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 출범을 코앞에 두고 '인사(人事)'의 중요성이 새삼 강조되고 있기 때문인지, 국세청 개혁에 필요한 과제들을 찾아보기 위한 취재과정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은 '인사개혁'에 대한 언급을 많이 했다.
정부 부처를 포함한 모든 조직에서 '일은 사람이 하고, 업무의 성패도 사람에 달렸다'는 의미에서 '인사(人事)는 만사(萬事)다'라는 말을 많이 한다. 이는 사람의 능력과 재주를 잘 판단해 적재적소에 효율적으로 배치하면, 나머지의 일들은 자동적으로 굴러간다는 뜻이다.
그만큼 인사행정은 개인의 능력·업무실적·자질·성과에 따라 민주적으로 운영돼 능률성뿐만 아니라 사기진작을 동시에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며, 인사권자의 인맥·학맥·인연에 이끌린 '정실인사(情實人事)'가 되어선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 '권리(權利)'만 강조된 인사…'의무(義務)'는 어디로? = 국세청 조직이 고위직은 적고 하위직은 많은 '압정형' 조직체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만성적인 인사적체 현상을 겪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지난해 9월28일 현재 총 2만12명의 국세청 조직원 가운데 기능직 등을 제외한 실질적인 승진 또는 전보대상 인원은 1만8805명에 달하지만, 중간간부인 4급을 고위직으로 봐도 전체 국세청 조직원의 1.9%에 불과한 357명에 불과하다.
특히 고위직 진출의 '발판'이나 다름없는 초급 관리자인 5급(사무관, 1084명)으로 올라서는 것도 힘든데다, 여기서 30여명에 불과한 고위공무원까지 오르려면 말 그대로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에 비유될 만큼 힘겹다.
'승진'을 최고의 보상으로 여기는 공무원들의 특성상, 국세청의 좁디좁은 승진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이 때문에 인사결과에 대해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투명한 인사기준 제시 등 민주적 절차를 통해 대다수가 공감하는 인사가 이뤄질 필요성이 더욱 강조되는 곳이 국세청이다.
이와 관련 국세청의 전직 고위관료는 "승진을 향해 경쟁이 치열한 구조는 잘못 운용되면 '권력암투'로 이어질 수 있지만, 잘 활용하면 국세청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분명한 장점이 된다"고 강조한다.
한 자리를 두고 저마다 최고라고 외치는 여러 사람들이 경쟁하는 상황이라면 인사권자가 실적뿐만 아니라 잠재력과 리더십까지 고려해 '최고 가운데 최고'를 선별해 그 자리에 앉히면 되고, 그 결과가 곧 최고의 성과로 이어지게 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그는 "최고 가운데 최고를 뽑은 결과에 대해선 경쟁관계에 있던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러기 위해선 인사권자의 사심(私心)이 개입된 결과가 아님이 투명한 절차에 의해 입증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국세청 전직 고위관료는 "국세청장이 된 사람은 자신이 국세청 '인사권자(人事權者)'라고 인사와 관련한 '권한(權限)'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며 "앞서 인사잡음이 원인이 돼서 불미스러운 일을 겪었던 국세청장들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지적했다.
국세청장 임명의 의미는 국세청을 소유할 권한까지 준다는 것이 아니라 "국세청을 잠시 맡겨줄 테니 보다 발전시켜라"고 하는 막중한 의무(義務)를 부여한 것이고, 인재를 합리적으로 선발해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은 의무이행 측면이 강하다는 것.
역대 일부 국세청장들은 엄청난 권위를 내세움과 동시에 인사에 대한 권한(權限)만 강조해 조직보다는 자신에 대한 기여를 잣대로 사람을 세우는 전횡을 일삼았고, 국세청을 사조직으로 착각한 이들은 하나같이 비참한 결말을 맺게 됐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국세청 안팎에선 "국세청의 불행한 역사를 반복시키지 않으려면 국세청장에 임명된 사람들이 국세청 인사는 권한이 아닌 의무라는 철학을 가져야 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국세청이 재정역군이라는 위상을 안팎에서 세울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 요직은 '겹경사', 한직은 '한숨'…사기 진작 묘안은? = 국세청뿐만 아니라 어느 조직이든 그 조직에 속한 사람들은 "조직체계에서 모든 자리가 조직유지에 필요한 곳이지만 어느 자리가 요직이고, 어느 자리가 비교적 한직에 속한다"다는 것쯤은 파악하기 마련이다.
요직으로 통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요직에서 근무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동기부여가 이뤄지는 만큼 그에 따른 승진인사가 이뤄져야 하고, 누구도 근무를 원치 않지만 조직의 필요에 따라 불가피하게 한직에 임명된 사람 또한 적절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
이와 관련 국세청의 한 전직 고위관료는 "국세청에서 조사·인사·감사 등 '3사'로 통하는 곳은 요직에 속하는데, 지금까지 국세청 인사관행에서 볼 때 '3사'는 승진으로 이어지는 자리로 통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업무 특성상 막강한 권한까지 행사할 수 있는 요직에서 일한다는 것 자체로도 동기부여 성격이 큰데, 이 사람들에게 보다 많은 승진기회가 주어지다 보니 한직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국세청 안팎에서는 "뚜렷한 문제를 야기한 사람이 아니라면 국세청 조직 어느 곳에 근무하더라도 동등한 수준의 동기부여가 이뤄져야 직원 사기를 높일 수 있다"며 "이를 통해 조직성과도 극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 수수께끼 인사 '스톱'…"예측가능성 확보하라" = 국세청 인사가 있을 때마다 매번 반복되고 있는 특징 중의 하나는 대부분의 경우는 예상했던 대로 인사가 이뤄지지만, 그 중에 간혹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인사결과가 발표되곤 한다는 것.
이 때문에 국세청 안팎에선 몇 단계를 건너뛰듯 발탁된 인사와 관련해선 "저 사람은 정권실세인 누가 적극 밀어주는 모양이다"라거나, 비교적 한직으로 밀려난 사람에겐 "저 사람은 누구에게 밉보여 좌천된 것 아니냐"는 등의 분분한 해석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수수께끼와 같은 인사의 이유에 대해선 후일 '지역안배 차원'이라던가 '비고시 출신 배려'라는 등 이런저런 설명이 붙기도 하지만, 상당한 경우는 아직도 국세청장 측근은 물론 인사대상이 됐던 당사자도 영문을 모른 채 두꺼운 베일에 가려져 있는 상태다.
이와 관련 전직 국세청 고위관료 출신들은 "인사는 조직에 적당한 긴장을 시키면서도 사기 진작을 통한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이뤄져야 한다"며 "인사권자가 이번 인사를 왜 이렇게 했는지 한번 알아보라는 식으로 인사를 하면 폐단이 더 크다"고 경고한다.
승진 등 인사기준이 뭔지를 미리 분명하게 밝혀야 조직이 목적한 방향대로 움직여질 수 있는데, 수수께끼처럼 궁금증을 남겨놓으면 쓸데없는 관심유발로 불필요한 오해만 양산시킬 뿐 건전한 조직문화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이들은 "5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지고 있는 국세청에서 인사가 예측이 가능한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지 않고, 벼락출세의 대명사인 신데렐라 또는 콩쥐를 연상시키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며 "좌천성 인사의 경우는 더더욱 수수께끼가 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보직경로나 승진경로를 시스템화해서 그 길을 순차적으로 걸어오며 능력을 입증한 사람위주로 발탁인사를 하는 등 구성원 대다수가 이해하며 공감하는 인사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세무서장급 이상 인사의 경우 지방세무서장으로 시작해 경험을 갖출수록 점차 본청에 가깝도록 하고, 고위공무원의 경우도 지방청 국장에서 시작해 점차 본청으로 오도록 한 뒤 본청 국장 출신 가운데 다시 지방청장에 임명하는 루트를 밟는 등 예측 가능해야 한다는 것.
고위공무원은 어느 자리이든 앉힐 수 있다는 것이 고위공무원법에 명시돼 있더라도, 국세청 역사가 역사인 만큼 깜짝 인사는 가급적 배제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역대 인사잡음도 지방국세청장에서 지방청 국장으로 납득이 안될 수준의 깜짝 임명하는 등에서 비롯된 만큼 '물의' 등 문제를 야기하지 않는 이상 보직경로를 따라 이뤄져야 하며, 또 그래야만 외부 '인사청탁(人事請託)'에 의존하는 근원적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사권자가 인사대상자조차 의도를 모를 정도로 인사를 한다면 "인사권자의 의중이 뭐냐"는 식의 반응을 얻어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는 반사이익은 챙길 수 있더라도,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이 대다수 견해다.
하편으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