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노태우 '비자금'… 추징 가능할까?

국세청, 대법원 판결 이후 '세무조사 가능성 판단'

세무전문가, '대법원의 비자금 심리 필요성 강조한 것' 해석

최태원 SK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과정에서 불거진 '노태우 비자금'은 추징이 가능할까?

1조3808억 원이라는 천문학적 재산분할로 세간의 관심을 모은 두 사람의 이혼소송이 최종심인 대법원의 판결만을 남겨두고 있다.

특히 2심 소송 중 재산분할의 타당성 입증을 위해 노소영 관장 측에서 증빙으로 제출한 '김옥숙 여사의 메모(선경 300억 원)'와 '약속어음(50억 원 짜리 총 6장)'의 성격이 세무조사를 통한 '추징' 가능성 여부를 가릴 주요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 노소영 측 주장 vs 최태원 측 주장 

노 관장측은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최종현 SK 선대회장에게 300억 원의 자금이 흘러갔고,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선경 측에서 300억 원의 약속어음(50억 원 짜리, 6장)을 '증빙'으로 지급했다는 입장이다.

반면 최 회장 측은 이 어음의 성격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이 퇴임 이후 활동비 등을 요구하는 경우 이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는 의미'라고 주장하고 있다.

2심 재판부는 노 관장 측 주장이 최 회장 측 주장보다 신빙성이 있다며 노 관장의 손을 들어줬다.

2심은 특히 노 관장 측 주장처럼 '300억 원의 자금이 선대 최종현 회장에게 흘러들어 갔고, 이 자금을 종자돈으로 현재의 SK 주식회사가 사세를 키울 수 있었다고 판단함으로써, 최 회장이 소유하고 있는 SK주식은 부부공동재산으로 분할대상 재산이 된다고 판단해 노 관장에게 1조3808억 원의 재산분할금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대법원 역시 가사소송(이혼소송)의 특성을 고려해 재산분할을 중심으로 부부 일방의 '특유재산'인지, 혹은 '부부공동재산'인지 여부만을 따져서 판단할 뿐, 그 재산의 구체적인 성격을 증여로 볼 것인지, 대여로 볼 것인지 등의 여부를 판단하지 않을 가능성도 예상된다.

다만, 국고에 환수 되었어야 할 노태우 비자금이 불법으로 은닉, 관리되어 왔음이 분명한 상황에서 2심 재판부가 이를 심리하지 않고 판결한 것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거센만큼, 과거 노태우 불법 비자금 전액 추징·환수 판결(1997년)을 내린 바 있는 대법원으로서는 최근 불거진 '노태우 비자금'의 출처를 따져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법조계의 시각이다.

국민적 저항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만약 대법원이 고법판결을 그대로 인용할 경우, 1조 3808억 원으로 증식된 불법 비자금을 국고로 환수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증여세 추징의 경우 부과제척기간과 소멸시효가 지났기 때문이다.

■ 대법원 판단… '증여' vs '대여' vs '약속어음 존재 부인' 대법원에서 '선경 300억 원'의 성격을 '증여'로 판단한다면 2심과 마찬가지로 노소영 관장 측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2심 재판부는 판결 선고 이후 선대 최종현 회장의 별세 직전 대한텔레콤의 주당 가치를 100원에서 1000원으로 수정한 '판결경정결정서'를 양측에 송달했다. 이에 따라 기여분 계산에서 선대 최종현 회장의 경우 12,5배에서 125배로, 최태원 회장의 경우 355배에서 35.6배로 수정했다.

그럼에도 항소심 재판부는 '재산분할 비율(최태원 65 대 노소영 35)과 재산분할 총액(총 4조115억, 이 중 1조3808억 원을 노 관장에게 지급하라)에 변화가 없다'는 기존의 입장을 유지했다.

대법원에서도 고법 판결과 같은 판결이 나온다면, 즉 증여로 본다면 소멸시효(5억 원 이상은 10년)나 제척기간 경과(국세 부과 제척기간 15년)로 인해 상속·증여세 추징이 어렵다는 게 국세청 관계자의 설명이다.

1991~1992년 경 증여가 이뤄졌다고 판단할 경우, 소멸시효(5억 이상일 경우 10년)와 국세 부과 제척기간(15년) 모두 지난 것으로 볼 여지가 높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도 증여세 제척기간은 증여일로부터 15년이 아니라 '부과할 수 있는 날'로부터 15년이라고 규정돼 있어서 법리적인 다툼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세무당국의 적극적인 세무조사와 추징을 이끌어 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노 관장 측이 고의적으로 증여세 신고를 누락(무신고)한 것으로 본다면, 신고누락에 따라 과세가 불가능한 경우에 해당해 "증여가 있음을 안 날부터 1년 이내"라는 법 규정을 적용해 세무당국이 상속·증여세를 부과할 여지도 있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노 관장 측 입장에서는 재판부가 증여라고 한 판단에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300억 원에 대한 증여세를 낸 후, 천문학적인 재산분할(1조3808억 원)에서 그보다 훨씬 많은 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변수는 있다. 노 관장이 약속어음(비자금)의 존재를 드러낸 후 5·18재단과 군사정권범죄수익국고환수추진위 등이 제출한 3건의 검찰 고발이 있었고, 검찰은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 결과에 따라서 불법 비자금 및 그 수익까지 모두 추징당할 가능성도 있다.

더 큰 변수는 불법 비자금을 개인재산으로 인정해 준 2심 판결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다. 노 관장의 '약속어음 300억 원'은 불법 비자금일 가능성이 높은데, 그로부터 증식된 범죄수익을 모두 노 관장이 받아 간다면 국민적인 저항은 더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 최태원 회장 측... 고법의 '증여 판단'에 적극적으로 반대

최태원 회장 측은 대법원에서 2심의 수정된 '판결경정결정서' 부분을 파고들며 노 관장 측의 주장을 일부 탄핵하는 전략을 펼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최 회장 측은 법원의 증여라는 판단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재산분할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대법원이 300억원의 비자금을 '대여'로 판단한다면 "상속세 추징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게 국세청 관계자의 전언이다.

노 전 대통령이 선대 최종현 회장에게 돈을 빌려주고(대여), 그에 대한 약속어음 받았다는 주장인데, 이럴 경우 노 관장 측은 노태우 전 대통령 사망 당시 상속세 신고 때 채권(비자금) 300억 원에 대한 재산신고가 누락된만큼 상속세 부과가 가능하다는 논리다.

최 회장측에서는 대법원에서 '대여'로 판단할 경우, 찬성 입장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엔 빌린돈 300억 원만 갚으면 되고 무엇보다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 액수가 2심보다 크게 줄어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편 SK 측에서는 항소심 과정에서 300억 원(약속어음)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즉 최 회장측은 약속어음의 성격을 잘 알 수 있는 인물들의 증언을 통해 '약속어음'이 노 전 대통령의 퇴임 후 활동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발행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손길승 전 SK 회장은 약속어음 발행 시기가 1992년 12월 16일로 대선 이틀 전이라는 점을 들어 "약속어음이 노 전 대통령의 퇴임 후 활동자금 지원의 의미로 발행된 것"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

노 전 대통령 당시 장관과 경제수석 등을 지내며 노태우의 핵심 참모 역할을 해 온 김종인 전 위원장의 증언도 손길승 회장과 같다.

김종인 전 위원장은 한 유튜브 채널 진행자에게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자금 문제를 관리하는 이원조씨가 있는데 사돈기업에 통치자금 이야기를 해서 (선경에서 노태우 측에) 꾸준히 줬다. 노 전 대통령 측에서 퇴임 이후에도 이게 과연 제대로 줄 것이냐 이런 부분에 대한 의문이 있어 이를 확약하는 증표로서 일단 뭘 좀 주라고해서 어음 자체를 준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SK측은 상고이유에 "(300억 원의 약속어음이) 세부 내용 없이 단순히 비자금으로 들어왔을 것이라고 막연히 여겨지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떻게 전달했는지 구체적인 팩트가 없다"고 노 관장측을 압박하는 전술을 펴고 있는 상황이다.

노태우 비자금과 노소영의 불법 은닉 범죄수익에 대한 환수에 대해 법률과 검찰 수사를 통한 추징에도 국회와 시민단체의 활발한 활동과 요청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대법원 판결이 나와야 세무조사 가능성을 살펴볼 수 있다는 국세청 입장이 주목받고 있다.

세무전문가들은 "국세청이 대법원에 노태우 불법 비자금과 그 범죄수익에 대해 엄격하게 심리해 달라는 취지로 언급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편 특별법 개정을 통한 추징은 몇 가지 난관이 예상된다. 소급입법을 통한 기본권 침해의 문제, 소멸시효 도과로 인한 법적 안정성 침해 문제, 일반법인 아닌 '개별(인 또는 사건)'적 법률이 가능한지의 문제 등 법적 문제와 여야 합의를 통한 국회에서의 추진력 확보가 관건이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서는 2024년 3개의 관련 법률 개정안이 상정돼 위원회 심사가 진행 중이다.

먼저 진보당의 윤종오 의원이 2024년 6월 12일자로 제안한 '헌정질서 파괴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이 올라와 았다. 이 법안의 주요 내용은 '헌정질서 파괴범죄자가 불법으로 얻은 재산은 사망이나, 공소시효의 만료로 공소를 제기하지 않아도 몰수 또는 추징이 가능'하도록 했다.

또 더불어민주당 장경태 의원이 9월 2일 제안한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역시 위원회 심사가 진행 중이다. 이 법률은 '헌정질서 파괴범죄자가 사망하거나 공소시효가 만료되더라도 범죄수익을 몰수, 추징'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국민의힘 박준태 의원이 지난 9월 23일 제안한 '형법 일부개정 법률안'에도 범죄행위를 통해 얻은 수익에 대해 공소제기 없어도 몰수할 수 있도록 하는 '독립몰수제' 도입 내용을 담고 있다.

보다 직접적인 해결 방안인 검찰 수사를 통한 추징 가능성에 대해서는 검찰의 적극적인 수사 의지와 함께 시민사회의 꾸준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