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직후 '공인연비'를 '표시연비'로 슬그머니 바꿔
정부가 공인연비와 체감연비간 격차를 해소하고 소비자 권익보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겠다는 자동차 연비관리제도 개선방안이 흐지부지될 조짐을 보이고있다.
지식경제부는 현대·기아차의 미국 연비과장 파문으로 국내 공인연비에 대한 불신이 일자 연말까지 연비관리제도의 시행과정에서 나타난 미비점을 보완하는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같은 방침은 지난해 11월 국회 노회찬 의원실과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가 주최한 '자동차 공인연비제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라는 긴급토론회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지난해 11월 28일 열린 국회 노회찬 의원실과 경실련이 공동주최한 연비제도개선 긴급토론회
그러나 지식경제부가 연말까지 마련하겠다는 자동차 연비제도 개선방안은 공표되지 않았고 우물쩍 한해를 넘겼다.
지식경제부가 소비자 권익을 보호할 연비관리제도 개선에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자 그동안 개별소비세 인하 등 자동차 업계에 혜택을 줘 온 MB(이명박)정부가 현대·기아차에 마지막 선물을 주는 듯한 인상을 주고있다.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새로운 연비표기제도는 MB정부에서 풀지 못한 채 박근혜 정부로 넘길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지식경제부와 에너지관리공단이 그동안 표기해오던 '공인연비'를 대선직후 슬그머니 '표시연비'라는 용어로 바꾼 것으로 드러나 정부의 의도에 대해 궁금증을 낳고 있다.
이는 지식경제부가 지난11월 자동차 연비관리제도를 연말까지 대폭 손질하겠다고 호들갑을 떨던 것과는 사무 대조적이다. 이번에 연비표기 용어를 바꾼 것과 관련해 보도자료 한차례 내지 않았고 홈페이지에도 안내 공고마저 없었다.
◆…에너지관리공단의 바꿔진 연비표기. 출처 : 에너지관리공단 홈페이지
■ 기업 투명경영 높일 수 있도록 집단소송제 도입해야
지식경제부와 에너지관리공단이 대통령 선거 직후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를 틈 타 공인연비를 표시연비로 바꾸고 연비제도개선을 은근슬쩍 마무리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새로 도입된 용어인 표시연비는 지난 11월 국회에서 열린 연비제도개선 긴급토론회에서 "공인연비라는 용어가 정부가 공인한 연비라는 인식을 주기 때문에 그러한 오해를 주지않도록 표시연비나 참고연비와 같은 용어로 바꿔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자동차전문기자의 질문에서 나온 아이디어에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토론회에 참석한 지식경제부 에너지절약협력과 나성화 과장은 답변에서 "자동차 제작사가 자체측정한 자가인증제를 도입한지 얼마되지 않았다"면서 "공인연비를 표시연비나 참고연비로 바꾸는 것은 한번 검토해 보겠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불과 한달 만에 소비자나 국회 등에 적극 알리지도 않고 에너지관리공단의 홈페이지에 공인연비에서 생소한 표시연비로 바뀌어 올려져 있어 지식경제부의 의도에 대해 온갖 추측을 낳고 있다.
공인연비라는 용어 대신에 표시연비가 쓰여지면서 △자동차 제작사가 마음대로 연비를 표시할 수 있는지 △표시연비와 실제연비가 차이가 날 경우 제재조치를 취할수 있는지 △소비자들의 피해에 대해서는 보상책임을 어떻게 물을 것인지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표시연비는 자동차 제작사가 자체 측정한 연비를 에너지관리공단에 신고하면 표기되는 시스템으로 되어 있다. 지식경제부측은 토론회 등을 통해 “연비 관리제도의 개선방향은 자동차 제작사의 자체측정을 인정하는 기본 골격은 유지토록 하겠다”는 의지를 확고하게 밝히고 있다.
그러나 표시연비가 실제연비가 차이가 날 경우 어떠한 제제조치를 취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현대·기아차는 미국 환경보호청에 신고한 복합연비와 실제 주행거리간 3% 이상의 오차가 발생해 미국 소비자들에게 매년 1천억원의 배상을 해주기로 약속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식경제부는 국내에서 소비자의 권리를 보호할 계획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현대·기아차의 연비표기가 잘못됐을 경우 미국의 소비자는 정당한 보호를 받고 있지만 국내 소비자는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한고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을 지식경제부가 알고도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있다.
MB정부의 자동차 업계에 대한 지나친 배려도 국민들의 눈총을 사고 있다. MB정부는 2008년이후 해마다 1~3차례씩 자동차 내수진작을 위한 지원책을 펴왔다.
2008년의 경우 개별소비세 인하 등 3차례의 지원책을 내놓았으며 2009년엔 노후차량교체 지원 등 3차례,2010년은 다자녀가구 차량루입시 취득세 면제 등 2차례, 2011년은 경차유류세 환급제도 일몰제 2년 연장 등 연례행사처럼 지원책을 내놓았다. 2012년에는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로 인한 특혜를 준데 이어 연비관리제도의 개선도 유명무실화시킨 셈이다.
학계와 시민단체들은 이제는 국내 소비자들도 잘못된 연비표기가 발생할 경우 자동차 제작사로부터 제대로 된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강경희 운영위원은 “우리나라 현행 자동차 연비제도는 업계에 자율성을 높이 부여하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정에 대한 제재수위는 너무 낮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막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강 운영위원은 “자동차 제작사가 신고한 연비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을 경우 응분의 대가를 치르도록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며 “소액 피해자의 권리구제 및 기업의 투명경영을 담보할 수 있는 집단소송제를 자동차 제조와 판매 영역에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