 오래가지 못했다. 2011년에는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 부자를 빼고는 김억조 사장 1인만 등기임원으로 기용해 명실상부한 '가족경영' 체제를 구축했다.
2006년 이후 사업보고서에 나타난 현대차의 등기임원 현황을 보면 3년 임기를 채운 임원은 정회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김동진, 윤여철 부회장 2명에 불과하다.
2008년 이후 선임된 이사회 멤버는 최재국 부회장(2년), 이정대 부회장(1년), 양승석 사장(2년), 강호돈 부사장(2년) 등 4명이 모두 3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하차 했다. 최근 3~4년 사이 등기임원의 변동이 심해지고 있다는 얘기다.
정몽구 회장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황제경영'이라는 비판을 감수하고 최측근 가신들을 중용해 왔다. 2006년 현대차 비자금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난 후 몇 년간은 그러한 컬러가 분명했다. 그러나 3세 경영체제로 전환을 꾀하면서 물갈이 속도가 빨라졌다. 그러면서 '황제경영'에서 '가족경영'으로 모양새가 바뀌고 있다.
■ 불시 임원인사 비일비재…잦은 임원인사로 복지부동
이렇게 임원들의 재직기간이 짧은 이유는 정몽구 회장 특유의 인사 스타일 때문이라는 것이 업계 분석이다.
임원들로부터 언제든지 사직한다는 각서를 미리 받아 놓는다든지, 보고 중 경미한 실수를 한 임원을 그 자리에서 경질한 사례 등이 재계에 회자되고 있다.
잦은 임원인사는 정책의 일관성을 해쳐 일상업무의 혼란 외에도 중장기 정책추진을 어렵게 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경쟁사들이 현대차에서 퇴직한 임원들을 적극 영입해서 현대차의 주요 정보나 노하우가 유출되는 부작용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