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비자는 '봉'… 미국서 11.4km가 국내선 16.4km
작은차 일수록 오차 심해… 너슨한 기준에 서민들 피해
현대·기아차가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당국의 허술한 연비기준을 이용해 연비표시를 상식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뻥튀기'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에서 리터당 11km 달리는 차가 국내에선 16km의 연비를 보이는 차로 과포장되어 팔리고 있다.
미국 환경보호청은 최근 기아차의 쏘울 1.6L 수동 모델에 대해 기존 복합연비 30MPG(갤런당 마일 수)를 27MPG로 10.0% 깎아내렸다. 27MPG를 리터당 킬로미터로 환산하면 11.4km에 해당한다. 그런데 기아차가 에너지관리공단에 신고한 같은 모델의 공인연비는 16.4km로 되어 있다. 미국 기준의 복합연비에 비해 한국 공인연비는 무려 43.8%나 더 높게 표시되고 있다.
복합연비는 고속도로 주행 연비와 시내 주행연비를 평균한 것이어서 공인연비와는 다소 차이가 난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상식을 벗어나는 오차이다.
현대·기아차는 미국 환경보호청의 연비과장 지적에 대해 자발적으로 협력하면서 오류를 시인했고 소비자들에게도 추가되는 연료비를 보상해주겠다고 발빠르게 대응했다. 그러나 국내 소비자에 대해서는 미국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부의 너슨한 기준에 편승해 과장된 공인연비 표시를 그대로 방치한채 판매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 연비오차 최대 43.8% 보이는 기아차 쏘울
국내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차종별로 연비를 측정해 한국에너지관리공단에 신고하도록 되어 있으며 에너지관리공단은 지난해까지는 공인연비를 사용하고 올해부터 생산되는 차에 대해서는 복합연비를 표시토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상당수의 현대·기아차가 미국의 기준보다 터무니없이 높은 연비로 표시되어 국내시장에서 팔리고 있다.
현대차 액센트 1.6L 수동 모델의 경우 미국 기준의 복합연비 31MPG를 리터당 킬로미터로 환산하면 13.1km에 달한다. 그런데 현대차가 에너지관리공단에 신고한 액센트 1.6L 수동 모델의 공인연비는 17.7km로 되어 있다. 미국의 연비에 비해 무려 35.1%의 격차가 발생한다.
벨로스터 1.6L 자동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미국 복합연비는 13.1km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공인연비는 16.6km로 표시되어 실제보다 26.7% 높은 연비를 보이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고 있다.
◆…자료 : 미국 환경보호청, 한국에너지관리공단
■ 작은차 일수록 오차 심해… 피해는 고스란히 국내 서민의 몫
같은 모델의 현대차라 하더라도 미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연비와 한국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비표시가 큰 차이를 보이고 있음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특히 소형차일수록 한국과 미국간 오차가 심하게 나타나고 대형차일수록 오차 범위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 제네시스 5.0L 자동 모델의 경우 미 환경보호청 기준에 따르면 복합연비가 20MPG로 나타났고 이번 점검에서도 기존과 비슷한 수치를 나타낸 것으로 분석됐다. 이를 리터당 km로 환산하면 8.5km에 달한다. 국내 에너지관리공단에 신고된 현대 제네시스 5.0L 자동의 공인연비는 9.0km로 미국 복합연비 8.5km와 5.8%의 격차를 보여 비교적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기아차 쏘울의 오차 43.8%와 비교하면 무려 7.5배에 달하는 오차비율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현대·기아차에게 최대의 '봉'은 소형차를 타는 서민이라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소형차의 연비는 서민들의 삶과 직결되어 있다. 현대·기아차 가운데 소형차의 격차가 크게 나올 경우 소형차의 수요자는 대부분 서민들이기 때문에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기아차 쏘울의 공인연비와 연간 운행비. 출처 : 한국에너지관리공단
에너지관리공단은 기아차 쏘울의 공인연비 리터당 16.4km를 연간 주행거리 1만5천km에 적용할 경우 연간 운행비를 181만9802원으로 산출하고 있다.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989원이 적용됐다. 그러나 미국 소비자에게 표시하고 있는 연비를 적용하면 연간 운행비는 261만7105원으로 연간 79만7303원의 운행비를 추가 부담해야 한다. 결국 공인연비를 믿고 구매한 국내 소비자는 그만큼 손해를 입게 되는 셈이다.
대림대 자동차학과 김필수 교수는 “한국의 경우 소비자보다 제조업체가 중심이 되다 보니 소비자가 하소연할 곳이 없는 상황”이라면서 “현대·기아차 연비과장 사태를 계기로 미국은 소비자 위주로 정책을 펴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해줬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