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할 이유 없다…위험한 외국계엔 관용" 항변
금융위기 이후 모처럼 높은 인기를 끄는 주가연계증권(ELS) 의 시세조종 문제가 불거져 증권가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주가를 조작해 ELS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끼친 혐의로 검찰이 증권사 2곳을 기소할 방침이라는 언론 보도가 나가자 검찰 수사의 불똥이 증권업계 전체로 확산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증권사들은 ELS의 수익구조를 보면 상환을 앞두고 보유 주식을 대거 팔면서 가격이 폭락할 수밖에 없는데도 단지 주가 급락을 이유로 사법적 잣대를 들이대 처벌한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항변도 하고 있다.
◇ ELS 수사 파장 예의주시 = 22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는 ELS 종목 주가를 조종한 혐의로 미래에셋증권, 대우증권 등 국내 증권사 2곳과 캐나다왕립은행(RBC), BNP파리바 등 외국계 증권사 2곳의 기소 여부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처벌 방향이 공식 확인되지 않았지만, 과거 사례를 보면 외국 증권사들은 형사처벌을 피할 공산이 커 보인다.
기소 대상으로 거론된 대우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은 "우리는 어떤 내용도 전달받지 못했다"며 애써 태연하게 반응했으나 속으론 긴장하는 낌새가 역력했다. 다른 증권사들도 수사의 파장이 업계 전체로 확산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었다.
A증권사 관계자는 "잠잠해질 만하면 ELS 소송이 나오는데 기존 개인투자자 소송과 검찰 기소는 차원이 다르다. 법원에서 유죄판결이 나면 해당 증권사 외에 다른 증권사들의 과거 ELS가 모두 수사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고 걱정했다.
ELS의 구조를 보면 주가 조작이라는 의혹은 사실무근이라는 반응도 나왔다.
B증권사 관계자는 "ELS를 상환하려면 주식을 팔아야 한다. 장 막판에 시장가로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을 조작으로 의심하는 것같다. 증권사는 조기상환을 막을 이유가 없다. ELS는 수수료를 한 번만 받으면 끝이기 때문이다. 조기상환하고 새로 설정하는 게 낫다"고 반박했다.
◇ 더 위험한 외국계엔 면죄부? = ELS의 시세조작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은 수익결정 방식에 구조적인 모순이 있기 때문이다.
통상 ELS는 기초자산의 주가가 일정 범위에서 움직이면 고수익을 보장하는 식으로 설계된다. 반면 그 범위를 벗어나면 손실을 보게 된다.
문제는 증권사들이 조기상환 또는 만기상환을 위해 기초자산으로 편입된 종목들을 대거 팔아치우면서 생긴다. 매물 부담으로 주가가 급락하면서 순식간에 `대박'이 `쪽박'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고객들은 갑작스러운 매도로 손실이 생겼다며 `시세조종' 의혹을 제기하면 증권사들은 상환을 위해 주식을 팔 수밖에 없다고 해명하지만, 양측간 평행선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법원의 잣대도 일관성이 없어 유사한 분쟁이 이어지는 원인이 된다.
작년 7월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1부는 ELS 투자자 정모씨 등 2명이 대우증권을 상대로 낸 상환금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반면 서울중앙지법 민사32부는 다른 투자자가 대우증권을 상대로 제기한 유사한 소송에서 `이미 만기상환금을 지급받았기 때문에 중도 상환금 반환을 요구할 수 없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국내 증권사들은 외국계 증권사에 관대한 수사 관행도 문제 삼았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투자자에게 더 큰 피해를 주는 쪽은 오히려 외국계 증권사들인데도 수사 대상에서 빠져나가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말 주가연계펀드(ELF) 투자자 59명이 대량 매물로 조기 상환이 무산돼 손실을 봤다며 메릴린치인터내셔널과 로열뱅크오브캐나다(RBC)를 상대로 28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기도 했다.
◇ 'ELS 열기' 식을까 걱정 =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주가가 급락하면서 인기가 뚝 떨어졌던 ELS는 다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1월 ELS 시장 발행 규모는 3조1천532억원으로, 역대 최고치인 2008년 6월의 3조6천728억원 이후 최대 액수다.
2003년 ELS 발행 집계가 시작된 이후 월간 ELS 발행 규모가 3조원을 넘어선 것은 2008년 4월과 같은해 6월, 지난달 등 세 번뿐이다.
따라서 증권업계는 ELS 시장에 3년 만에 봄이 찾아왔는데 검찰의 기소로 온기가 다시 식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동양종금증권 이중호 애널리스트는 "주가는 높고, 채권은 금리가 안 나오고 투자자로서는 딱히 투자할 만한 게 없다. ELS는 주식과 채권 중간 지점에서 수익률과 안정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어 인기를 끌고 있다. 검찰이 기소한다면 ELS의 인기는 금방 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