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은 예고 없이 갑자기 찾아온다. 일본의 대지진도 어느 날 갑자기 발생했고 납치한 비행기가 세계무역센터로 돌진한 9.11사건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1912년 4월 10일 타이타닉호는 2222명의 승객, 승무원을 태우고 영국에서 미국으로의 처녀항해를 떠났다. 페인트도 아직 마르지 않아 주의하라는 경고가 군데군데 붙어 있었다. ‘가라앉지 않는 배’로 불리던 그 배는 최고의 선장이 키를 쥐고 있었으며 당대의 부자와 유력자들이 타고 있었다. 그들은 첫 항해의 특권을 누리고자 치열한 경쟁을 뚫고 승선한 사람들이었다.
출항 나흘 후인 4월 15일 저녁 11시 40분에 빙산과 충돌하여 격벽에 물이 차오르면서 2시간 40분 후에는 완전히 침몰했다. 1517명이 사망하고 말았다.
타이타닉호의 침몰과 인명의 피해에는 여러 가지 원인과 이유가 있었다.
망대에서 빙산을 관찰할 망원경도 없었지만 선장은 전속력으로 항해하도록 명령했다. 빙산을 추적하기 위해 바닷물 온도를 잴 때 쓰는 로프는 너무 짧아 바닷물의 온도를 잴 수가 없었다.
탐욕스런 선주는 경비를 아끼고 선실을 늘리기 위해 구명보트에 승선인원의 3분 1밖에 탈 수 없도록 설계했다. 게다가 구조 신호를 보낼 수 있는 조명탄은 1개 밖에 없었다. 타이타닉호에서 16km 떨어진 곳에 있던 캘리포니아호는 그 한발의 조명탄을 보고 불꽃놀이를 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구조의 손길을 뻗치지 않았다.
이 사고로 최대의 피해를 입은 기업은 보험회사들이다. 타이타닉호에 대한 보험은 대형 보험사 7개와 70여개 군소 보험업자가 컨소시엄을 형성하여 인수했다. 타이타닉호는 가라앉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보험을 인수한 보험업자들은 파산하거나 사업을 접었다.
그런데 이러한 위기를 슬기롭게 피해간 보험사가 있다. 바로 이글스타라는 보험회사이다.
이글스타는 다른 보험사들이 모두 “타이타닉호는 침몰하지 않는 배”라고 목청을 높일 때 회사의 엔지니어를 동원하여 타이타닉호를 정밀하게 점검하도록 했다. 엔지니어들은 배의 격벽에 구조적 결함이 있으며 배의 중심이 너무 높게 잡혀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경영진은 엔지니어들의 의견을 존중해 유일하게 보험가입을 거절했다. 이 회사는 타이타닉호 침몰 후 보험료가 높아짐에 따라 손해보험의 수익성이 개선되어 번창하는 기회를 잡게 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여객선의 설계와 운항 방법이 근본적으로 변했다. 보험사의 위험관리기법도 정교해지고 다양해졌다. 보험사들은 재보험형태를 통해서 위험을 분산하기도 했고 배의 구조 및 안전장치를 세밀하게 따져본 뒤에 보험계약을 인수하게 되었다.
타이타닉호의 침몰은 보험산업의 역사에 큰 교훈을 준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위험을 회피하지 못하는 보험회사가 있다. 미국계 보험회사 AIG는 이런 교훈을 무시하고 고위험 파생상품에 과다하게 투자했다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부실화됐다. 주가는 100분의 1로 폭락했다. 위기 전 1주에 10만원 가량이던 주가가 사탕값 수준으로 떨어졌다. 위험관리를 주업으로 하는 보험회사가 그 지경으로 위험관리를 했다니 실소를 자아내게 할 뿐이다.
위험은 외면하지 말고 적절한 방법으로 관리해야 한다. 오늘부터라도 비탈길에 주차할 때는 핸들을 오른쪽으로 한 바퀴 쯤 돌려놓아 차가 굴러내리더라도 최악의 사고를 피하도록 하자.
해외여행를 가더라도 그 나라말로 출구가 무엇인지 정도는 기억하도록 하자. 그래야 불이 나더라도 대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영미권은 Exit, 프랑스권은 Sortie, 독일어권은 Ausgang, 스페인어권은 Salida이다.
중국 일본은 出口로 알기쉬우니 다행이다.
[약력] 삼성생명 부장, AIG생명 부장, GE캐피탈코리아 이사, 에이스(뉴욕)생명 전무, 조세일보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