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합의 원활했는데…대통령의 '싸인'에 논의 후퇴 우려도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과 관련 "상임위원회 차원이기는 하겠지만 공약내용이 아닌 것도 포함돼 있다"면서 우려를 나타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여야 간에 주고받는 과정에서 그렇게 된 것 같은데, 무리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또 "기업이 미래성장동력 발굴을 위해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규제를 네거티브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면서 "이것이 경제민주화와 상충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국회 정무위 법안심사소위에서는 지난 주부터 여야의 공통 대선공약이었던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들을 심사하고 있다.
지난 9일에는 연봉 5억원 이상을 받는 대기업 총수와 상장사 임원의 개별 급여를 공개하는 내용의 자본시장 및 금융투자업법과 하도급거래 공정화 법안 등을 통과시켰다.
공정한 하도급 거래와 관련해선 부당한 단가 인하와 부당한 발주 취소, 부당한 반품 행위에 대해 피해금액의 3배 이내의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부과토록 했다.
소상공인의 피해가 큰 분야를 다루는 프랜차이즈법안(가맹사업거래 공정화 법률)도 4월 내 국회 통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돼왔다.
대기업의 일감몰아주기 규제 강화를 담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여야 이견으로 처리되지 못했으나 오는 17일 논의를 이어가기로 한 상황이다.
여야는 6인 협의체를 가동하고 대선 공통 공약을 우선 처리키로 합의한 지도부의 결정에 힘입어 경제민주화 법안 처리에 속도를 내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재계에서 연봉 공개 법안과 징벌적 손해배상 규정 등이 기업 활동을 위축시킨다는 지적이 나오자 박 대통령이 직접 진화에 나선 모양새다.
전경련은 지난 주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울 수 없다"면서 "미국 교수들은 한국 경제의 취약점으로 기업규제 강화 및 경쟁제한 정책을 꼽았다"고 국회의 경제민주화 법안 논의를 비판한 바 있다.
전경련은 "관련 법 개정시 공정위의 재량권이 지나치게 확대되고, 기업은 막대한 규제순응 비용을 부담하게 된다"면서 "징벌 배상의 확대는 과도한 중복제재이며 소송의 증가로 인한 사회비용 증가와 기업활동 위축이 우려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날 한국경제학회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 세미나에서 교수들도 "현재의 경제민주화가 과도한 규제를 포함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경제민주화는 경기침체를 가속화하고 생산성과 일자리·세수 등을 감소시키는 악순환을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이러한 지적을 의식한 듯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에 공약내용이 아닌 것도 포함돼 있다"면서 "기업 규제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고 강조해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 논의 기조에 변화를 불러올지 주목된다.
국회 정무위의 민주통합당 관계자는 "정무위에서는 일감몰아주기 근절 등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박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으로 그동안 여야간에 원활히 진행됐던 논의가 후퇴하게될지 우려된다"고 전했다.
홍헌호 시민경제연구소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중 시민사회계에서 기대를 걸었던 것이 경제민주화 분야였는데 아쉽다"면서 "대통령의 발언으로 재계의 불만 제기에 물꼬를 터주고, 경제민주화 공약이 전반적으로 후퇴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새누리당 지도부 간에도 대기업 관련 정책을 두고 이견을 보인 바 있다.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이한구 원내대표는 북한 도발과 세계경제불황을 들어 "대기업이 문제가 큰 것처럼 해서 기업의욕을 꺾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이혜훈 최고위원은 "공정위가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관행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며 불공정 행위의 단호한 처벌을 주문하면서 경제민주화와 관련한 입장 차이를 드러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