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편에서 이어집니다.
□ 행정고시-비고시출신 '불균형'…치유는 현재진행형 = 현재 국세청이 고위직 인사와 관련해 안고 있는 가장 큰 고민은 고위공무원 자리는 34개 직위로 정해져 있는데(외부파견 등 제외), 앞으로 이를 채울 '인재풀'이 구조적으로 빈약하다는 것.
국세청의 주축을 이루는 행정고시 27회 출신 간부인 박윤준 국세청 차장과 ▲김덕중 중부지방국세청장 ▲김은호 부산지방국세청장 ▲송광조 감사관 ▲이전환 개인납세국장 ▲이종호 법인납세국장 ▲제갈경배 국세공무원교육원장 등 7명에 이은 후배들의 층이 얇다.
행시 28회 출신 간부는 김연근 징세법무국장과 임환수 조사국장 등 2명이고, 29회 출신이 나동균 기획조정관 1명 그리고 30회도 송성권 소득지원국장이 전부다.
그 뒤를 잇는 31회 출신에 신세균 대구지방국세청장과 심달훈 중부지방국세청 조사3국장 그리고 미국에 파견돼 있는 서진욱 국장 등 3명이 있지만, 신세균 대구청장은 명예퇴직 시점이 내년으로 다가오는 1956년 생이다.
32회 출신도 외부 교육파견이 예정된 최진구 국장 1명이며, 33회 2명(한승희 국제조세관리관, 최현민 서울청 조사3국장) 그리고 34회도 2명(서대원 서울청 징세법무국장, 신동렬 미국국세청 파견국장)이다.
국세청 차장과 중부·부산지방국세청장 등 1급 고위직까지 오른 27회 출신 간부 7명을 제외하면, 앞으로 여러 해 동안 국세청을 이끌어갈 행시출신 국장은 28회부터 34회까지 7기수에 걸쳐 11명인 실정이다.
행시출신 인재풀의 숫자부족에도 불구하고 99%가 넘는 국세청 직원들이 행시출신이 아닌 비고시 출신인 것을 감안, 비고시 출신에서 부족한 인재풀을 보충할 수 있으면 고민해결은 간단하다.
오히려 납세자들과의 접촉이 필수인 국세청 업무특성을 감안할 때 말단에서 공직을 시작해 풍부한 밑바닥 행정경험이 있는 비고시 출신들이 가진 장점은 행시출신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행시출신뿐만 아니라 비고시 출신 인재풀도 충분하지 않다는 것.
왜 이런 문제가 생겨났을까.
국세청의 전직 고위관료는 이에 대해 "국세청 조직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려면 매년 10명 안팎의 행시출신 자원을 확보해야 한다"며 "20여년 전 행시출신을 멀리했던 국세청장의 취향으로 인해 오늘의 사태가 벌어졌다"고 분석했다.
국세청 업무특성을 감안해 밑바닥 행정경험을 중시했던 한 국세청장은 행시출신보다 비고시 출신을 중시했고, 그 결과 한동안 행시출신 자원영입을 소홀히 한 것이 현재의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
또 다른 전직 국세청 간부는 "국세청 업무는 행시출신들이 가진 기획력과 밑바닥부터 납세자들과 접촉하며 쌓은 행정경험이 풍부한 비고시 출신들이 힘을 모아 추진할 때 효율이 극대화 될 수 있다"고 했다.
많은 국세청장들이 이를 위해 자리별 특성에 따라 행시출신과 비고시 출신 자원을 적절히 조화시켜 운용하면서 효율화를 꾀했고, 이는 말단에서 공직을 시작한 절대다수 직원들의 사기진작에도 크게 기여했다는 것.
하지만 여기에서도 문제가 생겼다. 행시출신 자원들의 기수별 분포를 면밀히 살펴보면 머지 않아 국세청 운영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고, 이를 보완하려면 비고시 출신들을 그 위치에 오르도록 미리 충분히 키워놔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국세청 업무특성을 속속들이 알지 못한데다 국세청 초급간부들의 면면은 더더욱 알 수 없었던 국세청 외부출신의 某청장이 잘 알지 못하는 비고시 출신들 대신 조금은 안면이 있는 행시출신 후배들을 중용하며, 문제를 치유할 기회를 놓쳤다는 것.
고위공무원으로 오르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할 과장급인 4급(서기관) 간부들을 행시출신 위주로 운용했고, 비고시 출신의 경우는 초급 간부인 5급 승진부터 늦추다보니 4급으로 승진을 해봐야 정년을 앞둔 경우가 많아 고위직으로 오르기 힘들었다.
당시 비고시 출신들에 대해 먼 훗날을 내다 본 제대로 된 인사를 했더라면 지금쯤 과장급 가운데 비고시 출신들 비중은 지금보다 상당히 높아져 있을 것이고, 빈약한 행시출신 자원을 보완할 비고시 출신들의 부족현상은 겪지 않아도 됐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국세청 주변에선 "앞서의 예는 어떤 인사방침이 수십년이 지난 뒤에도 그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며 "그 인사방침이 국세청 조직의 먼 훗날까지 내다보지 않고 잘못 세워진 것이라면 그 폐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크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국세청 안팎에선 "국세청이 현재 말단 직원출신 가운데 잠재능력이 있는 사람중심으로 '꿈나무'를 육성하는 등 발바닥에 땀나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과거 잘못된 인사를 치유하는데는 앞으로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세청장을 한번 잘못 앉혀 놓으면, 그의 실수를 후배들이 치유하며 정상적인 궤도에 올려놓는데 수십년 동안 엄청난 부담이 따른다는 설명이다.
지금 세상은 새정부 출범을 앞두고 천문학적인 정부재정이 필요한 박근혜 당선인의 복지공약이 제대로 이행될 수 있는지 여부를 놓고 시끄럽다. 그만큼 숨은세원 양성화를 비롯해 정부재정을 조달해야 하는 국세청 어깨가 무거워졌다는 얘기다.
국세청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조직안정이 필수다.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비고시 출신 간부들의 면면까지 속속 헤아려 장차 국세청을 이끌어갈 인재를 과감하게 발탁할 수 있어야, 빈약한 행시출신 인재풀의 한계를 극복하고 조직안정도 꾀할 수 있다.
□ 비고시 출신 고위직 진출 걸림돌 '명예퇴직제' = 7∼9급인 말단에서 출발하는 비고시 출신들은 5급(사무관)부터 출발하는 행시출신들에 비해 출발점이 한참 뒤쳐져 있기 때문에 고위직 진출이 상대적으로 힘든 측면도 있다.
근본적으로 현행 국가공무원법상 규정된 최소 승진연한 등 법적 문제가 있기 때문에, 7급에서 출발하더라도 치열한 경쟁 속에 초급 간부인 5급까지 오르려면 십 수년이 걸리는 것이 현실. 여기에 승진연한을 채워 4급까지 올라봐야 정년퇴임이 코앞이다.
하위직이 특히 많고 간부가 적은 국세청은 그렇지 않아도 극심한 인사정체로 승진이 어려운데, 과거 국세청을 잘 모르는 외부출신 청장이 행정고시 출신 위주로 국세청을 운영하다보니 5급으로 오르는 시기가 더 늦어진 결과다.
이에 따라 행시-비고시출신 간부의 균형을 위해서라도 국세청이 운영하고 있는 '4급 이상 간부의 2년 조기 명예퇴직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2년 조기 명예퇴직제는 국세청의 고질병인 '승진적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4급(세무서장급) 이상 간부를 대상으로 국가공무원법이 정해 놓은 정년(60세) 보다 2년을 앞당겨 퇴직시키는 제도다.
광범위한 하부조직을 구성하는 조직원들의 승진길을 조금이라도 넓혀 승진적체를 해소하는 데 순기능적 역할을 하는 측면도 있지만, 비고시 출신들의 고위직 진출을 막고 있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30년 이상을 국세청에 근무하며 능력과 경륜을 인정받는 대다수 비고시 출신들이 더딘 승진을 반복하다, 고위직 진출 타이밍이 되더라도 2년 조기 명예퇴직제에 걸려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조직을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올해의 경우 1955년 출생자들이 명예퇴직 대상이며, 내년에는 1956년 출생자들이 대상이다. 이들은 '베이비 붐(Baby Boom)' 세대의 선두에 속한 이들로 올해와 내년, 그리고 내후년(1957년 출생자)까지 3년에 걸쳐 200명에 육박하는 간부들의 무더기 퇴직이 예정되어 있다.
이들이 모두 고위직에 진출할 능력과 경륜을 동등하게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없지만 2년 조기 명예퇴직제 적용으로 유용한 인재풀이 고위직 진출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조직의 논리'에 밀려 소진되는 것은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다.
이에 따라 폐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최근 정년연장 등 사회적 분위기에 맞춰 기준(2년)을 축소(1년) 하는 등 전향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지금 당장 2년 조기 명예퇴직제도를 재조정한다면 하부조직의 반발이 거셀 것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길게 보면 현재 하위직들도 언젠가는 덕을 보게 된다"며 "2년 조기 명예퇴직제도에 대한 재조정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국세청 고위공무원급 가운데 일정비율을 비고시 출신으로 채우도록 자체적인 가이드 라인을 만들어 인사에 꾸준히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고위공무원의 일정비율을 비고시 출신으로 채우도록 하면 조기 명예퇴직제를 현행대로 유지하더라도 사무관 및 서기관 승진인사를 할 때 상대적으로 빨리 비고시 출신 인재들이 발탁, 이를 통해 이들이 고위직으로 진출할 시간적 여유를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