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입김에 취약한 경영환경이 리스크 키워
잘나가던 포스코가 조선·자동차 업계와 정부의 증설압력에 못이겨 과도한 증설을 단행한 결과 경영압박을 받게된 것에 대해 포스코가 정부의 입김에 취약한 경영리스크에 노출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기업의 중요한 경영행위에 개입하여 정치적 또는 정책적 변수를 반영할 경우 기업이 공기업처럼 무기력해져 경쟁력이 고갈될 수 있다는 것이다.
포스코는 당초 수급불균형을 우려해 증설에 반대했다. 하지만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조선업계와 정부의 압력에 못이겨 증설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철강업계는 포스코가 증설을 결정하자 나머지 업체들도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증설에 동참해 위기에 빠졌다고 볼멘 목소리를 내고있다.
포스코는 2008년 후판증설에 앞서 조선사들로부터 물량을 소화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하지만 그후 조선 경기가 급랭하면서 약속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이 됐고 철강값 하락에 재고마저 늘어나는 이중고를 겪고있다.
■ 업계, 현정부 집권후 ‘특정기업 밀어주기’ 의혹 제기
업계에서는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 선후 철강설비 증설 압력이 더욱 노골화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2005년 이후 중국과 인도 등 후발업체의 막대한 철강 증설로 세계시장이 이미 공급초과현상을 나타내기 시작해 일본, 미국 철강업체들은 공급을 줄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우리 철강업계는 오히려 2008년부터 본격적인 증설에 돌입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조선과 자동차 업계는 이전부터 정부에 철강설비증설을 요청했지만 세계수급상황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다 받아주지 못했다”며 “현정부가 들어선 이후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가 이끄는 조선·자동차 업계의 요구가 더욱 집요해져 포스코가 무릎을 꿇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동국제강 장세주회장은 최근 “예전에는 조선업계의 수요에 맞춰 줬지만 지금은 조선업계의 요청에 따라 후판공장을 증설할 당시와는 입장이 다르다”며 정부에 대한 불만을 에둘러 표하고 “올해 40~50만톤을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조선과 자동차를 만드는데 철판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의 2011년 원재료 중 철판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41%, 14%이며 금액도 6조5천억원, 3조9천억원이다.
2007년 박규원 조선협회 회장은 “철강산업이 국내 조선산업의 목줄을 잡는다”라는 표현까지 쓰며 철강업계의 공급확대를 요구했다. 하지만 철강업계는 “현재 계획된 부분 이외의 추가 증설 여부는 5~6년 후 조선업 업황을 보고 결정할 사안”이라며 증설을 거부했었다. 실제로 2007년 철강시설투자는 전년보다 19% 줄었다.
그러던 철강업계가 돌변했다. 철강협회에 따르면 현정부가 들어선 2008년 철강업체들은 설비투자를 전년보다 63% 늘리기로 결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액도 7조가 넘는 규모다.
포스코는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생산능력을 3천만톤 수준으로 유지했으나 2008년 3300만톤으로 늘렸고 이후에도 매년 생산능력을 늘려 2011년까지 3900만톤으로 900만톤 가까이 늘어났다.
이러한 증설은 포스코에 그치지 않았다. 현대제철도 같은 기간 520만톤을, 동부제철은 300만톤, 동국제강도 130만톤을 증설하는 등 업계전체가 증설에 참여했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증설과 관련해 "정부의 압력없이 업계간의 협의만으로 이런 업계 전반의 증설이 가능하겠냐"며 당시 산업부장관이 조선사 대표와의 간담회에 참석해 철강설비증설을 약속한 사례를 들고있다.
■ 증설하자마자 시장침체... 증설압박하던 정부는 나몰라라
포스코는 2008년부터 본격 증설에 나섰지만 1년도 안돼 국제금융위기로 조선 업계에 불황이 닥쳤다. 국내 조선수주량은 2008년 6730만CGT에서 올해 3460만CGT로 반토막이 났다. 자동차 부문도 GM, 도요타 등 세계적인 업체의 판매부진이 이어져 일본에서는 신일본제철이 도요타의 자동차 강판구매가격을 인하해 주는 상황이다.
포스코는 이로 인해 2009년부터 유휴설비가 발생해 가동율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재고자산도 연평균 5천억원씩 증가하던 데서 2008년 부터는 1조5천억원씩 증가해 지난해에는 10조원을 넘어섰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최근에는 중국 업체들의 덤핑까지 극성을 부려 상황은 더 나빠지고 있다. 이 때문에 철강업계는 정부에 중국의 덤핑을 막아달라는 요청을 꾸준히 하고 있으나 정부는 중국 수출에 대한 악영향을 우려해 움직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업계관계자는 “설비증설을 압박하던 정부가 최근 중국의 덤핑이라도 막아달라는 요청에 외면하고 있다”며 “정부가 움직이지 않아 중국에 반덤핑 제소 준비를 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며 한숨 지었다.
포스코의 늘어나는 후판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감산을 하거나 조선경기가 되살아 나야한다. 하지만 철강산업의 특성상 감산은 쉽지 않다. 게다가 조선경기도 글로벌 경기침체가 장기화될 조짐이어서 조기에 회복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 중론이다. 게다가 국내 조선업체들은 물량을 소화해주기는 커녕 원가절감을 위해 값싼 중국산 후판을 전체 사용량의 40%나 사들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이 포스코의 증설에 따른 여파가 길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