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병'에 걸린 한국의 병세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정부는 빚을 내서라도 복지를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정책 곳곳에 표출시키고 있다.
'브레이크'는 전혀 작동되지 않고 있다.
2년 전 겨울, 대통령 선거의 최대 화두는 복지였다. 색깔을 가리지 않고 유사한 내용의 복지공약을 쏟아냈다. 문제는 양 진영(새누리당, 민주통합당)이 내놓은 복지공약을 실현할 토대인 '재원'과 관련한 대책이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필요계층에 대한 선별적 방식으로 증세(增稅)없는 복지가 가능하다는 박근혜 후보와 부유층에 대한 증세를 통해 보편적 복지를 앞세운 문재인 후보의 대결은 박근혜 정부의 출범과 함께 승패가 갈렸다.
사실 대선 기간 동안 우후죽순 쏟아진 복지공약만 있었을 뿐, 이를 뒷받침할 재원마련 방법에 대한 검증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가동 과정에서 재원대책을 둘러싼 논란이 달아오르기도 했지만 정부는 비과세·감면 정비,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추가로 마련되는 세수로 복지재원을 충당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으며 논란을 희석시켰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청사진은 단 1년 만에 폐기처분이 필요할 정도의 위기상황에 직면해 있다. 경기침체 여파로 목표했던 세수마저 채우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박근혜 정부는 복지예산 편성액을 크게 늘리고 있다.
빚을 내서라도 복지공약을 강행하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고 있는 것이다.
□ 2012년 대선 '후유증', 위기 봉착한 국가재정 = 지난 2012년 대선은 정치역사적으로나 재정학적으로 보나 대한민국에 깊게 생각해 볼 숙제를 던져준 일종의 전환기였다.
보수 또는 진보, 증세 혹은 감세로 대표되는 이분법적 색깔론을 동력으로 굴러가던 정치판의 속성을 뒤집어 놓았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 등으로 경제 여건은 갈수록 힘들어지고 서민들은 살아가기 팍팍한 가운데 국민들도 보수와 진보에 더 이상 열광하지 않았다는 점도 증명됐다.
정치권 입장에서는 국민들의 관심을 끌 또 다른, 확실한 동력이 필요했다.
'복지'였다.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 5년 동안 131조4000억원 규모가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 복지공약을 내놓았고 예산절감, 세제개편 등으로 134조5000억원의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다.
박 대통령과 외나무다리 사투를 벌인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현 새정치민주연합) 대선 후보는 집권 기간 동안 192조50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되는 복지공약과 더불어 부자증세 등을 바탕으로 197조원의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주장했다.
여당은 현실적인 복지공약을, 야당은 국민 누구나 차별받지 않는 복지를 약속했지만 당시 우리 사회가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 있었다.
더 많은 복지를 약속하는 진영을 선택하는 것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는 점이다. 복지공약 실현을 위해 담보되어야 할 재원마련 정책은 어차피 양 진영 모두 현실성이 떨어졌고, 과열된 복지경쟁의 후유증은 국가재정을 거덜내는 '함정'으로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 '빚더미' 위 세워진 복지국가의 참담한 말로 = 무분별한 복지지출로 나라가 파산지경에 빠져든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특히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를 겪은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는 감당할 수 없는 복지지출의 개선이 최우선이라는 교훈을 남겼다.
정부는 미국(GDP 대비 104.3%)과 일본(224.6%), 독일(85.9%) 등 선진국들에 비해 우리나라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낮은 수준으로 형성, 재정건정성 유지에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채무의 증가속도를 보면 결코 긴장을 풀 수 없는 형편이다.
실제로 2000년부터 2012년까지 우리나라 연평균 국가채무 증가율은 12.3%로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포르투갈(10.5%), 스페인(7.4%), 그리스(6.7%), 이탈리아(3.6%)보다 상당히 높은 편이다.
그리스는 2011년 GDP 대비 복지지출이 22.5%를 기록하는 등 복지 지출이 상당한 수준이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후반까지는 높은 경제성장률 덕에 복지수요를 감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08년부터 재정조달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한 그리스는 복지 지출을 줄이는 대신 저금리의 외채를 빌려다 복지예산으로 충당, 이듬해인 2009년 국가채무가 GDP 대비 113.4%로 늘어났고 결국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하고 지경에 이르렀다.
이탈리아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이탈리아는 1970년대 중반부터 2%에도 미치지 못하는 출산율을 보이고 있으며 2050년까지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전체 인구의 35%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른 의료보험과 연금에 대한 지출도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지만 경제성장률이 1990년대부터 1%에 머무르는 반면 무분별한 재정지출 확대 기조는 계속 유지, 디폴트 위기로까지 내몰렸다. 이탈리아는 여전히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국가재정, '표(票)퓰리즘' 감당할 수 있나 = 이미 대한민국은 복지예산을 늘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저출산이 고착화되고 고령화 사회로 빠르게 진화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기초수급생활자 지원 또한 줄기는 커녕 늘어나기만 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최소한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정부가 돈을 풀어 국면을 전환시키는 방법밖에 없다.
복지에 쓸 돈 뿐만이 아니다. 예기치 못한 세월호 참사 등의 대형사고로 인한 안전예산 증액과 더불어 최근 잇따르는 군대 내 사고 등을 근절하기 위한 국방예산 확대 등 정치권이 새로운 공약을 들고나오지 않아도 돈으로 막아야 할 구멍은 차고도 넘친다.
지난해 정부는 올해 세출예산을 편성하면서 사상 처음으로 복지·보건·고용 등 복지예산을 100조원 이상 규모(105조8726억원)로 편성했다. 이 기조는 그대로 유지, 최근 발표된 정부의 내년도 세출예산에서 복지예산을 큰 폭으로 올려 전체 세출예산의 30%(115조5000억원) 수준을 편성했다.
2010년 81조2000억원이었던 복지 예산은 2011년 86조4000억원, 2012년 92조6305억원, 2013년 99조2927억원으로 연 평균 6% 이상의 증가율을 보였다.
특히 보건·복지·고용 분야의 의무지출 규모를 보면 2010년 50조4000억원에서 2011년 54조2000억원, 2012년 59조원, 2013년 62조9000억원, 2014년 69조4000억원으로 복지예산 증가율보다 더 높은 증가율(약 8%)을 나타냈다.
의무지출이란 기초수급비와 연기금 등 정부가 반드시 지출해야만 하는 예산으로 선택의 여지가 없는 항목이다. 현재 노인인구와 연금수급자가 증가함에 따라 기초연금, 공적연금 지출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2018년 보건·복지·고용 분야 의무지출이 96조4000억원으로 연 평균 8.4%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3~4년 안에 복지예산으로 30조원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기침체로 세수상황은 정부의 기대치를 한참 밑돌고 있다.
이에 정부는 '빚'을 내는 방법으로 재원을 조달하는, 위험한 선택을 했다.
올해 527조원(국내총생산(GDP) 대비 35.1%)수준으로 예상되는 국가채무는 2015년 570조원(GDP 대비 35.7%)으로 1년만에 43조원이 증가하고 2016년에는 615조원(GDP 대비 36.4%)으로 600조원대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2017년에는 659조원(GDP 대비 36.7%), 2018년 691조원(GDP 대비 36.3%)으로 국가채무는 5년에 걸쳐 160조원 안팎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국가채무가 482조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박근혜 대통령 집권 5년 동안 국가채무는 177조원이나 늘어나게 되는 셈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균형재정 달성은 커녕, 국가재정이 파탄 지경으로 내몰릴 수 있다. 정부는 경제를 활성화시킨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경제가 꾸준히 위기를 겪지 않고 성장할 것이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특히 전문가들은 현재의 조세체계로는 국가재정의 위협요소인 저출산 및 고령화 해소는 물론 항구적인 경제성장 견인을 담보할 수 없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특정 세목(부가가치세 등)의 세율을 높이는, 직접적인 증세방안까지 포함된 대대적인 조세체계 개편이 하루빨리 이루어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