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구본준호’가 출범한지 어언 1년 10개월이 지났지만 회사 경영의 새 돌파구를 찾았다는 신호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불도저’, ‘카리스마’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구본준 부회장이 경영을 진두지휘하고 있지만 일등회사로 만들기에는 여건이 녹녹치 않기 때문이다.
구 부회장은 기업체질을 ‘강하고 빠르고 스마트하게’ 바꾸기 위해 “독한 LG를 만들겠다”며 직원들을 격려하고 있지만 기업문화를 한 순간에 바꾸기는 여간 힘들지 않아 보인다.
구본준 LG전자 부회장
구 부회장 취임 후 눈에 띄는 성과라면 마케팅 비용 등 판매비를 줄여 이익을 높인 점이다. 하지만 이는 단기적인 효과만 있을 뿐 장기적인 방책으로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나마 어려운 상황에서 R&D(연구개발비) 투자를 꾸준하게 유지하고 있는게 다행이다. 그러나 경쟁업체인 삼성전자와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R&D 절대액 뿐만 아니라 매출액 대비 R&D 비중에서조차 자꾸만 밀리고 있다. 자칫하면 성장동력마저 잃을 수 있다.
외국인 임원 등용제도를 파기하는 등 인사방침을 바꾼데 따른 효과에도 의문을 제기하는 의견이 적지 않다. 해외사업장에서 임직원의 퇴직률이 37.6%에 이르는 것은 문제다.
애널리스트들은 기업경쟁력을 확보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마케팅, 연구개발, 인사 부문에서 모두 만족할만한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점을 들며 ‘구본준호’의 LG전자가 여전히 안개속에 갇혀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삼성증권의 조성은 애널리스트는 “하반기 휴대폰 마케팅 비용이 증가하는 것은 모든 제조사들이 직면해야 할 현실”이라며 “LG전자는 마케팅 비용이 늘더라도 스마트폰 마켓셰어가 올라갈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펀더멘털(기초체력) 개선을 확신할 단계는 아니다”고 분석했다.
■ 판매비와 경비 줄여 이익 늘리는 땜질식 급급
‘구본준호’ 출범 후 LG전자는 조금이라도 이익을 더 내기 위해 판매비와 불필요한 경비를 줄이겠다는 각오로 임했다.
LG전자는 구 부회장 취임 직후 임직원들의 작업능률 향상을 위해 지급되는 복리후생비를 비롯해 소모품비, 출장비, 교통비 등 여타 비용들을 30% 삭감하는 조치를 취한 바 있다.
부서마다 약간 차이는 뒀다. 매출 목표에 비해 120% 실적을 달성한 부서는 예전과 같은 금액을 지급했고 매출 목표를 100% 이룬 부서에 대해서는 20%의 비용을 삭감했다. 매출 목표를 미달한 부서는 30%를 깎았다.
복리후생비 삭감은 임직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릴 수 있지만 경영수지 개선을 위한 궁여지책이라 할 수 있다.
※ 자료 : LG전자 사업보고서
광고선전비와 포장운반비 등 판매활동에 따라 발생하는 비용인 판매비도 줄여나가고 있다.
LG전자의 판매비는 지난해 1분기 1조8701억원에서 2분기 1조9883억원으로 고점에 달했으나 점차 내림세로 돌아서 3분기 1조8092억원, 4분기 1조5238억원, 그리고 올해 1분기 1조4858억원으로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
덕분에 영업이익이 개선되는 효과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1분기 1308억원, 2분기 1582억원, 3분기 –318억원, 4분기 230억원을 기록하던 영업이익이 올해 1분기에는 4482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올해 1분기 매출액은 12조227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0% 줄었다. 그러나 1분기 판매비는 1조485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기간에 비해 20.5%나 떨어져 영업이익 개선에 도움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 연구개발비는 삼성전자의 1/4 수준, 갈수록 격차 커져
LG전자의 고민중의 하나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R&D 투자를 어느정도 유지하려 하지만 삼성전자와의 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것. R&D는 기업의 백년지대계라 할 수 있다. R&D투자를 늦추다보면 기업의 성장동력을 잃게 된다.
LG전자는 2011년에 매분기 마다 6000억원이 넘는 R&D 예산을 투입했다. 1분기에는 6015억원, 2분기에는 7334억원, 3분기에는 6898억원, 4분기에는 6645억원을 배정했다. 올해도 1분기 R&D 예산을 6524억원 투입했다.
이에 비해 삼성전자는 훨씬 많은 돈을 R&D에 쏟아붓고 있다. 2011년에는 분기별로 2조4481억~2조8106억원의 R&D 예산을 투입했다. 올해도 1분기에 2조8011억원의 예산을 집행했다.
※ 자료 : LG전자·삼성전자 사업보고서
LG전자의 R&D 규모는 삼성전자의 1/4 수준에 그치고 있다. 삼성전자의 매출 규모가 크다보니 R&D 예산이 많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문제는 매출액 대비 R&D 비중도 경쟁사보다 뒤쳐져 있다는 것.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LG전자의 올해 1분기 매출액 대비 R&D 비중은 5.3%에 달한다. 2009년의 R&D 비중 4.3%, 2010년의 R&D 비중 4.9%와 비교할 때 조금씩 늘고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2010년 R&D 비중 6.1%, 2011년의 6.2%, 올해 1분기 R&D 비중 6.2%와 비교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 자료 : 금융감독원, 2003~2009년은 별도회계기준, 2010년 이후는 연결회계기준임.
■ 떠나는 임직원... 삼성전자에 비해 퇴직률 2배이상 높아
‘독한 LG’를 내세운 ‘구본준호’의 경영 방침은 재무구조를 어느정도 안정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지만 한편으론 내핍 경영에 실망한 구성원들이 회사를 떠나는 부작용을 가져오기도 했다.
LG전자가 지난 6월 18일 발간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LG전자를 퇴사한 임직원의 비율은 25.6%에 달했다. 직원 4명 가운데 1명이 회사를 그만둔 셈이다.
LG전자 퇴직률은 국내사업장과 해외사업장에서 큰 차이를 보였는데 국내사업장에서 퇴직률은 6.0%, 해외사업장의 경우 37.6%를 기록했다. 퇴직률은 2010년에 비해 각각 1.1%포인트와 6.9%포인트 높아졌다.
◆…LG전자가 6월 18일 국문과 영문으로 '2011~2012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는 경쟁사인 삼성전자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임직원 퇴직률은 9.8%에 이른다. 삼성전자의 국내사업장 퇴직률은 4.9%로 전년과 같았고 해외사업장 퇴직률은 15.6%로 전년에 비해 0.3% 높아졌다.
LG전자는 외국인 임원 등용제도에서도 시행착오를 겪었다.
LG전자가 금감원에 제출한 임원 및 직원의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0년 등재된 임원에는 최고마케팅책임자(CMO)인 더모트 보든(Dermot Boden) 부사장을 포함해 6명의 외국인 임원이 부사장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구 부회장 체제가 가동된 2011년에는 이들 6명의 부사장은 모두 임원 명부에서 사라졌다. 전임 최고경영자(CEO)였던 남용 부회장이 야심차게 추진해온 외국인 임원 등용제도는 더 이상 설곳이 없게 됐다.
마케팅에 중점을 두어 왔던 남 부회장이 회사를 떠나면서 해외 마케팅 조직도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해외사업장에서의 퇴직률이 37%를 넘어선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구 부회장은 취임 후 LG전자의 슬로건으로 '강하고 빠르고 스마트하게'를 내놨다. 그는 이어 “독한 문화를 LG만의 DNA로 만들겠다”면서 “몇 년간 DNA를 잘 만들어 CEO가 바뀌어도 절대로 회사의 근간이 흐트러지지 않는 기업을 만들겠다”는 각오를 피력했다.
오너 경영은 권한이 집중되고 힘이 실리기 때문에 과감한 투자와 빠른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강점을 갖고 있다. ‘구본준호’가 실적 개선을 위해 쓸 수 있는 카드는 많아 보이지 않지만 특유의 카리스마로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세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