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세 인상기조-부가세 확대, 술·담배 과세 강화
정치논리, 여론역풍...깊어지는 정부의 '고민'
대규모 재정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그리스, 스페인은 물론, 최근 유럽 국가에서는 지난해부터 정부부채를 줄이고 재정건전성을 회복하기 위한 다양한 대책들이 제시되고 있다.
특히 부가가치세 세율을 인상하고, 술·담배, 유류 등에 대한 세금을 인상하는 등 소비세를 강화하는 추세가 눈에 띄게 두드러지고 있다.
부가가치세, 개별소비세 등은 간접세로 조세저항이 직접세보다 적어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세수확보에 적합하기 때문. 또 국제조세 경쟁이 심화되는 체제에서 직접세를 줄이고 간접세를 늘리는 추세적 경향과도 맞물려 있다.
그리스, 스페인 등은 물론, 영국, 핀란드 심지어 일본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미용목적 성형수술 비용 등에 부가가치세를 과세하고, 술·담배에 대한 세금을 인상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나 이해관계, 정치논리, 여론 등에 밀려 추진되지 못했고, 지금도 이런 것들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부가가치세 과세대상 확대, 술·담배 과세 강화, 탄소세 도입 등은 사실상 '중장기적인 과제'로 남아 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 유럽의 소비세 인상, 대한민국의 스탠스는?= 그리스는 3월 초에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부가가치세율을 19%에서 21%로 상향조정했다. 또 개별소비세 과세대상인 유류, 주류, 담배 등의 세율도 인상했다.
스페인도 부가가치세 표준세율을 오는 7월부터 16%에서 18%로 올리고, 핀란드도 같은 시기에 22%에서 23%로 상향조정하기로 했다.
영국도 정부부채를 줄이기 위해 향후 2년 내에 부가가치세율을 17.5%에서 20%로 상향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지난 4월부터는 부가가치세 면세점을 6만8000파운드에서 7만 파운드로 축소한 상황. 일본은 10월부터 담뱃세를 1개비당 3.5엔으로 세율을 인상하기로 했다.
영국 등 유럽국가들이 소비세를 확대하는 조세정책을 추진하는 대표적인 이유는 재정적자를 줄여 재정건전성을 회복하기 위한 측면이 강하다. 그러나 소비세 강화는 저출산·고령화라는 시대적 과제와 국가 간 조세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환경을 살펴볼 때 외면할 수 없는 추세적 경향이라는 분석이 많다.
우리나라도 소비세를 확대하는 조세정책이 구체적으로 현실화되지는 않았지만, 지속적으로 조세정책 방향을 '소비세 확대'로 가려는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미용목적) 성형수술 비용, 수의사의 애완동물 의료용역, 운전학원 등에 부가가치세를 과세하는 방안을 발표했으며, 술·담배에 대한 과세강화, 탄소세 도입 등이 비공식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에 따라 부가가치세 과세대상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외부불경제 품목인 술·담배를 비롯해 석탄 등에 과세를 강화하는 방안은 언제든지 가시화될 수 있는 조세정책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성형수술 비용, 수의사의 애완동물 의료용역 등에 대한 부가가치세 과세는 올해 다시 진행할 계획"이라며 "술·담배에 대한 과세강화도 방향성은 맞다"고 밝혔다.
□ "소비세 강화, 방향은 맞는데 현실은..."= 소비세 강화 등이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적인 움직임 중 하나로 부각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현실화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많다.
지난해 정부가 술·담배 과세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형성된 부정적인 여론은 정부가 추진하는 모든 조세정책에 제동을 걸 만큼 강력했고, 아직도 꺼지지 않은 '불씨'로 여겨지고 있다.
술·담배 과세강화는 이명박 정부가 추진해왔던 감세정책을 비롯해 종합부동산세 완화,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완화 등과 맞물려 '부자감세·서민증세'라는 여론을 형성했다.
정부는 부정적인 여론 확산을 잠재우기 위한 방안으로 '친서민 정책'을 정면에 내세웠다. 대기업, 고소득자에 대한 조세감면 제도를 축소하는 대신 중소기업, 서민을 위한 제도를 지속, 확대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친서민 정책과 소비세 강화는 일정 부분에서 상충되는 측면을 갖고 있다.
예컨대 술·담배 과세를 강화하면, 술·담배를 주로 소비하는 계층인 서민의 부담이 커지게 되고, 환경친화적 세제개편으로 탄소세를 도입하면 서민과 밀접한 전기료나 유류세 부담이 커질 수 있기 때문. 성형수술 비용 등에 대한 부가가치세 과세도 보는 시각에 따라 친서민 정책과 상충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정치논리나 이해관계도 소비세 과세대상을 확대하지 못하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더구나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선거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세금강화'는 정부나 국회 입장에서 말도 꺼내기 어려운 사안이다.
□ 전문가들 "술·담배 과세강화는 바람직"= 친서민 정책 및 정치논리 등에 밀려 소비세 강화는 당장 현실화될 가능성이 적어 보인다. 정부는 올해 성형수술 비용 등에 대한 부가가치세 과세를 재추진하겠다고 했지만, 사실상 '국회'의 뜻에 달려있기 때문에 장담할 수 없다.
또 술·담배 과세 강화에 대한 내용이 언론을 통해 심심찮게 제시되고 있지만, 정부는 공식적으로 "검토한 바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술·담배 과세 강화는 술·담배에 따른 사회적 비용 등을 고려할 때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한국조세연구원 김승래 연구위원은 술·담배 과세강화와 관련 "국민건강을 위해 소비를 억제하고, 외국보다 세율이 낮다면 올리는 게 바람직하다"며 "다만, 술은 서민들의 애환 등을 이유로 과세를 강화하는 게 단순하지 않다"고 말했다.
곽태원 서강대 교수도 "술·담배에 대한 세금 인상보다 술·담배 소비에 따라 발생하는 외부비용이 훨씬 크다"며 "예컨대 술·담배로 건강보험금이 인상하거나 약을 복용하는 등의 부작용에 따른 비용이 더 클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국가 간 조세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측면에서 소비세 강화는 어쩔 수 없는 시대적 흐름으로 대두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도 있었다.
지난해 한국재정학회는 '감세정책과 부가가치세제 운용방향'이라는 연구용역 보고서를 통해 "부가가치세 과세기반 확대 등 소비과세 강화와 관련된 세제개편을 조세시스템의 효율성 제고 측면에서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