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국세청법' 제정, 국세청 개혁 '첫 단추' 될 수 있다

국세청이 국가운영에 생명줄과도 같이 꼭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는 본연의 소임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으면서도 늘 개혁대상에 그 이름을 올릴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끊임없이 불거지는 정치적 중립문제와 청렴성 문제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세청은 세금징수권과 세무조사권이라는, 법이 부여한 막강한 강제수단을 동원해 국민들이 가진 재산의 일부를 '세금'이라는 명분으로 국가에 귀속시켜야 하는 기관인 것을 감안하면, 그 속성 자체로 봐서도 국민들로부터 환영받기는 힘든 존재다.

가진 기본 특성을 십분 감안하더라도 국세청이 정치에 휘둘려 법이 부여한 막강한 공권력을 동원하는 듯한 인상을 만들어내면서, 크고 작은 스캔들의 중심에서 언제나 개혁대상에 오르는 운명에 처하게 됐다는 것이 국세청 주변의 객관적 평가.

여기에 지위고하 없이 국세청 직원들의 비리문제가 잊을만하면 한 번씩 불거지면서 국세청이 끊임없이 벌이고 있는 내부정화 움직임에도 불구, 그 내막을 소상히 알지 못하는 정권교체 세력이나 국민들에게 일종의 '선입견'을 제공했다는 평가다.

국세청 주변 전문가들은 "국세청이 해야 할 일은 제대로 하면서도 이에 대한 적절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늘 개혁대상에 오르는 불행한 역사가 이젠 되풀이돼선 안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국세청 직원들의 비리문제는 개인적인 문제인 만큼 자체정화 노력과 함께 사법부의 심판에 맡기되, 정치적 목적에 의한 권력남용의 문제가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선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이에 따라 국세청의 권력 남용 소지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법적 장치를 도입해 국세청의 권한과 책임을 확실히 규제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이를 위해 과거 도입이 추진되다가 좌절된 '국세청법 도입'에 대한 관심이 새삼 끓어오르고 있다.

□ 국세청법 제정, '좌절'의 역사 = 국세청은 국정원과 검찰, 경찰 등과 함께 권력기관으로 분류되지만, 다른 3개 기관과 분명한 차이가 있다. 국정원법, 검찰청법, 경찰청법 등 개별조직법이 있지만 국세청은 개별조직법을 가지고 있지 않다.

검찰청법과 경찰청법 등의 도입 배경은 이들 기관이 권력을 지닌 만큼 기관의 정치적 중립성과 전문성, 책임성을 높이기 위한 차원이었다. 

이들 기관 못지 않게 정치적 중립과 전문성, 책임성이 요구되는 국세청은 그렇지가 못하다.

과거 국세청법 제정 문제가 거론되기도 했지만, 모두 좌절됐다. 국세청법 제정이 처음 부각된 시점은 지난 1999년. 제2의 개청을 명분으로 광범위한 조직개편을 추진했던 안정남 당시 국세청장의 주도로 '국세공무원법' 타이틀을 달고 추진됐었다.

당시 국세공무원법 핵심 내용은 ▲특정직(국세행정직) 전환 ▲국세행정고시(5급) 신설 ▲국세행정수당 신설(세수증대포상금 지급) ▲계급정년제(5급 15년, 4급 13년, 3급 5년, 2급 4년) 도입 ▲비리행위 적발시 처벌 강화 등이었다.

하지만 법 제정은 행정자치부 등 타 부처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깊은 수면 아래로 내려가 있던 국세청법 제정 문제는 2006년 전군표 당시 국세청장이 인사청문회에서 한 차례 언급하며 다시 주목을 받았고 이듬해인 2007년 엄호성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국세청법 입법을 강하게 추진하고 나섰다.

당시 국세청법 입법안은 기본적 틀은 1999년 국세공무원법과 유사했다. 다만 여기에 2가지가 더 추가됐다. 바로 '국세청장 임기제' 도입이다. 검찰총장과 경찰청장처럼 일정한 임기를 설정,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할 필요성이 있다는 측면에서 접근한 것이다.

아울러 국세청장 '내부승진제'도 법에 명시됐었다. 결과는 '빈손'. 국세청법 입법안은 추진과정에서의 요란함이 무색할 정도로 별다른 논의 없이 17대 국회 임기종료와 함께 사장되고 말았다.

□ 국세청법 도입의 최대 명분…'정치 중립성 확보' = 지난 1999년 국세청법 논의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초대형 스캔들로 세간을 뒤흔들었던 '세풍(稅風)' 사건이었다. 엄청난 풍파를 일으켰던 이 사건의 본질은 정치와 연결된, 부적절한 권력 남용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국세청이 정치에 휘둘리지 않도록 중립성을 보장하고, 크고 작은 스캔들의 발화점인 권력 남용의 소지를 근본적으로 끊어내고 견제할 수 있는 강제성 짙은 법적 장치 마련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검찰, 경찰과 마찬가지로 정해진 법(세법)을 집행하는 기관인 국세청은 정치에 휘둘리지 않고 법과 원칙에 따라 주어진 임무(세입징수 등)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1966년 개청 이래, 국세청은 수 많은 정치적 사건들에 휩쓸려 왔다. 최고 권력자의 뜻에 따라 국세청장을 비롯한 수뇌진이 구성되고, 권력자의 보이지 않는 손이 국세청을 쥐고 흔들면서 법 집행기관으로서 가장 중요한 정치 중립을 무너뜨리게끔 만들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국세청의 권력 남용에 대한 오해는, 국세청 조직 스스로가 키운 측면보다는 최고 권력자들의 비정상적 국세청 활용법에 의해 파생된 측면이 크다는 것이다.

지난 2007년 국세청법 제정 논의 과정에서 국세청의 정치 중립 확보를 위해 '국세청장 임기제'가 핵심으로 부각된 이유도 이와 맥이 닿아 있다.

최고 권력자의 입맛에 따라 기관장을 갈아치우는, 한국만의 특수한 공직 인사풍토에서 권력기관장들의 임기를 법적으로 보장하지 않을 경우 해당 권력기관장들이 '자리유지'를 위해 모럴 헤저드를 감행하고, 중대형 권력형 스캔들로 번져 사회 전반을 뒤흔드는 현상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일이 여전한 숙제로 남아있지만, 이명박 정부 초대 국세청장으로 재임했던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연루된 '한상률 게이트'의 전말만 봐도 임기제와 같은 정치 중립 유지를 보장해 주는 강제적 장치 마련에 대한 필요성은 크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 국세청법 제정, "반드시 필요하다" = 국세청의 정치 중립 확보를 위한 '잠금장치'로 국세청법 제정 필요성은 현재 학계를 중심으로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미국이 막대한 권한을 쥐고 있는 IRS(미국 국세청)에 대해 '특별법' 형태로 통제를 하고 있는 이유도 정치적 중립 훼손으로 인한 폐단을 막기 위한 것이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 각료들이 IRS 행정에 간섭할 수 없다는 조항이 명문화되어 있다. 학계를 중심으로 정립된 국세청법 제정의 핵심은 정치권력으로부터 국세청을 독립시키고, 국세청의 권한과 의무를 명확화 하자는 것이다.

이는 국세청에 '특권'을 주자는 것이 아닌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법이 정해 놓은 '틀' 안에서 주어진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주자는 차원이다.

1999년, 그리고 2007년 국세공무원법과 국세청법이 수면 위에 떠올랐다가 무산된 것은 그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국세공무원 '급여' 인상 부분 등이 사실상 국세청 조직원들에 대한 특혜로 비춰지면서 사회적 합의, 특히 공직사회의 합의를 이끌어 내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가장 시급한 사안인 국세청의 직무범위와 정치적 중립의무 정도만을 추려내 별도 법이 아닌 현행 국세기본법 등에 명문화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서울시립대 박훈 교수는 이와 관련해 "국가의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인 조세분야를 담당하는 국세청에 대한 견제와 지원을 체계적으로 정립할 필요가 있다"며 "국세청법 제정의 방향은 국세청의 독립성 확보, 권한과 의무의 명확화로 설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세청장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는 장치로 부각되는 '임기제' 도입에 대해서는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구체적으로 임기만 보장하는 것이 아닌, 국세청장이 독단적 기관운영을 하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장치를 두는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희대 이준규 교수는 "국세청장의 정치 중립 보장을 위해 임기제를 도입하는 것은 찬성하지만, 임기(2007년 국세청법 추진 당시 '2년')와 효과적 견제장치 설정, 정치 중립적 인사를 선임하기 위한 '국세청장추천위원회'를 통한 인선 결정 등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훈 교수도 이에 대해 "임기제가 도입된다 해서 임기가 항상 보장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임기 보장이 된다는 측면에서 임기제의 의미는 크다"며 "또한 임기를 보장받은 국세청장이 독단적으로 기관운영을 할 수 없도록 견제장치를 함께 두는 것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