⑦LG전자, 잘나가던 중국서 도대체 무슨일이…

LG전자가 중국시장에서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코트라(KOTRA)의 중국 광저우무역관이 2008년 4월 25일 본국에 보내온 ‘中, 에어콘 시장동향’은 중국 에어콘 시장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줬다.

광저우무역관은 그 해 1·4분기 중국 에어콘 시장이 전년 동기 대비 25.5% 증가했으며 가격경쟁보다 고품질, 고급화가 새로운 추세로 부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무역관은 중국 리서치기관인 소비자연구센터(ZDC)의 자료를 인용해 2007년 4·4분기 LG전자가 시장점유율 2.0%로 8위를 차지했고 삼성전자가 뒤이어 1.90%로 9위를 기록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보내왔다.

그로부터 3개월 후 ZDC의 자료에 의하면 삼성전자는 시장점유율 2.7%로 7위에 올라섰지만 LG전자는 10위권 리스트에서 이름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한 때 3위를 차지한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 LG전자 위기는 계속 …도대체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나?

LG전자의 위기는 그 후로도 계속되고 있다. 갈수록 중국시장에서 점유율은 하락하고 있고 시장에서 존재감조차 사라지고 있다.

LG전자는 지난 1993년 중국 시장에 첫진출했다. 그 후 몇 년 되지 않아 1996년 중국 시장에 진입한 LG에어콘은 톱 3에 진입하는 기염을 토했다.

베이징을 방문한 사람들에 따르면 LG전자의 위세는 한 때 대단했다고 한다. 티스토리를 이용하는 ‘kenu허광남’이란 필명의 블로거는 2007년 베이징의 한 아파트에 설치된 LG에어콘 사진을 올려 당시의 LG전자 위세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는 “식당 가는 길에 본 아파트 에어콘 실외기가 모두 LG였다”면서 “대단한 LG군요”라는 촌평을 남겼다.

그러나 LG전자가 중국에 진출한지 20년이 되는 오늘 LG전자의 모습은 초라해지고 있다.

2010년 중국시장에서의 LG전자 에어콘 점유율은 판매량 기준 0.21%, 매출액 기준 0.32% 수준에 불과했다. 점유율 순위 또한 2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LG전자는 중국에서 팔린 에어콘 판매량 3천만여대 가운데 겨우 6만여대를 판 셈이다.

반면 1990년에 설립된 중국의 토종 에어콘 생산업체인 거리(格力)의 시장점유율은 30% 수준.  LG전자 보다 140배나 많은 에어콘을 팔고 있다.

LG전자가 중국 에어콘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자 이 사업에서 발을 뺄 것이라는 소문과 베이징 주재원 인력을 계속해서 본국으로 불러들이고 있다는 소문도 들리고 있다.

에어콘 사업 뿐만 아니다. 휴대폰 사업도 현지 실정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LG전자가 중국 칭다오와 옌타이에서 운영중인 휴대폰 공장 생산물량을 대폭 줄였다는 얘기도 있다.

■ 중국 시장 매출은 갈수록 줄고 있다.

LG전자가 중국시장에서 맥을 못추자 곧바로 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LG전자의 중국시장 매출이 매년 줄고 있고 중국시장이 차지하는 비중 또한 미미한 수준으로 전락했다.

LG전자는 올해 1분기 중국시장에서 8800억원의 매출 실적을 올렸다. 이 수준이라면 올해 중국시장 매출은 3조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지난해 매출 4조1360억원에 비해 14.8%가 감소한 수치다.

지난해에도 매출이 줄었다. 지난해에는 2010년의 매출 4조6408억원에 비해 10.8%가 감소했다. 연결회계 기준으로 작성된 사업보고서는 2010년부터 중국에 대한 매출이 갈수록 줄고 있는 추세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매출규모를 지역별로 볼 때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 또한 빈약해졌다.

중국은 북미 및 유럽시장과 함께 LG전자의 세계 3대 시장 중 하나였다. 2006년 LG전자가 중국에서 올린 매출은 90억달러(한화 약 10조3500억원)에 달했고 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3%를 넘어섰다.

우남균 당시 LG전자 중국법인장은 “LG전자 중국법인을 명실상부한 전 세계 톱3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2007년 중국시장 매출액은 1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기대에 부풀었다.

그러나 올해 3월말 현재 LG전자에서 중국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7.2% 수준에 불과하다.

LG전자의 1분기 매출 실적은 총 12조2278억원이다. 지역별로는 △한국 2조5544억원 △북미 2조4716억원 △유럽 1조2449억원 △중남미 1조5749억원 △아시아·아프리카 2조7518억원 △중국 8800억원 △CIS(독립국가연합) 7500억원이었다.

■ 중국시장을 만회하려면 … 신뢰회복 ‘시급’

LG가 중국시장에서 과거의 영예를 되찾으려면 중국 소비자들의 충성도를 다시 이끌어내야만 하는 것이 당면과제다.

LG는 중국시장 공략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10년 전인 2002년 12월 LG전자는 베이징에 한국기업 최초로 종합 R&D센터를 설립했다. 생산·마케팅·인재에 이어 R&D 현지화로 현지완결형 사업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것이 LG전자의 원대한 계획이었다.

LG는 2003년 사스가 중국을 공포로 몰아 넣을 때 소독 마스크를 배포하고 ‘아이자이중궈(愛在中國)’ 캠페인을 펼쳐 현지기업화의 모범사례로 꼽히기도 했다. 쩡페이옌(曾培炎) 당시 국무원 부총리는 “LG전자는 외국기업 가운데 가장 친근감이 가는 기업”이라고 추켜세웠다.

중국의 에어콘 업체인 하이신(海信) 그룹은 LG전자를 무조건 따라했다. 연구개발과 생산방식, 마케팅 전략, 브랜드 이미지 제고 등 여러 방면에서 LG를 모방했다. LG전자가 버스광고를 하면 뒤이어 했고 지하철 광고를 하면 뒤따라 하는 ‘학습’ 자세를 보였다. 하이신은 중국내 4~5위 에어콘 판매업체로 랭크되어 있다.

중국에서 ‘모범답안’으로 인식되어온 LG전자에 씻을 수 없는 오명을 가져다준 사건이 발생했다.

2006년말 상하이의 한 LG제품 A/S업체에 근무하는 직원의 투서가 발단이었다. 판매 과정에서 일부 문제가 있는 제품을 자체 수리해 재포장 과정을 거쳐 소비자에게 다시 판매한 것이 문제시됐다.

LG전자는 이와 관련 “일부 특약 A/S센터에서 일부 문제 제품에 대해 수리과정을 거쳐 포장을 새로한 후 소비자에 판매한 사실이 있었으며 관리상 회사에 책임이 있음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이를 계기로 ‘반(反 )LG연맹’ 조직이 출범하는 계기가 됐다.

중국 시장이 과거와는 달리 소비자들의 권리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고 기업이 이를 무시하면 소비자들은 언제든지 돌아설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가뜩이나 가전분야에서는 중국 기업의 경쟁력이 급속히 강화되어 한국산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로 인한 충격파는 클 수 밖에 없다.

지난해 9월 지멘스의 냉장고문 불량사건에 대해 지멘스가 미온적으로 대처하면서 중국 소비자들이 들고 일어난 것도 주목해야 한다. 소비자들은 웨이보(微博)에 지멘스 냉장고 품질문제를 제기했으나 지멘스는 문제를 부인하며 필요하다면 돈을 내고 수리를 받을 것을 권했다.

소비자들의 분노가 극에 달하자 지멘스는 결국 문제의 제품을 무료로 수리해 줬지만 사과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지멘스에 대한 원성이 사그러지지 않았다고 코트라 상하이무역관의 김명신 차장이 전했다.

김 차장은 “중국가전망(中國家電網)에 따르면 그 사건이 벌어진 한달 뒤 지멘스의 시장 점유율이 11.66%로 전 달의 12.84%에 비해 1.18% 하락했다”면서 “품질과 서비스에 문제가 발생할 때 미온적으로 해결하면 중국에 만들어 놓은 이미지가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시장에 진출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중국 문화와 내수시장의 특수성을 파악해야 한다는 주문도 있다.

산업연구원의 조현승 연구위원은 “중국 사회는 폐쇄성이 심하기 때문에 문화적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면서 “소득이 늘어나면서 중산층이 증가하고 80년대 이후 출생한 ‘80후(바링허우)’ 세대의 부상, 서부개발로 인한 소비층 확대 등 중국 소비시장이 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LG전자가 중국시장에서 제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변하고 있는 중국 소비자들의 심리를 꿰뚫어 보며 현지화 못지 않게 기업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 소비자들의 충성도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