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불을 지핀 '일감몰아주기' 증여세 과세 문제가 재계를 뒤흔들고 있다. 특히 감사원은 2011년 도입된 일감몰아주기 과세제도와 별개로 지난 2004년 도입된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에 입각, 현대글로비스, SK C&C, CJ, 롯데쇼핑, GS, 동국제강, 신세계, STX, 대선주조 등 9개 재벌그룹이 2004년 이후 일감몰아주기 행태에 대해 증여세를 과세토록 과세당국에 통보했다.
2004년 1월1일,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이하 완전포괄주의)가 도입되기 이전 상속증여세법은 유형별 포괄주의를 채택하고 있었다. 단순하게 정리하자면, 세법에서 열거한 거래에 대해서만 실질적인 상속증여세 과세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제가 발전하면서 경제거래 유형은 날로 복잡·다양해졌지만 세법은 이 같은 새롭고 복잡한 유형의 경제거래에 대한 과세권 작동의 근거를 만들어주지 못했다. 즉, 사회의 발전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채 '후진성'이 가중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일부 재벌가(家)들이 날이 갈수록 칼끝이 무뎌져 가던 법 체계의 빈틈을 파고들어, 국민정서와는 정면 배치되는 부(富)의 세습을 자행해 왔다는 점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완전포괄주의 도입은 시대적 소명으로까지 주목받으며 법 체계의 전면에 등장했다.
완전포괄주의 정신을 감안할 때 '일감몰아주기'는 분명 과세대상이다. 감사원이 지난 4월 국세청에 전달한 과세권 행사 통보 또한 순수한 의미에서, 지난 2004년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했던 완전포괄주의의 정신에서 비롯됐다.
"2004년 이후, 일감몰아주기 과세 가능했다"
감사원의 논리는 복잡해 보이지만 매우 심플하다. 2004년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가 도입됐고, 이 제도의 틀 안에서 일감몰아주기 과세가 가능하기 때문에 그 동안 국세청이 정당한 과세권을 행사하지 않은 것을 잘못이니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완전포괄주의 도입 이후 기업집단 대주주의 특수관계자가 비상장법인을 설립하거나 인수한 후 계열법인들이 해당 특수관계법인에 수익성 높은 일감을 몰아주거나 떼어주는 방식의 내부거래를 통해 편법적으로 부를 이전해 왔다.
국세청이 완전포괄주의를 아예 활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제도 도입 이후 상당기간 과세권을 행사하지 않았던 국세청은 지난 2008년, 흑자법인의 자산수증으로 인한 대주주의 지분가치를 상승시키는 방법으로 부를 축적한 일부 재벌가에 완전포괄주의를 적용, 증여세를 과세했다(총 66건, 세액 3111억원).
문제는 국세청이 완전포괄주의를 적용해 과세한 사례는 일감몰아주기와 성격이 달랐다는 점이다. 즉, 국세청은 일감몰아주기 과세와 관련해 증여시기 확정 및 증여재산가액 산정을 위한 법적 근거 부족 등 기술적 문제를 감안해 과세권을 행사하지 않은 것이다.
감사원은 2003년 말 국회에서 완전포괄주의 도입 논의가 진행될 당시, 이 같은 문제점 등이 검토가 됐고(과세당국의 자의적 판단에 따른 과세권 남용 소지), 이에 불구하고 세 부담 없는 부의 세습 등과 같은 조세형평성을 저해하는 사회적 폐단을 차단하기 위한다는 차원에서 만장일치로 도입됐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해, 완전포괄주의 도입 당시 세법의 법적 안정성 미흡 등 일부 문제의 소지를 예측한 상태에서 도입한 만큼 미흡한 측면은 과세당국인 국세청이 나름의 기준을 만들어 보충, 과세권 행사를 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과세당국이 과세권을 집행할 대상 또한 친절히(?) 지정했다.
2005년 일감몰아주기 문제를 수면 위로 떠오르게 만들며 주목을 받었던 현대기아차 그룹 계열 현대글로비스를 비롯 ▲SK그룹 계열 SK C&C ▲CJ ▲롯데쇼핑 ▲GS ▲동국제강 ▲신세계 ▲STX ▲대선주조 등 9개 재벌그룹이다.
현재 국세청은 감사원의 과세권 집행 통보를 신중하게 검토 중인 상황. 특히 과세권 행사와 관련해 가타부타 '말'을 아끼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법적 문제점 등이 곳곳에 지뢰밭처럼 깔려 있어 감사원을 '뒷배' 삼아 무작정 과세권 집행에 착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감사원에 의해 지목된 9개 재벌그룹을 포함해 전체적인 재계의 반발 움직임도 물밑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측면에서 더더욱 국세청이 광폭의 행보를 떼기가 힘든 형편이다.
