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30일 오전 11시 이라크 총리공관엔 알 말리키 이라크총리, 알 아라지 국가투자위원회 의장 등 이라크 고위관료들이 공관에 도착한 한화그룹 김승연회장과 한화건설 김현중 부회장을 반갑게 맞았다.
네 사람은 가벼운 환담후 행사장으로 자리를 옮겨 세계 건설역사를 새로 쓰는 이라크 신도시건설 계약서에 서명했고 이라크 현지 방송들은 이례적으로 이 건설계약식을 전국에 생중계해 이라크 국민들의 높은 관심을 대변했다.
한화건설은 이라크 바그다드 근교 비스마야에 10만세대의 주택과 도로, 상하수로 등을 건설하고 있다. 전체면적 1830ha(550만평)에 이르는 분당급 신도시로 7년여에 걸쳐 완성될 예정이다.
사업비 9조원이 넘는 이 프로젝트는 단일 공사로는 국내 최대 수주규모이며 한 건설사가 10만 세대를 건설하는 것은 세계 건설역사에도 처음 있는 일이다.
전쟁 포화속 20 여차례 방문, 1년의 반을 머물며 얻어낸 신뢰
2010년 김승연 회장과 한화건설 직원들이 이라크를 처음 방문했을 때 일행은 장갑차를 앞세우고 방탄복을 입고 1km의 방공터널을 통과해야만 이동이 가능할 정도로 이라크 상황은 위험했다.
하지만 한화건설은 그 곳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았다. 한달 후 이라크 국가투자위원회는 전후복구 사업의 일환으로 바그다드 외 15개 지역에 100만호의 국민주택을 건설하는 “National Housing Program”을 발표했다.
문제는 ‘이라크’라는 지역적 위험요인이었다. 세계 130여개 건설업체들이 엄청난 사업규모를 노리고 사업을 검토했지만 리스크가 워낙 커 모두 포기했다.
당시 김승연 회장은 “모두가 망설일 때 나서지 않으면 기회의 땅을 선점할 수 없다”라고 직원들을 독려하며 사업참여를 결정했다.
이후 한화건설은 방탄조끼를 입고 무장경호원들과 함께 발주처인 이라크 국가투자위원회를 들락 거리며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수주전략을 수립했다.
이때 한화건설 김현중 부회장은 50m 옆에 박격포가 떨어졌는데도 너무 피곤해 아침까지 그대로 잠들었던 일화로 유명하다.
결국 한화건설의 이런 노력과 도전 정신은 이라크 정부의 감동과 신뢰를 끌어냈고 2011년 이라크 알 말리키 총리가 방한했을 때 단 한번 30분 독대로 알 말리키 총리는 “한화건설에 사업을 맡기라”는 지시를 했다고 이라크 관리들은 전했다.
파격적 계약조건...선수금 25%, 분양과 자금은 이라크 정부가 담당
한화건설의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이 세계 건설사들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무엇보다 파격적으로 시공사에 유리한 계약조건 때문이다.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은 사업비가 78억 달러지만 물가상승분을 반영하기로 돼 있어 실제 총사업비는 우리 돈으로 9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한화건설은 사업에 착수하면서 이 금액의 25%를 선수금으로 수령하는 조건을 끌어 냈다. 중동지역 건설관례로 볼 때 15%가 넘는 선수금은 극히 드문 경우로 한화건설과 이라크 정부의 높은 신뢰관계가 없다면 불가능 했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한화건설은 지난해 9월 선수금의 일부인 8000억원을 수령해 국내 건설경기의 장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재무구조가 오히려 더 탄탄해 졌다.
영업면에서도 계약조건은 파격적이다. 주택사업의 관건인 주택분양을 이라크 정부가 책임지기로 한 것이다.
이라크 정부는 작년부터 자국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청약을 받아 이미 10만세대가 모두 분양됐고 현재 계약을 진행중이다.
프로젝트를 위한 자금은 이라크 재무성 산하 3개 국영은행이 지급을 보증해 주고 있어 공사비 지급도 완벽하게 보장받고 있다.
한화건설 관계자는 “이런 파격적인 사업조건은 중동지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찾아 보기 힘들다”며 “김승연 회장과 알 말리키 총리와의 깊은 친분이 없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한화건설의 글로벌 경쟁력은 신뢰에 있음을 강조했다.
매일 80 채를 짓는 기술력...중소 협력사도 100 여개사 동반진출
10만세대를 7년 안에 완성하려면 한달에 2000세대, 매일 80세대의 주택을 건설해야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화건설은 PC 공법을 도입했다.
PC(Precast Concrete) 공법이란 건축물의 기둥, 보, 슬래브, 벽과 같은 부자재들을 공장에서 제작한 후 현장으로 운반‧설치해 완성하는 건설 공법이다. 공기단축은 물론 품질관리와 원가절감을 실현할 수 있다.
한화건설은 PC공법을 통해 두 달에 한 번씩 잠실 3단지(4000가구) 규모의 아파트 단지를 건설 공급하게 된다.
한화건설은 공사부지 주변에 세계 최대 규모의 PC 공장을 짓고 1700명을 투입해 매일 80세대, 연간 2만 세대에 해당하는 슬래브와 벽체를 동시에 생산할 예정이다. 하루 레미콘 430대분에 이르는 콘크리트가 소요된다.
이번 프로젝트는 현장인원을 포함, 일 평균 약 2만6000명의 인력이 소요되기 때문에 110만㎡에 달하는 대지에 베이스 캠프 120동을 별도로 계획하고 있다.
특히 이라크 현지에 100여개 중소 자재‧건설업체와 1000 여명에 달하는 협력사 직원들이 함께 진출해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을 더욱 확대할 예정이다.
한화건설 관계자는 “이라크 정부는 100만호 건설을 계획하고 있어 비스마야 신도시는 시작에 불과하다”며 “이라크 정부와 오랜 기간 신뢰를 쌓아 온 김승연 회장이 하루빨리 복귀해 앞으로의 사업이 원활하게 추진되길 바란다”고 한화건설의 신뢰에 바탕한 글로벌 경쟁력을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