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파기환송심서 징역 2년6개월 선고 법정구속
재판부 "삼성 준법감시위, 양형에 참조하지 않아"
준법감시위, 김지형 전 대법관 위원장으로 지난해 초 출범
◆…국정농단 뇌물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오후 서울고법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사진=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2017년 2월 구속된 이후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풀려난 이 부회장은 이날 실형을 선고받아 2년 11개월 만에 재수감됐다. 이 부회장은 이미 353일 수감된 바 있어 남은 형기인 1년 6개월을 마쳐야 한다.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정준영 부장판사)는 이날 오후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등 혐의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서 이 부회장에게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특검은 지난달 30일 파기환송심 결심공판에서 "이 부회장의 뇌물 공여 및 횡령액이 50억 원 이상 증가했다"며 이 부회장에게 징역 9년을 구형한 바 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박 전 대통령의 뇌물 요구에 편승해 적극적으로 뇌물을 제공했고, 묵시적이기는 하지만 승계작업을 돕기 위해 대통령의 권한을 사용해달라는 취지의 부정한 청탁을 했다"며 이 부회장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그러면서 "삼성의 새로운 준법감시제도가 실효성 기준을 충족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 '준법위' 양형 참작 안 했지만…형량은 1심 절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18일 서울고법에서 열린 선고 공판에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이 실효성을 충족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양형 조건에 고려하지 않았다. (사진=연합뉴스)
파기환송심에서는 재판부의 주문에 따라 설치된 '삼성그룹 준법감시위원회'가 이 부회장의 양형에 영향을 미칠지가 주요 쟁점으로 다퉈졌다. 대법원이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 자체는 유죄로 판단했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재판부가 준법감시위 운영을 긍정적으로 평가해 양형에 반영한다면 뇌물 액수와 상관없이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실효성 기준을 충족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준법감시위를 양형 조건에 참작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준법감시위를 양형에 고려하지 않았다고 밝히면서도 형량은 1심의 징역 5년과 비교해 절반 가까이 감경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실효적 준법감시는 법적 위원의 평가로부터 시작되는 것인데, 새로운 준법감시제도는 일상적인 준법감시 활동과 이 사건의 위법행위에 맞춘 준법감시 활동을 하고 있으나 앞으로 발생 가능한 새로운 유형에 대한 선제적 위험 예방 및 감시활동을 하는 데까지 이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조직에 대한 준법감시 방법이 제시돼 있지 않고, 협약을 체결한 7개 회사 외에 발생할 위법행위에 대한 감시체계가 확립되지 못했다"면서 "과거 정치 권력에 뇌물을 제공하기 위해 사용했던 허위용역계약 방식 등 제도를 보완해야 할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의 준법감시위가 이 부회장의 혐의와 관련한 활동을 펼친 부분은 인정되지만 제한적이었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재판부는 과거 삼성의 준법감시제도와 관련해서도 실효성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삼성은 이 사건 범행 당시 준법지원인 등 준법감시제도를 운영하고 있었지만 범행을 막지는 못 했다"며 "당시 준법감시제도가 최고경영자들을 대상으로 심도 있게 작동됐다면 이 사건 범죄는 방지될 수 있었을 것이고, 피고인들도 이 법정에 서는 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꼬집었다.
이와 함께 재판부는 "이 사건은 국정농단 사건의 일부분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론 그동안 정치권력이 바뀔 때마다 반복돼왔던 삼성 최고경영진이 가담한 뇌물횡령죄의 연장선에 있기도 하다"면서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이자 자랑스러운 글로벌 혁신기업인 삼성이 이처럼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해 범죄에 연루된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재판부는 준법감시위의 진정성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재판부는 "새로운 삼성 준법감시위의 촉박한 일정 등 한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문심리위원에 의해 어느 정도 점검이 이뤄졌고, 전문심리위원 보고서는 법원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되기도 했다"며 "그 결과 준법감시위의 권한과 역할, 위법행위 신고 시스템 구축 등 실효성을 제고하기 위한 피고인의 진정성과 노력은 긍정적으로 평가돼야 한다"고 말했다.
■ 준법위 요구한 재판부, '감경 명분' 우려 목소리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준법감시제도를 언급함에 따라 삼성그룹은 지난해 초 김지형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한 준법감시위원회를 출범했다. (사진=연합뉴스)
앞서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2019년 10월 첫 공판에서 "삼성 내부에서 기업 총수도 무서워할 정도인 준법감시제도가 작동했다면 이 부회장뿐만 아니라 박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도 이러한 범죄를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미국 연방 양형기준 제8장과 미국 대기업의 준법감시제도를 참고하라"며 준법감시위 설치를 요구했다. 재판부는 지난해 1월 열린 4차 공판에서 전문심리위원 제도를 통해 준법위의 실효성을 점검해 이 부회장의 형량에 반영할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에 삼성은 지난해 2월 윤리·준법경영을 감시하는 외부 독립기구인 준법감시위를 공식 출범했다. 김지형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한 준법감시위는 이 부회장에게 경영권 승계·노동·시민사회 소통에 대한 의견을 밝히라고 권고했고, 이 부회장은 지난해 5월 대국민사과를 통해 이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일각에선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준법감시위의 실효성을 '전문심리위원'을 통해 점검해 양형 판단에 고려할 뜻을 밝히자 '감경 명분'을 만드는 게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당시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은 서울지방변호사 회관에서 열린 '삼성공화국으로의 회귀, 재판부와 검찰인사는 어떻게 이재용을 구할 것인가' 간담회에 참석해 "최근 검찰과 법원의 움직임으로 인해 이 부회장에 대한 수사와 재판이 흔들릴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재경지법의 현직 부장판사도 법원 내부망인 '코트넷'에 "준법감시위가 내부 정보에 어느 정도의 접근성을 가질지에 대해 정해진 것이 없다면 아무리 화려한 면면이라도 실제 효과는 낮을 가능성이 크다"며 실효성에 우려를 표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특검도 지난해 2월 재판 편파 진행을 문제 삼아 법원에 재판장 기피신청을 냈지만 대법원에서 기각됐다.
이후 특검과 이 부회장 측이 각각 추천한 전문심리위원들이 엇갈린 의견을 냈다. 특검은 출범한 지 1년이 되지 않은 준법감시위의 실효성을 따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지만, 이 부회장 측은 4세 경영 포기, 무노조 경영 중단 등 대국민사과를 통해 실효성을 담보했다는 입장이다. 재판부가 추천한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은 대체적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 부영 이중근 회장은 '준법감시' 유리한 양형 참작
한편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지난해 1월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횡령) 등 혐의 항소심 공판에서 '준법감시실 설치'를 양형에 유리한 요소로 판단해 1심의 징역 5년보다 절반 감형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한 바 있다.
재판부는 이 회장의 동종 처벌 전력 등을 양형에 불리하다고 판단하면서도 '준법감시실'을 별도로 언급하며 유리한 정상으로 언급했다. 재판부는 "부영은 최고경영진이 사적 이익을 추구할 목적으로 계열회사를 상대로 횡령하고 배임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2018년 5월 준법감시실을 신설했다"며 "이후 독자적으로 준법감시를 수행할 외부 준법감시인을 위임하는 등 준법경영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유리한 정상"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준법감시제도를 운영한 부영 사례와 같이 이 부회장의 재판에서도 유리한 양형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왔지만, 결과적으로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실효성이 미흡하다고 지적하며 양형에 반영하지 않았다.
이날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대법원의 취지에 따라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과 최씨 측에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등을 도와달라는 청탁의 대가로 뇌물 86억8081만원을 건넨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이 부회장은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 뇌물액이 줄어들면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으로 감형돼 석방됐다.
이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8월 삼성이 최씨의 딸 정유라씨에게 지원한 말 세 마리(34억원)와 영재센터 후원금(16억원)을 뇌물로 인정하지 않았던 항소심 판결이 잘못됐다고 판단해 사건을 다시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 부회장은 이날 선고가 끝난 뒤 아무 말 없이 구속 집행 절차에 들어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