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침체 또는 둔화되었던 경기가 회복되면서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최근 구리가격은 1년 전에 비해 70% 상승했고, 니켈은 120% 이상, 알루미늄은 75% 이상 가격이 올랐다. 원유가격도 지속적으로 상승해 고유가 대책이 나왔던 지난 2008년 10월 초 이후 최고 수준이다.
국제 원자재가격이 급등하면 제일 먼저 어려움을 겪는 것이 제조·수출업체다. 이는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발표한 전국 504개 제조업체 대상 '원자재가격 상승에 따른 기업애로 실태조사' 결과를 보아도 그대로 드러난다.
이 조사결과를 보면 원자재 가격상승으로 기업경영에 직접적인 피해가 매우 심각하다고 응답한 기업이 31.9%였으며, 응답 기업 4곳 중 1곳(24.8%)은 최근의 원자재가격 급등이 감내할 만한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답 기업들의 69.2%는 원자재가 상승에 대해 '대책이 없다'고 하여 대부분 기업이 이에 대해 사실상 무방비 상태인 것으로 조사됐다. 원자재 수입의존도가 높은 국내 산업구조상 원자재가격의 급등은 곧바로 수출품의 가격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국제원자재 시세가 급등하거나 환율이 급등할 때 흔히 거론되는 것이 정부지원으로서 관세의 인하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실태 조사결과를 공표하면서 정부지원으로 수입관세 인하, 긴급할당관세 시행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리가 있는 지적이다.
우리나라의 관세율이 많이 낮아지긴 했지만 국제적으로 보면 아직 상당히 높다. 특히 기초원자재에도 재정수입을 이유로 관세를 부과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와 같이 원자재 가격이 급등할 때는 물가안정이나 기업 경쟁력을 고려해 기초원자재의 관세인하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정부의 관세인하 조치 말고 기업은 무대책일 수밖에 없을까? 그런 것은 아니다. 원자재 수입선과 수출시장의 조정으로 가격경쟁력을 개선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유무역지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나 일부 개발도상국과 교역되는 물품에 대해서는 관세가 인하되거나, 아예 무관세를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활용하는 것이다. 특히 원자재의 경우 이런 혜택이 크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효된 FTA는 한-칠레, 한-싱가포르, 한-아세안, 한-EFTA, 한-인도 등 5개다. 하지만 한-칠레 FTA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이용률이 낮다.
2004년 4월 발효된 한-칠레 FTA는 수출입 모두 특혜관세 이용률이 90%에 이르지만 발효된지 3년 가량된 한-아세안 FTA의 경우 이용률은 수출이 14%, 수입이 27% 정도가 고작이다. 아직 많은 무역업체들이 관세문제를 수출입물품 경쟁력 확보의 전략적 변수로 고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FTA는 체결되지 않았지만 개발도상국간 협정에 의해 상호 특혜관세를 적용하는 것도 있다. 아시아태평양무역협정(APTA), 세계무역기구 개발도상국간 무역협정(TNDC), 유엔무역개발기구 개발도상국간 무역협정(GSTP)이 그것이다.
그 외에 50개국에 이르는 최빈개발도상국에서 수입되는 물품에는 해당국에 대한 지원측면에서 무관세의 특혜관세가 허용되는 품목도 적지 않다.
FTA에 의하거나 개발도상국 교역물품에 차별적인 관세특혜를 부여하는 것은 세계무역기구가 예외적으로 인정하는 특혜조치다. 무역으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의 경우 이를 잘 활용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한-중 FTA의 필요성을 역설함에 따라 양국간 이에 대한 논의가 빠르게 진전될 것으로 예상된다.
주요 교역상대국과 FTA체결을 늘려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제는 무역업체들이 얼마나 FTA를 잘 활용하는가 하는 점이다. 많은 물품의 관세율이 차별적으로 폐지되었으나 막상 무역업체들의 이용률이 높지 않다는 것은 심각하게 생각해 볼 문제다.
국제무역환경과 수출입상품의 가격경쟁력은 빠르게 바뀐다. 그만큼 FTA 협정관세가 적용되지 않는 원자재의 관세율 조정이나 FTA와 관련된 정보와 기술제공을 통한 정부의 탄력적인 기업지원이 요구된다.
개별기업 입장에서도 관세문제를 고려해 원자재 조달국이나 수출물품 판매시장을 전략적으로 조정하는 것을 서둘러 고려해 봐야한다.
중국이나 인도처럼 규모가 크고 경제성장에 가속도가 붙은 신흥국들의 사정을 보면 국제원자재 가격이 쉽게 내려가진 않을 것 같다. 정부와 기업의 좀 더 유연하면서도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한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